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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니엘의 기도생활 (단 0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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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나이는 이제 80을 넘은 고령에 접어 들었습니다. 그가 젊은 날에 포로로 잡혀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많이 변하였습니다. 나라도 바뀌어 갈대아 왕조에서 메대와 바사왕조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믿음을 지키며 세상에 큰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가 죄악된 이방문화 가운데서 특히 권모술수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정치세계에서 어떻게 한결같이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살 수 있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하루 세번씩 기도한 다니엘(1-10)

1절을 보십시오. 때는 갈대아 왕조가 무너지고 메대의 왕 다리오가 천하를 다스리게 된 때 였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을 지휘하여 바벨론을 정복한 사람은 바사의 장군 고레스였습니다. 그러나 고레스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다리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그 후에 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오가 왕이 되어 전국을 다스리고자 할 때 그는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먼저 전국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정개편을 했습니다. 그는 전국을 120도로 나누고 각 도마다 방백을 두어 통치하게 했습니다. 또 그들위에 총리 셋을 두어 120방백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세 총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리오가 이런 제도를 둔 것은 방백들이 총리에게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하려 함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이 판단할 때 이 일에 적격자는 다니엘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외적요인보다 내적요인에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일하기를 싫어하였고 과소비와 사치에 젖어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장래 꿈과 비젼이 없이 유행에 민감하였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리오 왕에게는 도덕적 정신적 기강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통치할 수 있는 청렴결백한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이 직무를 맡겼습니다. 사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세째 치리자의 높은 자리에 있었으므로 마땅히 숙청대상자였습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후 정치범 3000명을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았으므로 정직하고 고결한 도덕성을 지닌 자 였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탁월한 행정능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시대가 바뀌었지만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큰 인물이었습니다. 다리오는 이런 다니엘을 메대와 바사의 총리로 임명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와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다니엘은 80세가 넘은 고령이었지만 마음은 늙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총명과 거룩한 영으로 인해 마음이 민첩하여 다른 두 총리와 젊은 방백들이 따라 갈 수 없을 만큼 모든 면에서 뛰어났습니다. 그는 스피릿이 충만하여 맡은 직분을 빈틈없이 해 내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이런 다니엘은 크게 신임하여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문에 다니엘은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의 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총리와 방백들은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죄악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훌륭하여 하는 일이 잘 되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못되기를 바라고 시기합니다. 이들도 어찌하든지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눈에 불을 켜고 살피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수석총리가 되면 자기들이 더이상 부정을 저지를 수 없게 됩니다. 이에 그들은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국과수도 먼지가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모든 일을 전혀 사심이 없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으므로 부정도 없었고 태만함도 없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타고난 성실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세상 일을 할 때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 앞에서 하지않고 먼저 하나님 앞에서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 일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학교공부를 게을리 하여 성적이 좋지 않거나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데 등한시 하여 지탄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 맡은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므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총리들과 방백들은 국사에서 다니엘을 고소할 조건을 찾지 못하자 이제는 다니엘의 신앙생활에서 그 틈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자세히 연구해 보니 다니엘이 어떤 경우에도 중단하지 않고 하루 세번씩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을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를 이용하여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들은 당을 지어 왕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 이니이다(7)” 그리고 이들은 이 금령을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않는 규례를 따라 다시 고치지 못하도록 왕으로 하여금 어인을 찍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황제 숭배로서 왕을 심히 기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나라를 얻은지 얼마 안되기 때문에 국론을 통일시키고 왕의 권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들의 숨은 계략을 알지 못한체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만 여기고 조서에 어인을 찍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니엘은 30일 동안 하나님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생활을 포기하든가,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던져지든가 택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우리는 이런 다니엘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첫째, 그의 신앙의 지조입니다.
다니엘은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여러 독재자왕을 섬기면서 이 어인이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을 어기게 될 때 그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가 만일 이 금령을 어기게 되면 총리직이 박탈당할 뿐 아니라 당장에 사자굴에 던져져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생명에 대한 애착심이 있습니다. 목숨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을 잃어 버리면 권세고 명예고 물질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숨 앞에서는 비굴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 문제가 생겼을 때 신자들과 목회자들 가운데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신앙의 지조를 굽히고 타협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목숨을 내놓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분은 소수였습니다. 다니엘이라고 해서 생명에 대한 애착이 없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런 결과를 알았을 때 할 수 있는 대로 이 때를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그는 원수들의 간계를 다 알았습니다. 원수들이 자기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불법으로 이 법을 만든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알았을 때 취할 수 있는 조취가 무엇일까요 그는 우선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하여 왕에게 찾아가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 법은 원수들이 자신을 시기하여 만든 것이라고 고발하므로 대 역전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안되면 이 법은 단지 30일 동안만 효력이 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이라도 은밀히 기도하라는 말씀대로 아무도 안보는 골방에 들어가 몰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 상황을 피할려고 한다면 얼마든 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현실과 타협한다면 그의 목숨은 부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인격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것 또한 원수들이 노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실로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전에 행하던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므로 다니엘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다니엘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신앙의 지조를 가장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엄청난 권세가 박탈당하고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생명을 잃는다 할지라도 그의 신앙의 지조만큼은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신앙의 지조를 잃는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위해 목숨까지도 바쳐 투쟁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을 당하고, 어떤 이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그들의 신앙의 지조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더욱 불타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고려말기 한 임금에 대한 절개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정몽주를 존경합니다. 그의 시조는 우리의 간장을 애끓게 합니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이들의 한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과 애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우리 주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과 순결과 애정을 가짐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작은 유익 때문에 때로는 작은 핍박 때문에 마음이 변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못한다면 신자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손해와 아픔이 있을지라도 예수님께 대한 신앙의 지조 만큼은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로서 올바른 자세입니다.

