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의 머리 (골 01:18-20)

첨부 1


우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도 되십니다.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자’, 곧 모든 피조계의 주님은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1:18)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새로운 인류, 곧 교회의 머리란 뜻입니다. 주님은 창조주로서도 우주의 으뜸이시며 구속주로서도 교회의 우두머리 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십니다.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여집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조화를 이룹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주장하므로써 골로새 교인들을 위협하던 이원론적인 그릇된 세계관을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원론적 세계관이란 이 세상을 두개의 대항 세력, 곧 하나님과 사탄(선과 악)사이의 갈등으로 보며, 선은 영에 거하고 악은 물질 혹은 ‘육체’(2:23)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사실상 이 사상은 옛날부터 현재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을 유혹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시자며 원리이며 그 목표입니다. 그분 안에서 모든 충돌이 해소됩니다. 그리스도는 조화의 원천이십니다. 그래서 첫 창조는 제2의 창조에서 그 충만한 의미를 회복하고 인간은 온전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이 회목케 되기를 뜻하셨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니라’(1:20)
우주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을 통하여 세우신 교회와, 새 창조와 새 공동체의 머리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라는 사실과 그가 교회를 위해 하신 일은 우리들이 그를 경배하지 않을 수 없는 합당한 이유들입니다.

교회의 머리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1:18)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인 범세계적 교회에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지역 교회에도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바울의 선언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의 근간과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만물의 으뜸’이라는 사실을 모든 면에서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의 권위는 주교나 총회장이나 목사나 장로 혹은 회중에게 입혀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론에만 그치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이 일이 비록 어렵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정한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약점을 가진 제한적인 인간들로 구서오디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직체입니다. 그렇지만 그 근원이 신령하다는 점에서 보면 교회는 단순한 인간의 조직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교회 위와 교회 안에 군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이나 혹은 몇몇 지도자나 심지어 회중 전체에 의해서도 지배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구조나 행정 및 정책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아무리 다를 수 있더라도 그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자들이 주님의 권위에 따라 섬기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습니다. 교회는 오로지 그리스도가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들에게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교회에 루울들을 만들 권위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몸의 지체들로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 일은, 그리스도의 뜻이 우리들에게 달갑게 여겨지든 말든, 그것이 교인 수의 증감에 영향을 주든 말든, 우리들의 인기가 오르건 내리건, 혹은 사람들의 칭잔이나 비웃음을 받건 말건 아무런 구애를 받지 말고 실행되어야 합니다. 만일 교회가 머리도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려면 각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주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각 교인들이 교회의 어떤 규칙이나 혹은 어떤 개인의 말이 아닌 주님과 복음의 가르침에 복종해야만(롬6:17) 몸의 연합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그 목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에 먼저 종속된 것이아랴 합니다. 신자가 교회 지도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들에게 신실해야 한다고 해서(살전5:12) 맹목적으로 혹은 자기 양심을 거스리면서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말씀과 정신에 일치되어 행해 질 때에만 ‘주 안에서’(살전5:12)된 일로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조직이 어떤 형태로 되었건 교회의 목표는 모든 교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요3:28-30).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보다 교회에 더 충성케 하고 주님보다 사람들을 순종케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처사입니다. 물론 교회에 대한 사랑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병행되는 것이 정상입니다.(고후8:5). 그렇지만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이 점을 바르게 파악하고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위선과 독단과 부당한 핍박의 피해를 많이 입어왔습니다.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이것은 각 교인들의 머리가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이 원칙은 위험부담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 무질서와 위험한 탈선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개인의 자유 문제를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를 사용할 줄 모른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자유를 페기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사태는 훨씬 더 악화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리스도가 다스리셔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조직과 모든 규칙들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가 보여지고, 들려지고, 그의 말씀에 따라 스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길이 지향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못되면 교회의 소명은 상실되고 한갖 인간의 조직체로 머물게 될 위험이 다분합니다.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이 영적 진리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의 실체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주님을 ‘만물의 으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권위와 근거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가 교회에서 지상권을 가질 수 있는 근거들을 열거합니다. 그가 내세우는 것들은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입니다.
