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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택된 종 아모스 (암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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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오웰을 작품(1984년>이라는 소설이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쓰여진 연대는 1948년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 자신도 아직까지 이 작품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대전에 내려오면서 차 안에서 주간 조선을 보았는데 거기에 소설과 관계된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984년> 이후'라 하는 제목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1984년 기슭에서 아마 우리 학생들 가운데서도 많이 읽었을 것이고, 외국 문학을 좋아하시는 사람들은 특별히 관심 있게 읽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요약된 내용이지만 제가 감명 받은 책 중에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제 3의 물결>, <미래의 충격> 등으로 약 15년 전에 한동안 유행했던 책이지요. 대개 맥을 같이하는 내용이지만 <1984년>이라는 작품도 제가 꼭 한번 읽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원본으로 읽어보고 여기서 말하고 있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 나름대로 다시 한번 해석을 해보아야겠다 하는 충동을 이 해설을 읽으면서 받았습니다. 만약에 읽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읽기를 권하고, 읽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정독을 해보는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뜻에서 서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아모스 선지의 내용입니다. 1장 1절부터 5절까지 본문을 잡았지만 사실은 아모스서 전체를 머리 속에 그리면서 이 제목을 선택하였습니다. `선택된 종 아모스'라는 제목인데, `선택'이라는 말은 `불렀다'라는 말입니다. `불렀다' 하는 말은 그 속에 어떤 목적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은 분명히 선교적인 차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대학도 세워지면은 반드시 미션이라고 하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사람을 부를 때에도 미션이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바로 금년은 1984년의 전야입니다. 예언이 맞을지 틀릴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데로 심각한 느낌을 가지고, 세계의 구조가 두 개가 아니고 세 개의 새로운 그룹으로 나누어지는 느낌 속에서 아모스를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대단히 의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하나님은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아모스를 보면서 어떤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1984년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문인가, 학벌인가 그 밖의 어떤 조건인가 한번 생각해 볼만합니다.

제가 1959년 4월 15일, 개교기념일에 이 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때는 산자락 아래 아무 것도 없고 T자 집 하나만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전혀 볼 수 없는 기와 지붕으로 돼 있는, 마치 절간 같은 그런 데에서 이백 명도 되지 않는 정원에 불과 90여명의 입학생밖에 없었던 그런 때입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입학생들이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 온 사람들이지만, 뭔가 벅찬 가슴을 안고 여기를 들어 왔던 사람들이었어요. 현재에도 여러분 가운데에는 그러한 꿈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대가 선택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가문인가 학벌인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조건이 있는가 아마 이러한 물음을 지지하게 물을 수 있을 거예요. 예리한 통찰력을 가졌던 아모스는 가문도 없었고, 학벌도 없었습니다. 내세울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지만, 단 하나 예리한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 예리한 통찰력을 가졌다고 하는 것 때문에 목자였던 아모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카웃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모스를 선택하셨습니다. 아모스는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선택하셨을까 딱 한 가지입니다. 이 분은 목자로 있으면서 영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양만 먹인 것이 아니라 양을 치면서도 시대를 바라 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1984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1984년) 이라는 작품 내용 그 자체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대를 바라 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지 않고는 우리는 스카웃될 수가 없다 하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통찰력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수년을 거쳐서 훈련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학교 생활 17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학창 시절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가서 하는 일을 예측할 수가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건들건들 하던 사람은 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역시 건들건들하고, 학교 다닐 때에 열심히 공부하던 사람은 역시 자기가 나가서 가져야 할 터를 분명하게 닦았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선거를 좋아하던 사람은 나가서도 선거에 계속해서 노력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것을 종합해 보면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가 모릅니다. 예리한 통찰력은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끈기 있게 부단한 훈련 과정을 통해서 됩니다.

아모스는 대단히 단순한 삶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높은 궁궐을 지어 놓고 살 계획도 없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할 그런 마음도 없었습니다. 다만 공개된 지붕 밑에서 이슬을 맞아 가며 살더라도 그날 그날을 양과 함께 보내던 그런 목자였지만 그 속에서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예리한 눈동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모스가 스카웃 당했을 그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정확히 짚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기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던 때입니다. 왜냐, 번창하는 북방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런 즈음에 아모스는 북방에 가서 왕에게 외친 겁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닥쳐오고 있는 문제를 낱낱이 고발하였습니다.

