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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보기도의 중요성 (행 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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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핍박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나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고난과 핍박과 위기라고 하는 것은 의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에게도 있습니다. 악인에게도 이런 고난과 핍박, 삶의 위기는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이 고난과 핍박은 마치 비바람과 폭풍우와도 같습니다. 여러분! 햇빛이 쬐이고 날이 좋은 것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계속 햇빛만 쪼이면 사막이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폭풍도 필요하고 비바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은 어떤 경우에는 재앙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고 유익이 됩니다. 오늘 초대 교회가 기적과 축복을 계속 받는 가운데 교회가 핍박과 고난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2절,
여기에 헤롯왕은 예수님 당시의 헤롯이 아니라 그의 조카입니다. 이 왕이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를 칼로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사도 요한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순교를 하게 됩니다. 오늘 야고보도 칼에 죽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하나님의 교회가 핍박을 받는가” “왜 의인들이 순교를 당하는가”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의인들은 고난을 받지 않아야지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교회가 왜 핍박을 받아야 하느냐 핍박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악인이 아니냐 못된 사람들, 사탄의 자식들이 저주를 받아야 할텐데’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질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악인들이 득세를 하는가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경건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진실하게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고난과 핍박은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44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한....” 하나님께서 이 태양을 의로운 자에게만 비추지 않고 악인에게도 주었고, 비를 의인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악인에게도 똑같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나 핍박도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이라는 것이 악인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의인에게도 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 그것이 “왜 내게 왔느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난과 핍박, 내가 원치 않는 사건을 만났을 때 그것을 내가 어떻게 맞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죽음의 문제는 특별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3절을 봅시다
야고보를 죽이자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래서 헤롯은 이제는 베드로까지 잡아서 죽인다면 자기는 굉장한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헤롯의 정치적 수단을 볼 수 있습니다. 헤롯의 관심은 ‘그것이 진리냐, 진리가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헤롯의 선택 기준은 백성들이 좋아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여론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진리냐, 아니냐’하는 그것이 중요하지,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지 그것이 진리냐, 아니냐에 관심이 이어야지 사람들이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 사람들이 박수를 치느냐, 박수치지 않느냐에 기준을 삼는다면 위기에 부딛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헤롯은 사람들의 여론을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마저 잡아죽이면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의 반응은 필요는 하지만 너무 예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함정입니다. 그것은 나를 파멸시키는 함정입니다.
4절,
결국 헤롯은 베드로를 체포합니다. 그리고는 옥에 가둡니다. 그러나 유월절이 걸렸기 때문에 그를 어찌 못하고 그냥 감옥에 둡니다. 결국 베드로는 옥에 갇히게 되었고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사람들은 지도자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만 해도 초대 교회는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있었지만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힘있는 지도자를 잃으면 오합지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지도자를 잃었을 때에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이점이 참 중요합니다.
5절,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아주 큰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위기를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빽줄을 찾습니다. 나의 위기를 도와 줄 수 있는 어떤 권력자를 찾게 됩니다. 그 다음에 그것이 안되면 돈을 풀게 됩니다. 권력도 없고 돈도 없으면 육탄전으로 나갑니다. 데모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보십시요. 저들은 데모를 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모여서 의논이나 회의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권력층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세상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세상적인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갔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세상적인 방법을 구하지 않고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중보기도였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누구를 막론하고 고난과 위기가 있을 것입니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위기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은 내 인간의 힘으로 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사람을 찾아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지혜와 여러분의 능력과 여러분의 방법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비가 오면 고난이 오면 핍박이 오면 여러분이 맨 먼저 찾아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공중에 매가 나타나면 암탉은 자기의 병아리를 날개 품안에 감춥니다. 위기가 오면 우리는 하나님의 품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에게로 피난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아직도 새벽기도가 적은 것을 보면 아직도 사람을 찾는가 봅니다. 와서 무릎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환난을 당하나 피난처 있으니 이곳으로 오라’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피난처이십니다. 모든 인생의 진정한 피난처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위기를 당하고 있을 때, 핍박을 당할 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을 때 여러분이 맨 먼저 찾아야 할 분은 여러분 자신도, 여러분 주변에 있는 권력도, 돈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피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응답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품안에 있게 되면 안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피하십시요.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와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베드로를 빼앗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오순절 날에 했던 것처럼 힘을 다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기적은 언제 일어납니까 교회가 연합하여 기도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 놓아도 기도하지 않는데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한국 교회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새벽기도입니다. 기도하는 곳에 성령이 역사합니다. 기도하는 곳에 불이 임합니다. 기도하면 영이 새로워집니다. 기도하면 모든 위기들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기도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만이 유일한 길입니다.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것이요, 그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곧 기도요, 찬송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대화인 기도와 찬송이 여러분의 입술에서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삶속에서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남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씨름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것만 생각합니다. 자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아마도 ‘야 남좀 생각해라’ ‘너 자신을 좀 벗어나 보아라’하실 겁니다. 마음을 넓히십시요. 자기 것만을 찾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을 위한 중보자가 되십시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6절을 봅시다.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전날 밤에”
기도는 전 날밤에 이루어집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간 때문에 고민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시간 때에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오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전날 밤입니다.
여리고성은 여섯바퀴를 돌 때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일곱 바퀴를 돌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도의 싸인이 없고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날 밤에 아루어집니다.
나아만 장군이 일곱번 강물에 들어갔습니다. 여섯 번째 들어갈 때에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일곱 번째 나아졌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할 때에 여섯번 째까지도 하늘이 변화가 없었습니다. 일곱번 째 구름 조각 하나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 그렇게 기도했는대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두 군사들 틈에 누워 있습니다. 잠을 자는데 두 군사가 옆에서 같이 자는 것입니다. 도망못가게. 두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그리고 밖에는 파수꾼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탈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내 힘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불가능한 일에 부딛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갔습니다. 갔더니-홍해입니다. 뒤를 돌아다보니 애굽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더니 좋은게 안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다고 다 좋은게 오는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이 때 우리의 신앙이 흔들립니다.
여러분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을까요 무엇을 가르기 위해서-“홍해를” 만약에 다른 곳으로 갔다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못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광야 생활은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적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대는 사면초가로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친히 건져 주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벽 때문에, 진전이 없다고, 여러분의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절망하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시간 때문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6절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7, 8절,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도들의 합심하는 기도에 응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셔서 응답해 주십니다. 홀연히 주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눅 24장의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천사들이 나타나 돕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누가 돕습니까 천사가 돕습니다. 성령님이 돕습니다.
“베드로야 따라 오라” 천사는 여유 만만합니다. 우리 같으면 급해서 다 버리고 갈텐데 천사는 띠도 가져오고, 신도 가져오고, 겉옷까지 챙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와 함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를 보호합니다.
9절, 베드로마저 이일이 꿈이냐, 생시냐 꿈을 꾸는 것같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구원을 받은 경험들이 있습니다.
10절,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기도하면 모든 위기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사건이 해석이 됩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합심해서 기도하십시요.
하나님의 기적들이 여러분의 생애에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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