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늘과 땅의 교통 (창 28:10-22)

첨부 1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주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창세기에 보존되어 있는 아주 오래된 한 이야기, 창세기 28장 10-22절에 나오는 이야기, 거기에 담긴 내용을 명상하여 보는 것으로서, 오늘의 말씀 증거의 소임을 대신하여 보려고 합니다. 오늘 주일의 말씀증거 순서를 맡고, 증거하여야 할 말씀을 기다리다가, 바로 지난 수요일에 이 말씀을 만났습니다.
저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증거할 본문 말씀을 기다리는 편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에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기다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을 기다립니다. 한 달 전부터 기다리면, 대개는 한 두 주 전까지는 말씀이 옵니다. 신비스러운 여러 경로를 통하여 옵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에 그 본문 말씀이 오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어떤 본문을 물어오는 형식으로 그 본문 말씀이 오기도 합니다. 설교하기 이틀이나 사흘 전까지도 본문 말씀이 오지를 아니하여, 초조하게 기다린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신학을 공부하는 저의 큰 아들이 학기말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저더러 참고도서를 찾아달라고 할 때에, 오늘 증거할 이 본문말씀과 만났습니다. 구약에서 어떤 한 본문을 뽑아서 주석을 하는 리포트였는데, 바로 야곱이 베델에서 꾼 꿈 이야기를 주석하여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주석 연습을 하기에 좋은 구절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구절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평범한 이야기이었으므로, 나는 그 본문이 내가 기다리고 있는, 교우들과 함께 나눌 본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설교할 본문이 마련되지 아니하여 지난 수요일 밤 자정이 넘도록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로 나오니, 큰 아이의 방에 불이 켜 있었습니다. 가 보았더니, 그 아이는 창세기 28장 10-22절의 주석 책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녀석의 침대에 누워서, 주석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창세기 28장 10-22 절의 본문 자체를 한 번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그 본문을 읽었습니다. 저는 침대에 드러누워서 그 말씀을 듣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면서, 바로 이거다. 이번 주일에 증거할 말씀이 바로 이거다 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새로운 국면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자신이 체험한 그 새로운 국면을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한 청년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10절). 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저 혼자만의 특유한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의 주인공 야곱이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외가가 있는 하란이라는 먼 나라로 외국여행 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 여행은 결코 즐거운 관광 여행도 아니고, 즐거운 외가 방문도 아닙니다. 쌍동이 형제 에서와의 불화 때문에, 에서의 살인적인 증오를 피하여, 고향을 떠나는 외로운 도피여행입니다. 타의에 의한 고향 탈출 여행을 경험하신 분들,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어떤 형태의 여행이든지 간에, 도피성 여행을 하여 본 일이 있는 분들이라면, 지금 막 고향을 억지로 떠나는 야곱의 탈향과 그의 여행 진행 과정에 흥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 밤을 지내게 되었다.(11ab)고 합니다. 어느 곳인지, 그 곳의 이름이 분명하게 밝히어져 있지 아니합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간 뒤였다고 합니다. 그는 돌을 하나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잠을 자다가(11c), 꿈을 꾸었다(12a)고 합니다.

그는, 꿈에, 땅에서 하늘에 닿는 층계를 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봅니다(12b).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옆에 나타나시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13b-15)

야곱이 잠에서 깨고 보니, 꿈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주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16) 하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베델)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17) 하고 말합니다.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베고 잔 돌을 세로로 세워서, 석상을 삼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는 그 곳을 베델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마을의 본래 이름은 루즈였습니다(19-20).

야곱은 거기에서 서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20-22).