작품 <1984년>은 1948년에 집필된 것이지만 30년보다 훨씬 더 앞을 내다보는 위대한 예언자적인 내용입니다. 물론 해석은 각각 다르게 한다 할지라도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해석은 우리들을 새롭게 이해하지 아니하면 안 되도록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므로써 스카웃 당하는 자격을 갖추었던 아모스를 생각해 볼때, 현재 학교에 다니는 여러분들은 이러한 예리한 시대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 훈련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저 4년을 우물쭈물 허송세월하므로써 시대에 뒤떨어지는 낙오자가 아니라. 21세기를 앞두고 한국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 성장되기를 결심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인>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지난 2월호를 전철을 타고 가면서 읽었습니다. 한국 학생인데 국민학교때 미국으로 갔어요. 지금은 MIT에 입학을 했습니다. 1년이 지났으니까 이제 2학년이 될 겁니다. 그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살펴 보았더니 캄캄한 거예요. 도대체, 젊은 사람들 노는 것을 보면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어요. 완전한 무질서예요. 청교도 문화로 빛나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하는 꼴들이 정말 한심하다 그렇게만 생각을 해 왔다는 겁니다.

그런 그가 MIT에 들어가서 미국 학생들 공부하는 것을 보니 4시간 이상 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겁니다. 심지어는 3일동안 잠 한 숨 안 자고 공부하는데, 가방 속에 샌드위치하고 코카콜라만 넣어 가지고 도서관에 들어 가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미국 학생들은 어떻게 그렇게 3일 동안 할 수 있는가 저는 직접 경험을 했어요. 박사 과정 중에 종합 시험을 볼 때에는 대부분이 다 기진맥진 합니다. 왜냐하면 한 과목 시험을 보는 데 7시간이나 걸리니까 말이지요. 여러분은 아마 한 번 보고 나면 기절할 거예요. 그렇게 받은 공부들입니다. 미국 학생들이 3일 동안 공부하는 것은 진짜입니다. 코카콜라는 잠 안 오게 하는 거고, 영양 보충은 해야 되니까 햄버거를 갖고 갑니다. 햄버거 속에는 영양이 충분히 들어 있습니다. 그걸 먹고 공부하는데 먹는 시간도 아까워 먹어 가면서 책을 보곤 하지요. 먹고 나면 나가서 양치질하고 들어와 그대로 있는 거예요. 잠이 오면 이렇게 잡니다. 편안하게 자면 깨지를 않거든요.

과연 미국은 이 사람들이 움직인다 하는 것을 그 학생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동의합니다. 제가 13년 전에 미국 갔을 때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일본계 미국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대학원생인데 수학 시험을 보는 겁니다. 코카콜라하고 햄버거 하나 사 들고 들어 가는 것을 제가 봤어요. 3일 동안 잠 안 잔 거예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려서부터 다져진 신체의 건강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학생 중에는 3일 동안 견디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갈비씨 가지고는 견디질 못해요. 그러나 우리는 대신 끈기가 있어요. 주말에 놀지를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놀 때 우리는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들 놀때 잠잘 때 잠자고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들은 기어가는 거북이 위에 뛰는 토끼예요. 아니 날으는 컴퓨터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는 중간에 있어요. 아시아 중에서는 상당히 앞서 있는 편입니다. 인도보다도 앞서 있고, 태국보다도 앞서 있고, 조금 떨어져 있다면 대만과 싱가포르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독일 같은 나라에 비하면 많이 떨어져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1984년>을 보면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선택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정신, 예리한 정신력을 갖게 되면 우리는 분명히 살 수가 있습니다. 생각하는 백성은 살거든요. 물질이 많은 나라는 망하지만 생각하는 백성이 있는 나라는 분명히 살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보루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정신입니다. 우리 나라를 한번 돌아 보십시오. 마지막 지탱할 수 있는 정신력, 이거 외에는 우리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계속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활짝 열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욕망과 정신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욕망과 정신력을 기르지 못한다면 등록금 축내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세월이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간은 황금과 같은 중요한 기간입니다. 이 기간을 놓치면 다시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도서관에서 책과 싸워야 할 중요한 시점입니다.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교수님도 중요하지만 도서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 속에 4년 동안 파묻힌다면 목자가 양과 더불어 정신력을 기르는 그런 터가 분명히 될 겁니다. 도서관을 멀리 하고 그저 캠퍼스 속에서 자유롭게 뛰는 망아지들은 이 다음에 틀림없이 울 날이 기다립니다. 스카웃은 커녕 슬피 울며 이를 갈 날이 돌아 올거예요. 이거은 조지오웰이 예언하던 `1984년'보다 더 분명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선택했는가 아니면 자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선택했는가 하나님은 아모스를 그런 목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모스의 개인 의견을 듣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대변하기 위해서 선택했습니다. 오늘의 시대에 대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선택했습니다.

