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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잔치비유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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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는 15절에서 말한 사람에게 주는 특별한 교훈이다. 눅9:57의 경우 한 청년이 주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좆으리이다 할 때에 ...여우도 굴이 있고...라고 대답하셨는데 이 비유도 이 말에 대한 칭찬이나, 격려나, 동의를 해주는 대신 무섭도록 엄격한, 가장 강경한 말씀을 해 주셨다.
분노와 심판, 비천한 운명으로 채워져 있는 이야기이다. 24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자에게나 아니면 어떤 강력범에게 혹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복음에 대한 신랄한 반대자에게 말씀이었다고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수긍해서 존경의 뜻으로 말했던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점이다.
첫째,
이들은 초청을 수락했다. 그러나 잔치가 시작될 때 하인을 시켜 안으로 모시려고 하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변명을 늘어 놓았다. 이들은 초청을 수락할 때 철저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하였던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막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답한 것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전반적인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저항이나 부정이나 캐물어본 적이 없이 그냥 받아들인다.
둘째,
두번째 초청은 진정한 시험이 된다. 첫번 초청은 일반적인 것이었으나 두번째 초청은 제한된 어떤 일을 하도록 강요한다. 가거나 가지 않거나 해야 한다.
셋째,
두번째 초청에 불응하고 변명한 것은 주인을 무시하고 모욕한 행위다. 그들은 다른 일이 없었다면 잔치에 참석했을 것이다. 다른 일이 있자 초청이 짐스러워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의만을 우선시켰다. 우선의 원칙은 하나님께 적용해야 한다. 편의 위주의 원칙을 적용하면 가공스러운 잘못이 된다.
우리가 천국에 이르기를 원하면서 그러기 위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복-신령, 육신-을 받기 원하면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죄를 지으면서, 자신들을 즐겁게 하면서, 이 세상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죄스럽게 되었노라고 말하는 것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편의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오는 저지르지 말자.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면 천국의 일들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보임으로 입증해야 한다.
이들의 변명은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어리석은 짓들이다. 밭이 갑자기 움직여 사라지기라도 하는가 소들이 몇시간도 기다리지 못하는가 평생동안 아내와 같이 살지 못할 것처럼 한 것은 무례 막급한 일이다.
딛1:16. 입술로는 하나님을 선포하나 실 생활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는 일이다.
하나님 보다 더 중요시 하는 것들을 보라. 돈, 성공, 인기, 욕망, 정욕. 주님을 믿노라 하고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다른 일을 그것에 우선시킨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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