이상이 오늘 우리가 볼 본문 내용입니다. 길을 떠나는 한 나그네의 여행이 있고, 하나님이 오시어서 나타나시는 현현 사건과 약속의 말씀이 있고, 그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는 한 인간의 깊은 신뢰가 있습니다. 얼마가 걸릴지 예측할 수 없는 타향살이의 나그네 길을 떠나면서, 객지 생활에서의 안전과 확실한 귀향을 보장받고자 하는 야곱의 염원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한 나그네가 고향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여, 안전한 귀향을 간구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끝나고 있으며, 그 사이에 나그네와 하나님과의 만남의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본문에는 몇 가지 괄목할 내용이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이름도 잘 알리어져 있지 아니한 한 노숙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아니한 한 장소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찮은 한 장소가, 하나님께서 그리로 오시는 한 사건 때문에, 그 곳이 아주 중요한 장소로 바뀝니다. 여기 앉아 계시는 분 가운데에는 우리교회가 서 있는 이 평범한 동네가 이 우리교회의 이주와 여기에서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과의 만남 때문에 이 곳이 개인적으로 특별한 곳 거룩한 곳으로 생각되는 자매나 형제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숨의 위협을 받고서 도망치는 한 사람이 예기치 않게, 하나님께서 오시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는 중요한 인물로 바뀝니다. 이처럼 중요한 변화 곧, 한 장소의 의미 변화와 한 인물의 삶의 변화가, 다른 때도 아닌, 야곱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야곱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 바로 그 순간에, 발생하였다는 것이 우리가 괄목할 만한 국면입니다.

우리의 본문에서, 하나님의 오심에 대한 묘사는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야곱과의 만남은 꿈 속에서 발생합니다. 야곱이 깨어있는 세계는 형 에서가 언제 자기를 죽일지 몰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세계입니다. 공포의 세계입니다. 고독한 세계입니다. 형 에서가 받은 축복을 기만적으로 가로챈 다음부터는 두려움과 공포와 고독이 야곱의 삶을 지배합니다. 그런데, 여행 도중에 한 곳에서 그가 꾼 꿈은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어내는 병적인 악몽이 아닙니다. 그 꿈은 오히려 하나님과의 새로운 미래와 새로운 관계를 제시하는 꿈입니다.

그가 꿈에 본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본 것들을 다시 음미하여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공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도착하면, 지상근무 요원들이 이동 트랩을 끌고 가서 비행기와 땅을 연결시켜서, 비행기에 탄 승객들이 그것을 밟고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게 합니다. 내릴 때에 뿐만 아니라, 비행기에 탑승할 때에도 이 이동 트랩(boarding trap, boarding ramp)을 타고 비행기에 오릅니다. 야곱이 꿈에 본 것은 바로 그러한 이동 트랩이나 램프 같은 것이 하늘과 땅을 잇고 있고, 그것을 타고 천사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왕래하는 것입니다. 사닥다리 같은 것이 하늘과 땅을 잇고 있어서, 하늘이 땅에 닿고, 땅이 하늘에 닿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트래픽(교통)이 생긴 것입니다. 땅은 더이상 땅 대로 홀로 버티어 선 대륙이 아니고, 하늘 역시 더 이상 땅으로부터 단절된 신들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관계합니다. 여기에 크리스마스 메시지의 씨앗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적 존재인 한 사람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화육, 성육신 신앙의 씨앗이 이 꿈 속에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수요일 밤에 이 본문과 주석서들을 읽다가 이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본문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이 열리고, 열린 그 하늘이 단순 히 땅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의 아들 인간이 메신저인 천사들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주고 받는 비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땅은 이제 절망의 장소가 아닙니다.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유지하시고 지키시는 능력이 이 땅에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에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천사들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말심부름꾼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교통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트래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신저들이 하늘과 땅 사이를 분주하게 왕래하고 있습니다. 13-15절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약속에 암시되어 있듯이, 이들 메신저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옛 나라가 극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리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아니하는 곳에, 하나님이 오십니다. 첫번 크리스마스에 베들레헴의 한 여관 마구간에서 일어난 사건도 같은 종류의 사건입니다. 베들레헴 곧 빵집이 베델 곧 하나님의 집이 되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본문이 지니고 있는 진짜 이슈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 오시어서, 한 장소의 의미를 변화시키시고, 사람의 운명을 변화시키시고, 사람의 형편을 변화시키시는 그러한 일이 정말 가능합니까 그가 꾼 꿈과 거기에서 본 사닥다리와 천사들 때문에, 야곱이 바뀌고 그의 인생이 바뀝니다. 이 비전이 야곱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아직 이 비전은 예비적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본문의 핵심은 13-15절에 나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시각적인 비전은 보물과도 같은 약속이 주어지는 그릇일 뿐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살의(殺意)로부터 제 목숨을 건지려고 이 들판으로 도망 나왔습니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아무런 보장도 없이 이 벌판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약속을 듣습니다.