여러분! 이 시대를 향해서 부르짖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누군가 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시대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 통찰자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늘 만년필 철학을 부르짖습니다. 만년필은 크고 통이 큰 것이 좋습니다. 작은 것이 잉크가 적게 들지요. 그러나 큰 것은 통에 잉크를 많이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쓸 수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주입해 보세요. 계속해서 쓸 수가 있습니다. 주입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만년필을 두드려도 쓸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용사들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처음부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방 학교라는 것입니다. 제가 호남에 학교를 책임지고 2년 동안 있었는데, 지방 학교는요, 처음부터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수진도 약점이고, 시설도 약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입학생의 점수가 서울에 있는 학교의 평균보다 80점이나 낮다는데 있습니다. 평균으로 전라남도가 서울보다 80점이나 낮았어요. 80점 낮은 인생이 출발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문제를 처음부터 극복하고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은근과 끈기와 노력 앞에는 아무리 머리 좋은 토끼도 당할 길이 없어요. 뛰는 토기는 걷는 토끼가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날으는 컴퓨터를 빠른 컴퓨터가 잡을 수 없어요. 나는 자랑스러운 후배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 학원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통찰력, 이 한국을 살릴 수 있는 정신력, 최후 한 가지밖에 안 남은 이것을 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언제 선택받습니까 필요할 때 선택 받습니다. 제가 늘 쓰는 말이 있습니다. `싫어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라.' 이 말입니다. `저 자식은 내가 제일 미운데, 이 자리는 저 놈이 아니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라 이 말이예요. 피나는 노력이 아니면 되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데 빽으로 돈으로 안 됩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어요. 빽 가지고 컴퓨터 운영하는 사람 만들겠어요 안 됩니다. 컴퓨터 운영하는 사람은 그 만큼 훈련을 해야 되요. 전부 다 해야 됩니다. 바로 이 과정을 이 학교에서 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선택받을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졸업한 후에는 사실 주가가 떨어집니다. 남자도 결혼하기 전에 주가가 올라 가는 거예요.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시집가는 그때부터 주가가 얼마만큼 하락하느냐. 거들떠 보지도 않아요. 별 가치조차 없다고 느껴져요. 여러분! 4년 동안 길을 잘 닦아 놓으세요. 여러분의 중요한 바로 이 때, 다른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할 때 선택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어디에서 선택이 될 것인가 일터에서 선택이 됩니다. 여러분, 이것은 꼭 아셔야 되요. 지금 우리 나라가 2가지 조류에 겹쳐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 산업 사회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소위 선진 국가는 산업 사회의 후기에 접어 들고 있는데, 우리는 이 후기 산업 사회, 소위 제 3의 물결에 휩쓸려 있습니다. 제 2의 물결과 제 3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는데 그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오늘 주간 조선에 이 특집 그림이 실려 있는데 뭐냐 하면 바로 컴퓨터입니다. 컴퓨터도 제 3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여러분! 제 3의 물결은 전자공학 시대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초보 단계예요. 제 2의 물결의 절정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사실로 받아 들인다면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됩니다. 우리 세대는 제 2의 물결에서 살 수 있다고 하겠지만 여러분 세대는 이대로 간다면 제 3의 물결이 불가피한 현실입니다.
이미 그 초보 단계에 들어 가고 있고 우리도 세계에서 두려워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전자 계통에 있어서는 일본 다음으로 한국을 가장 두렵게 세계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일을 가 본 사람이면 다 알 수 있을 것이고, 미국을 가 본 사람이면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대에는 제 3의 물결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내다보면서 바로 이러한 현장에서 선택받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며 4년 동안의 기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서 가장 보람있고 값지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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