둘째, 그의 꾸준한 기도생활입니다.
저자는 다니엘이 ‘전에 행하던대로(just as he had done before)’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다니엘이 이 문제 때문에 갑자기 기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꾸준히 기도생활을 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소년시절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는데 80이 넘도록 70년 이상을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기도해왔지만 상황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자기 백성은 죄악으로 인하여 70년동안 주권을 잃고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황폐화되고 쓸만한 백성들은 수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끌려와 융화정책에 의해 선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잃고 바벨론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2세들은 유다방언을 할 줄 몰라 느헤미야가 머리털을 뽑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9장에 나타난 다니엘의 기도를 보면 그는 자기백성의 절망적인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다니엘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잘 알았지만 절망치 않고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하루 세번씩 규칙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생활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때에도 계속되엇습니다. 세상의 어떤 핍박이나 위협도 그의 기도생활을 중단시키지 못하였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거대한 바벨론의 군사력과 비교해 볼 때 연약한 자의 하소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위로부터 큰 힘을 덧입는 원천이었습니다. 그의 기도생활은 그의 개인의 믿음의 중심을 지키게 했을 뿐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세상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위대한 것이었습니다(9:23).

셋째, 그의 기도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이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이나 자기 백성이 죄때문에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마땅한 줄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교만하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바라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과 같이 자칭 의인의 기도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릎꿇고 가슴을 치며 긍휼을 구하는 세리의 기도는 들으십니다(눅 18:11-14). 다니엘은 하나님께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했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향하여 항상 마음의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는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1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의 깊은 신앙의 경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였습니다. 현재 그의 형편은 도저히 감사할 수 없어 보입니다. 감사하기는 커녕 “이날까지 이렇게 한결같이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내 인생 마지막에 하나님은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하며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복수의 감정을 품고 악인의 모든 도모를 파하시고 그들을 심판해 주시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자기와 자기백성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주권편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았을 때 이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인하여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상황에 따라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변하지 않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로 마음문을 열고, 하나님께 복종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런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다니엘 자체를 기뻐하시고 그의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다 응답하셨습니다.

넷째,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다니엘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문제가 생겼을 때 지금까지 그가 쌓은 인생경험이나 자기 지혜를 의지하여 해결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며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더 꼬이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자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믿음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 사람이 인간적인가 영적인가를 알아보려면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람은 기도하기보다 자기 지혜를 믿고 자기 스스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또한 감정적이 되어 사람들과 부딪힙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문제를 안고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지 않고 기도로 사단과의 영적싸움을 싸웁니다. 이를 통해 영적 비밀을 깨닫고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시간과 기도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총명을 얻었으며 위로와 힘을 공급받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선이었습니다. 기도시간은 다니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죄악된 이방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쁘고 또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기도의 시간, 기도의 장소를 절대적으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이런 위기 상황에서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지 않고 기도로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었을까요 첫째로, 자기 하나님을 의뢰하였습니다. 본문에는 ‘나의 하나님’이란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10b,16,22,23,26). 다니엘의 하나님은 이때까지 다니엘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섬세하게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도와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 주시고 믿음으로 살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전심으로 자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뢰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이 원수들의 간계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고 자기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때 그는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평온한 가운데 자기와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나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은 나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험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믿는 자의 편이 되셔서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할때 세상이 아무리 요동하고 험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단의 역사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둘째로, 다니엘은 진리가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다니엘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사심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는 순결과 의를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신앙적인 문제로 고소를 받을 때 이때문에 망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시기하고 궤계를 꾸미는 자들이 망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에게 불리한 조서가 만들어지고 왕의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진리 편에 분명히 섰습니다. 권모술수를 쓰며 자기 꾀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잘되는 것 같고, 우직하게 진리대로 사는 사람들은 손해보고 망하는 것 같이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요, 결국은 진리가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진리 편에 서 계십니다. 우리는 다만 진리를 위하고 진리를 위해 싸우면 하나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끝까지 인간적인 싸움을 싸우지 않고 진리 편에 서서 진리를 위해 싸울 수 있었습니다.

Ⅱ. 다니엘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11-28)

두 총리와 방백들은 금령이 반포되자 CIA를 풀어 밤낮으로 다니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를 본 원수들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즉시 왕에게 나아가 다니엘을 고소했습니다. “왕이여, 사로잡혀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13)” 이들의 고소를 들은 왕은 비로소 그들의 악한 의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조서에 어인을 찍었으므로 왕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로 인해 심히 근심하며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힘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방백들의 압력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도록 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은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며 한가닥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다니엘을 사자굴에다 넣고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것은 다니엘을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왕은 궁에 돌아와 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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