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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약속의 절대적 권위 (갈 03: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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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은, 어느 날 갑자기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당신의 종들을 통해 만민에게 해 오신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구원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율법 또는 양심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주장하며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갈라디아 교회에서 그러한 거짓 교사들이 대단한 활약을 하는 바람에 적잖은 교인들이 미혹되고 있었습니다. 이 불행한 사태를 알게 된 바울 사도는, 멸망의 길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교인들에게, 율법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폐기할 수 없다는 점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2. 인간의 언약
바울 사도는 율법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폐기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인간의 상식으로 설명합니다. 즉, 사람의 언약이라도 일단 정한 뒤에는, 아무나 폐기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약속한 당사자들은 물론, 제삼자도 정해진 약속을 어찌할 수가 없으며, 또 어찌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후 8세기에 아프리카 북서쪽에 살던 무어족이 스페인을 정복했을 때입니다. 이슬람교도인 무어족의 한 부자가 서사라센 왕국의 서울인 그라나다의 한 정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마침 낯선 한 스페인 청년이 급히 뛰어 들어오더니, “선생님, 제가 실수로 무어족 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경찰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제발 좀 숨겨 주십시오.”라고 간청했습니다. 부자는 그 청년을 보호해 주기로 약속하고 숨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이 부자에게 아주 슬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들이 어떤 스페인 청년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내가 숨겨 준 바로 그 스페인 청년의 짓이구나! 당장 복수를 해야지.” 하며 무기를 들고 원수에게 달려갔습니다. 달려가던 그의 머리에, 문득 결과야 어떻게 되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이슬람교의 계율이 떠오르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죽은 아들이 중한지 살아 있는 약속이 중한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어차피 죽은 아들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자기의 말을 주어 원수인 살인자를 도망가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부자의 처사는 도덕적, 또는 법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밥먹듯 폐하는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절대적 권위
아주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교훈은 부자가 정말 지키기 힘든 약속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약속 이행이란 매우 중요한 덕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교도인 부자가 죽기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계율을 따라 약속을 지켰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하나님의 약속의 절대적 권위
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간과의 약속은 물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 학습이나 세례 받을 때에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말씀을 순종하여 십일조와 감사의 생활을 하고, 헌신과 충성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인간과의 약속도 꼭 지켜야 한다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더욱더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과의 약속은 물론,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 까닭은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복과 엄청난 구원을 약속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누구, 그 무엇도 하나님의 약속을 깰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고, 또 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향해 약속을 하시고, 또한 약속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의 영원성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보다도 율법을 더 중시함으로써, 약속을 폐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사람들 사이에 정해진 약속도 확고해서 아무도 폐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데, 어떻게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폐기될 수 있느냐고 논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7:7-8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의거하는 이 땅, 곧 가난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했고, 또 22:17-18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 원죄
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의 일차적 의미는, 물질적인 땅과 유업 그리고 자손의 번성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은 번성했고,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약속의 일차적 의미 위에 영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칭의와 천국을 약속하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의 씨 곧 자손이 단수이면서 복수의 뜻도 나타내는 스페르마(σπρμα)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복받게 하는 한 존재이면서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란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의 궁극적 내용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라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롭다 하심을 얻고, 또한 영원한 천국을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만 효력이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에는 유대인의 경우에는 율법 행위, 그리고 이방인의 경우에는 양심 행위로 구원받게 하셨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유대의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430년 뒤에 약속보다 더 좋은 율법을 주셔서 그것을 행하여 구원받게끔 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축복과 구원의 약속은 430년 뒤에 생긴 율법이 없앨 수 없고, 또 그 약속을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은 약속의 개념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약속의 의미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약속한 순간도 약속이 성취된 순간도 아닙니다. 약속한 순간은 약속이 성립된 것이고, 약속이 성취된 순간은 약속이 끝난 것입니다. 약속의 의미란 약속이 성립된 이후부터 약속이 성립되기 직전의 기간입니다. 즉, 약속이 성립된 순간부터 약속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약속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마치 주인과 손님 사이에 월말에 갚는 조건으로 외상 거래를 하기로 약속하면, 그때부터 월말까지 현찰 거래와 똑같은 효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것이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은 복을 받고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약속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약속된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라도 복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 진리를 모르고,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무력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4. 맺음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을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약속대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하신 모든 축복의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로마서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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