그가 지금 누워 있는 그 땅을 그와 그의 자손이 차지하게 될 것(13절)이라는 약속입니다. 땅에 사는 모든 종족이 그와 그의 자손의 덕을 입어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두 가지 약속은 이미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받았던 약속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특별한 약속을 더 받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내가 너를 지켜준다, 내가 너를 다시 고향으로 데리고 온다(15절)는 세 가지 약속입니다.

1.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땅에 있는 야곱과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늘이 땅과 함께 있으려고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성서적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진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로 오시어서 사람과 더불어 함께 계신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관한 모든 절망적인 판단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경우에도 이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혈혈단신, 빈손으로 도망가고 있는 한 도망자와 운명을 같이하시기라도 할 것 같습니다. 그에게 당신 자신을 얽어매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빈들에 와 있는 이 도망자는 버림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 때문에 궁지에 몰려 있던 예레미야에게도 들려왔던 말씀입니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보호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렘 1:19). 포로로 잡혀가 있던 백성도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사 43:1-2). 드디어 마지막 때에, 그 첫 크리스마스 때에, 그 때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의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였습니다(마 1:23). 그리고 예수께서 최후로 교회를 향하여,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20) 하고 약속하시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여기 나타나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형을 피하여 도망가는 야곱과 운명을 같이하시겠다는 하나님입니다. 위협을 받고 있는 한 도망자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첫째 약속이 함께 계심, 임재와 같은 상태와 관련된 약속이라면, 둘째 약속은 하나님의 행동에 관한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사람의 생명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가인 이야기(창 4:9)에서, 살인자 가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하면서, 형제를 지키는 자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 본문에 나오는, 형제를 피하여 도망가는 도망자 야곱은 하나님이 자청하여 지켜주는 자가 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 셋째 약속은 귀향의 약속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홈 커밍의 약속입니다. 타향살이와 귀향이라는 개념은 오늘날처럼 이동이 잦은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상처와 치유를 함께 주는, 정서적으로 예민한 개념입니다. 특히 형제지간의 불화와 반목으로 도망자가 되어서 고향을 떠나온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눈물겨운 낱말이기도 합니다.동족 상잔의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있는 개인에게나 집단에게 귀향의 약속은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남북한 이산 가족 가족에게 이보다 더 간절한 소원은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의 응답이 나옵니다. 약속은 꿈 속에서 받지만, 야곱의 응답은 잠에서 깨어난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본문에 나타난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 가지를 약속하신 것하고 짝을 맞추기라도 하듯이, 야곱은 세 가지를 서원합니다. 하나님이 동행, 보호, 귀향, 이 세 가지 약속을 지키신다면, 나는, 첫째,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둘째, 내가 세운 석상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고, 셋째, 소득의 십분의 일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야곱다운 계산이 여기에서도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과, 야곱이 다시 반복하여 확인하는 약속의 내용은 시편 23편의 내용을 생각나게 합니다. 야곱이 말한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창 28:20a) 라고 하는 말은 시편 시인이 말한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시 23:4) 라고 한 말을 연상시킵니다. 야곱의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창 28:20b)는 시편 시인의 나를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시 23:2-3)를 연상시킵니다. 야곱이 말하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28:20c)는 시편의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시 23:5)를 생각나게 합니다.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창 28:21)이라고 하는 야곱의 말은 나는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겠습니다(시 23:6) 라고 하는 시편의 말을 연상시킵니다.
지금은, 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오시는 하나님을 뵙지 못하고, 그의 약속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우리의 삶도 변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베개 베고 자고 있는 우리의 기숙지도 삶의 중요한 전환의 장소가 되지 못합니다. 이번 강림절에, 우리가 모두 비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꿈, 사닥다리, 하늘과 땅 사이를 왕래하는 메신저들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메신저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 1)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마, 2) 내가 너를 지켜주마, 3) 내가 너를 고향으로 데려다주마 하시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었고, 우리와 함께 사시었고,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처형되시었고, 그러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어 영원한 구세주가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임마누엘 약속의 성취를 체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사가 이번 강림절에 여러분의 삶 속에 가득히 넘치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