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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가 (삿 1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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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7장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나온다.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돈 은 일천 일백 일백을 잃어 버렸다. 화가 난 어머니는 온갖 말로 도둑을 향하여 저주를 퍼부었다. 사실 그 돈을 가져간 사람은 미가였다. 어머니의 저주에 겁이 잔뜩 난 미가는 “사실은 제가 가져 갔습니다”하고 자수하였다. 아들의 자수를 기쁘게 받고 어머니는 하나님께 바친 셈치고 그 돈을 다시 아들에게 돌려 주었다.
아들은 이 일을 기념하여 은 이백을 뽑아 특별히 그것으로 우상과 드라빔(가정 수호신의 통칭)을 만들고 또 제단도 꾸몄다. 에봇(제사장이 제사할 때 입는 옷)도 만들었다. 그렇게 해놓고 자기 집에 신당을 꾸며 놓고 이름붙이기를 ‘하나님’이라했다. 그렇게 만든 신과 제단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신앙생활을 하던 어느날 그들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
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삿 17:7)”
유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고 에브라임은 그 윗 산지에 있다. 미가 모자는 이 사람이 레위인이라고 하니까 “잘 되었소. 당신 우리 산당에서 제사장 노릇하시오. 당신은 레위인 아니오” 하였다. 미가는 레위 소년에게 일년에 연봉으로 은 열과 의복 한벌과 따로 음식을 주기로 했다. 당시에 은 열이면 오늘날 800만원 쯤 된다. 은 천 백 중에서 이백만 쓰고 구백이 남았는데 일년에 연봉을 열씩 주기로 했으니까 90년간 줄 사례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 단 지파는 자신들이 살 땅을 얻지 못해고 여기저기 정탐꾼을 보내고 있었다. 그 중 한 무리가 미가의 가정에 이르러 레위 소년을 만났다. 정탐꾼은 레위 소년이 그곳에 살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소년은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정탐꾼들은 ‘우리가 지금 땅을 정탐하러 왔는데 앞길을 알려 주시오’ 부탁하였다. 소년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축복하여 보냈다.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없이 거
하더라(삿 18:7)”
정탐꾼들은 라이스 족속이 만만해 보이자 돌아가 단 지파를 끌고와 그 땅을 차지하기 전에 미가의 집에 들려 레위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라이스 족속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였다. 나중에 자신의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간 것을 알게 된 미가가 쫓아와 “왜 내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 갑니까” 항의 하였다. 단 지파는 자신들의 수(數)와 무기로 미가를 위협했다. 미가는 겁에 질려 되돌아갔다. 17,18장에 걸친 미가의 사건은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사사기가 기록될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상태’를 가장 대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두렵게 생각해야 할 것은 어쩌면 이것은 지금 한국교회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17,18장은 종교놀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고발이다. 이렇게 비유해서 살펴보자. 여기에 등장하는 미가와 레위 소년은 잘 먹고 잘 살기를 탐하는 장로와 목사이다. 이들이 교회를 세우는데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사회적 지위와 자기 만족을 위해서 교회를 세운다. 신을 자기가 정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돈으로 만든 자기 배짱에 맞는 신이다. 그것을 위해서 자기가 제사장을 하나 만드는데 정당한 제사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런 면에서 알 수 있다.
제사장은 자기 기업이 없다. 직업을 찾아 돌아다닐 수도 없다. 정해진 장소가 있다. 자기가 거하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마음대로 옮겨다닐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이 레위 소년은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온다. 거할 곳을 찾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호구지책을 위해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다가 미가를 만났다. ‘내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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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은 열과 옷 한벌과 식물을 주겠소’ 그러자 만족하게 여겼다. 그들은 꿍짝이 맞아서 지금 식으로 하면 교회를 하나 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죄악이다.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
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
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삿 17:5)”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였던 것이다. 미가가 한 일이 얼마나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일인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삿 18:1)”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단 지파가 아직 아직 자신들이 살 땅을 얻지 못하였구나’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얻은 땅이 아니라 제비 뽑아서 얻은 땅이기 때문이다. 정복하기 전에 지도를 펴놓고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진 땅이다. 물론 전쟁이라는 수단이 사용되기는 했으나 사실은 싸우러 들어가기만 하면 얻는 땅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살 땅이 없어서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단 지파는 레위 소년 제사장을 만나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렇다, 왜 우리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우리가 행하는 일들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어 그가 우리를 위하여 축복하면 잘 될텐데..... 이런 개인의 가정에서도 하는데 우리는 이 생각을 못했구나’ 그래서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간다. 미가는 쫓아가면서 ‘내 신과 내 제사장을 내놓아라’ 요구한다. 미가의 요구는 옳다. 자기가 만든 신이고, 자기가 세운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소년 제사장은 미가의 집을 떠나 단 지파를 따라가면서 좋아한다.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느니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게 아무래도 낫지’ 오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작은 교회보다는 큰 교회가 낫지’이다. 당시에는 몽땅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살았다. 왜 그랬을까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라고 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이 말씀을 잘 음미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왕이 되지 못했다. 영적주인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없이 목사 역할을 맡은 사람, 장로 역할을 맡은 사람이 허다하다. 그러면서 서로가 욕을 한다. 사실 잘못했을 때 우리는 욕을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본인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욕을 하면서 반드시 우리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목사가 잘못되도 성도는 잘해야 한다. 성도가 잘못해도 목사는 잘해야 한다. 남의 못한 몫까지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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