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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도자 에스라 (스 0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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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자세한 설명에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성경을 읽을 때 한 자 한 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바로 볼 수 있는 안목 을 길러야 한다.

 오늘 본문의 1절을 시작할 때에 이 일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하는 자가 있었으니 저는 스리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에스라라는 인물을 성경이 소개하면서 이렇게 소상하게 그의 가문과 시대 를 밝히고 있음을 주시해야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이 일 후라는 말은 앞의 사건이 있은 후 라는 말이다.

앞의 사건이 스6장의 사건이다.

그러니 6장의 사건이 있은 후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 후라면 무려 57년이란 오랜 년수가 지난 다음의 일이라는 것을 강조함이다.

 이 년수를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에서 놓여나서 고국으로 귀환하여 무너졌던 성전도 지어 봉헌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다시 저들의 생활에서는 이방 나라에서 보고 들었던 세상의 습성들이 점점 들어나디 시작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금 우상을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그 우상 앞에서 음란한 행이를 즐겨 방탕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시기임을 보여주심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매우 암울하고 혼란한 시기에 에스라 가 에루살렘에 나타난 것이다.

 1,에스라의 성품

그리고 1절에서 5절까지 에스라는 자기 자신을 소개함에 있어서 많은 선조들의 족보를 동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로써는 그렇게 밝히지 않고서는 에스라가 누군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스라는 지금 종교적 지도자로 예루살렘에 돌아 왔던 것이기 때문 이다.

 에스라가 돌아 오기 전에는 가문은 뼛대 있는 가문이었으나 천박한 농사 꾼으로 시골에서 생활을 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한 시골뜨기가 군대의 일반 사병으로서의 군생활은 감당을 할 수 있겠지만 유능한 군대의 지휘관이 되기란 어려운 것임을 보여 줌이다.

 그래서 에스라는 열심히 자기가 어떤 신분의 사람인 것을 밝히고 있다.

에스라의 신분은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든 P.R.의 시대라고 하면서 거창한 명함이나 소개장을 지니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전만큼 위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그 잘못된 선전을 믿고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다.

 그러나 에스라는 훌륭한 재목이었다.

1),에스라의 경건 '''''''''''''''' 에스라는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다.

에스라는 그 율법 배후에 역사하시는 통치자 하나님이 계심을 보았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돌아 오기전 바사 나라에 있을 때에도 율버베 능통 한 사람이어다.

 12절에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방왕이 에스라를 이렇게 호칭을 했던 것으로 보아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에 오한전히 통달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에스라는 고국으로 돌아간 백성들의 옳치 못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먼길이지만 그의 생애를 민족을 위하여 받치고자 고국으로 돌아 왔던 것이었다.

 지기만의 인정받는 삶이 있었지만 그 모든 영화를 다뿌리치고 백성들의 바른 삶을 위하여 돌아 왔던 것이다.

 2),용단과 담력의 사람이었다.

''''''''''''''''''''''''''' 9절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장장 5개월의 긴긴 여행을 했다.

 에스라의 돌아 온 길을 보면 참으로 험한 길이었다.

 에스라가 귀환을 자원했을 때 그를 돕겠다고 따라 나선 사람은 약 9,000명정도 였다.

그 중 남자 어른들의 수효는 1,773명이었고 그 남어지는 여인들과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이었다.

 이들이 바벨론에서 에루살렘까지 오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바벨론에서 에루살렘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832 KM 이나 에스라가 귀환한 길을 따라 거리를 환산하면 약 1,440 KM가 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가고 있는 백성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만 있을 수 가 없었던 것이 에스라의 심정이었다.

 2,에스라의 업적

6절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한 학사라고 했다.

1),성경의 기자및 편집자이다.였다.

''''''''''''''''''''''''''''''''' 에스라에 의하여 많은 성경이 쓰여졌다.

그리고 에스라에 의하여 성경이 정경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10절엔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2),회당의 창시자 '''''''''''''''''' 유대인들은 에스라를 회당의 창시자라고 생각한다.

에스라는 회당 예배의 체제를 확립한 사람이다.

 회당은 일반 백성들의 신앙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회당은 우리나라의 옛날 서당과 비슷한 역활을 했었다.

그러나 서당은 일반 학문을 전수하는 일에 전염했고 그에 반하여 회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로 하여 가르치며 또 연구를 했음이 다르다.

 이 회당제도가 없었다면 초대 교회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을까 이 회당제도를 통하여 초대교회가 세워지는 산실이 되었음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통하여 이미 교회를 세우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에스라와 같은 헌신의 사람들을 통하여 시작이 되고 완성이 되는 것이다.

 3,에스라의 교훈 1),신임의 사람이다 '''''''''''''''''' 6절에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여기의 왕은 바사 나라의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킨다.

아닥사스다 왕은 이방의 왕이면서도 에스라가 구하는 것은 무었이든지 다 주었다고 했다.

 13절에 조서 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게 갈지어다

이 때 에스라를 다라 나선 사람이 모두 약 9,000명 정도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라 나선 것을 보면 에스라는 누구에게든지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다.

 2),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했던 사람이다.

'''''''''''''''''''''''''''''''''''''''' 6절에서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으로...라고 했고

9절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라고 했다.

 우리는 에스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고자 결심을 하는 사람은 반듯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만사를 다 제쳐두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할려고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일생을 희생하엿고 하나님께서는 에스라를 이스아렐의 최고의 율법학사로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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