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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복이 넘치는 새해 (창 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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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 온 이 새해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의 영혼과 가정에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복,복 하지만,복중에서도 가장 큰 복은 복의 근원이 되는 복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입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 이니라 하신지라

복의 근원이 되는 존재가 되어서 복을 창조해 가고 복을 만들어 가 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될뿐 아니라,나 때문에 다른 사람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가정에 복되고,우리 회사가 복되고,우리 교회가 복 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환경이 복되고,때가 복된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람자체가 복된 것입니다.

 이 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시는 근본적인 복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오늘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복을 주시고 계십 니다.

창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우리가 생각할 때는 모리아 산상에서 이삭을 바치는 것이 아브라함 에게 내리신 모진 시험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내용이 시험 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복을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만나는 내용입니다.

본문 창22:14에 나오는 대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즉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 모리아 산상의 역사는 복을 준비하신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었습니다.

아니 지금껏 달려운 그의 생애가 어쩌면 이 복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정든 고향집 갈데아 우리를 떠나는 정처없는 발걸음이 있었고, 하란에서 아비를 땅에 묻는 아픔이 있었고, 사랑하는 조카 룻과 헤어져야 했으며,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 갔다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비굴하게 속 여야만 했고,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함 가운데서 몸종 하갈을 통해 얻었던 아들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내보내야 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자식으로 얻은 이삭마져도 하나님께서 바치라는 말씀 을 듣고 이제 모리아 산상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참으로 굴곡이 많고 파란만장한 생애 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리아 산상의 역사는 복을 준비한 하나님과의 만남이었 고 어쩌면 그 생의 모든 행로는 이 복을 받기 위한 행로 였을 지 모 릅니다.

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정말 중요합니다.

(예) 야곱도 아비의 축복도 받고, 삼촌 라반의 집에서 많은 물질적인 축 복도 받아 가졌지만, 그 아비의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하나님 의 사자에게 밤새 메달려 축복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가 있습 니다.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 보내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고 그 의 자손이 하나님의 민족을 이루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복이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송구영신 예배를 시작으로 93년도 첫달을 계속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은 이 큰 복을 받은 모리아 산상의 아브라함은 어떤 자세를 가 졌길래 그 복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절대 신뢰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상식적으로 는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그를 통하여 하 나님은 수많은 후손이 생겨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마 엘도 내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바치라는 것입니다.

바치라는 것은 죽여서 제사드리라는 것인데 죽어 버리면 어떻게 후손이 생기라는 말입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그러신다면 그것은 책임지시겠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책임지실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다시 살리시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약속하신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은 다시 살 리시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닙니다.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 당시에 전파되지 아니한 부활의 신앙에게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환에게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시 돌아 오겠다고 말 했습니다.

절대적으로 믿는 신앙여기에 하나님의 복이 항상임합니다.

(예) 1975년 3월18일, 충남 공무원 교육원에서 당시의 충남 대학 교 총장이던 박희범 박사가 도내 234명의 읍면장들에게 강연 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해서 신문에서 크게 말썽을 일 으킨 일이 있었다.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미국이나 영국, 덴마크, 스웨덴, 스 위스 같은 나라들은 다 잘되고 발전해 왔는데 쿠바, 스체인, 포르투칼, 이태리 같은 천주교가 성한 나라는 발전하지 못했 다는 것은 참으로 생각할 일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못 할 말을 했는가 거짓말을 했는가 무식한 말을 했는가 그 런데 왜 말썽일까 그리스도를 모신 개인!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나라들은 지상에서 천국의 복을 부분적으로 나마 누리게 되는 것이다.

 잠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2.절대 순종이 복을 받게 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3절에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습니다.미적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3일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니까 제 삼 일에 모리아 산 어귀에 도착한 것입니다.

 순교를 빨리하는 것은 순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인내의 세월을 요구한다면 얼마나 어려울 것이겠습니까 산길을 올라가면서,장작을 준비하면서도 얼마든지 마음이 변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한 순종이 있습니다.

 여기에 협조적인 이삭의 순종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모습을 봅니다.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는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신28: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 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 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의 발걸음이 절대순종의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3.절대 사랑이 복을 가져다 줍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에 있습니다.

12절에 보면,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점점 더 주신 자 여호와 보다는 받은 자식이 더 귀중하게 생각되고 사랑이 깊어져만 갔을 것입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하십니다.

시험의 거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에 시험의 거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상일 것입니다.

(예)요한 일서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 사랑입니다.

맨 마지막절 요일5:21-우상에서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내 생명의 심지에 하나님을 향하여 타오는 사 랑의 불꽃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어떠한 것도 우상이 됩니다.

물론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일 사랑하는 것이 문젭니다

지식,명예,자식,체면,위신사람마다 나름대로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 귀중한 것을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여기에 시금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불합리하게 느껴집니다.복을 받자면 아들이 있어야 하겠는데 아들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판단까지 내어놓고 순종합니다.

나의 판단,생각을 십자가에 과감이 못을 박는 순간,모리아 산상에서 장엄한 제사를 드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라고 하는 것은 가장 귀한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예배,이 제사, 즉 주님만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절대사랑의 표현이 있을 때에 준비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는 자가 받습니다.

이것이 인정되는 순간 절대적인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아브라함의 복/ 창24:1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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