(1)그리스도의 신성:‘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기뻐하심이라’(1:19,20).
바울은 동일한 맥락에서 나중에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2:9).
이 말씀은 기도교의 심장부에 해당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충만히 계시되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들이 믿음의 창문과 신령한 조명을 통해서만(마16:17) 엿볼 수 있는 가리워진 부분들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인격체 속에서 자신의 충만성과 영원성과 무한성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까닭은, 마치 태양 광선이 여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상에 그대로 쬐이면 모든 생명체가 죽고 말듯이, 하나님의 광휘(光輝)가 죄많은 인간들에게 곧바로 비취면 모두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안전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에게 입혀진 하나님의 완전한 본성의 계시인 ‘하나님의 영과으이 광채’(히1:3)이지 하나님의 ‘얼굴’이 아닙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20). 그래서 인간은 그리스도의 육신의 베일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요1:14,18 ; 14:9).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지상에 오신 것은 피동적으로 인간적인 제한을 받으신 것이 아니고 당신의 자유 의지에 따른 자발적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자신을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한계에 제한시켰지만(눅2:40 ; 마24:36), 자신의 신령한 능력과 기능들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창조계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권위는(요10:18) 그가 비록 인간적인 제한 속에서 살았더라도 온전한 자유와 신령한 능력들을 계속 소유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구적으로 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이 되시는 최대의 겸비 속에서도 그가 온전히 하나님이 되지 못한 상태는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한 종교의 교주나 영적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분은 인간의 모습으로 드러난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고(요20:28) 그분을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인정합니다. 또한 우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회의나 변조나 이탈시킴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까닭도 그분의 이같으너 신성 때문입니다.
(2)그리스도의 부활:‘그는…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1:18).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 소생될 모든 사람들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시간적으로도 제일 먼저 부활하셨습니다. 이런 뜻에서 그리스도는 장차 있게 될 부활의 동인이며 동시에 그 부활의 패턴입니다.
나사로를 비롯하여 몇몇 다른 사람들이 죽음에서 희생되었지만 그들이 예수님과 동일한 방법으로 부활되지는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부활했다기 보다는 소생된 자들이었습니다. 확실히 그들은 잃었던 생명을 되찾았지만 그 생명은 죽기 전의 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지상생활은 연기되기는 했지만 결국 죽음을 피하지는 못 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산 것이 아니고 다시 죽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산 것이 아니고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며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롬6:9). 예수님 자신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계1:18)
주님은 부활절 아침에 새 생명으로 살아나신 새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이 불멸의 새 생명을 주님과 나누게 될 것입니다.(고전15:36-38, 42-44).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자신이 부활을 보증해 줍니다(고전15:12-20).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신 자로서 수 많은 부활의 후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3)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20)
이것은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께 순종해야 할 가장 설득력 있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주께서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다시 데려다 주시고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우리들의 사랑과 경배를 받으실 자격이 없겠습니까
전에는 우리들이 하나의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구원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 이중으로 속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화목케 하시기를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만물들이…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니라’.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은 무슨 뜻일까요 요즘 사람들은 ‘우주적 차원의 구원’이란 말들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이같은 개념이 본문에 깔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씀의 사상을 더 이상 전개시키지 않고 곧장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의 화목의 주제를 추상이 아닌 찬미의 대상으로 삼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상 역사의 한 시점에서 일어났던 구체적인 한 사건에 우리들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바울은 우리들에게 십자가를 보여 줍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우주의 주님이 우리를 그의 아버지, 곧 우리들의 아버지와 화목케 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당신께 기쁨을 주기 위해 우리들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들을 즐겁게 해 주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위해 우리들을 지으셨건만 우리는 어둠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머무셨어도 우리들은 어둠 속에 자신들을 내던졌습니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망가뜨리면서 그것이 우리의 살 길이며 우리에게 주는 자유의 길이라고 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발견한 것은 스스로 이으킨 파멸의 잿더미 속에서 모든 소망이 끊어진 어둠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풍성하신 긍휼로 우리들의 마땅히 당해야 할 운명에 우리 죄인들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마음과 크신 능력으로 우리들을 당신과 화목시키려고 결정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을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어리석은 처신과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 당신의 외아들을 못박는 엄청난 댓가를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권능이 우리들을 강권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 역시 우리들의 심혼을 그에게 쏟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4,15)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