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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의 본성 (창 0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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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어난 지존파 일당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으로 인해 온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지존파 일다의 난폭성은 그야말로 필설로 표현 할 수 없는 끔찍한 것이을 누구나 인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끔직한 살인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두가지 견해를 보입니 다. 그 하나는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감정조절 능력을 상실하여 그러 한 살인자들이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에 대한 그들의 맹목적인 복수심리가 극단에 달하여 그야말로 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은 마음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사회지도층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이런 끔찍한 범죄를 종결지을 수 있을 까를 연구하는 가운데 도덕성과 인간성을 회복하 는 것만이 문제해결의 열쇠라고 보고, 이를 위해 유교의 효사상을 도입하여 이 사회를 정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해결방법이 이 사회가 처한 엄청난 타락과 불행으로부 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인가, 또한 익서이 올바른 해결방법이 될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심리학자인 헨리 알렉산더 머레이는 그의 유명한 '욕구이론'을 통해 인간 이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욕망이나 욕구는 개개인의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심층 깊이 들어가면 결국 인간의 본능 속에서 일어나는 것 인데, 프로이드는 이 인간의 본능을 다음 두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삶의 본능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본능입니다. 삶의 본능은 살고 자 하는 생동적인 본능으로 우리는 이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혼해 서 자손을 번창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본능은 삶에 대한 의욕 을 잃고 자꾸만 죽고자 합니다. 이렇게 죽고자 하는 본능이 강하게 일어나 면 죽음 앞에 선 어떤 사람은 잔인해지고, 어떤 사람은 낙심하여 자살에 이 르고, 어떤 사람은 사회를 공격하며 때론 반동적으로 사회에 살인자로까지 부각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이론에 따르면 지존파의 살인사건은 죽음의 본능이 삶 의 본능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그 죽음의 본능을 가지고 자기가 따라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살해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길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문 창세기 4장은 인간의 본성과 그 속에 있는 욕구로 인해 생긴 문제,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 다. 이 사회에 효사상은 고취하고 윤리성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양심이 완전히 마비된 것 같은 현대의 사회상황을 개조해 나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사 회가 개조되고, 정말 살기 좋은 사회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사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존파의 사건을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놀라와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사람들은 소수일 것이라고 자위도 해봅니다. 그러 나 범죄 심리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살인자의 심리가 존재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범죄할 수 있는 잠재적인 악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뜻입 니다.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도 '불가피하게 죄를 짓게 하는 근본적인 악 이 누구이게나 있다'라고 말하빈다.

 성경은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 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 니 하나도 없으며(롬 3:9-10)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죄인이요, 인간 이 악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가인의 살인을 통해서 살인의 동기와 원인, 그리고 그 해결 방법까지를 너무나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 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에덴의 동쪽에 있는 놋 땅에 살면서 자식을 많이 낳았습니다. 그중에 가인은 성장 하여 농사꾼이 되었고 아벧은 양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년이 되어 제사 를 드리는데 가인은 땅의 소산인 곡식을 제물로 하나님게 드렸고 아벧은 양 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벧롸 그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 제 물은 받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분노한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벧을 죽이기에 이릅니다. 이들은 친형제지간이었습니다. 왜 골육간에 서 로 죽이는 이러한 살인사건이 생깁니까

본문 5절에 보면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 이 바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원인인 것입니다.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 니라는 말은 마음에 극도의 분노가 일어나 안면 근육이 경직되고 분노를 참지 못하여 그만 동생을 죽이고 만것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열납치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쳐다 보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벧의 제사를 열납했다는 말은 가인도 귀한 곡 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인간의 편에서 볼 때에는 정말 화가나고 분노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이 이유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는 분명한 이 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사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우리 가 예배를 드릴 때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고, 좋은 말씀이 선포되고 많은 헌 금을 드려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헛예 배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 고 했습니다. 예배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또, 히브리서 11장4절에 보 면 믿음으로 아벧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의 제사는 피의 제사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9장22절에 보면 율 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그 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는 속죄의 제사요, 제물이었던 것입니다.

 아벧은 어린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양의 피를 흘 려야 했습니다. 아벧은 이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깰다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게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실 것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벧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대속의 피로써 자신이 용서받기를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으밍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벧의 제사와 그 인격을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며, 그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피의 제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도 못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한 채 그만 분노의 적개심 으로 살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1서 3장15절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 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말씀했듯이 미움이 자꾸 커지면 살인하게 됩니다.

 금번의 지존파 사건은 맹목적인 분노와 맹목적인 미움에 기인합니다. 자기 보다 잘 살고 배운자들에 대한 분노, 사회가 불공평하게 돌아간다는 데에 대한 강한 증오심과 시기심이 폭발한 것입니다.

 세상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제는 자기 부하인 클레터스장군과 술자리를 함 께 하다가 사소한 시비 끝에 격분한 나머지 창을 휘둘러 친구이자 부하인 클레터스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후 알렉산더는 큰 괴로움 속에서 몇 번 이나 자살을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역사가들은 말하기를 알렉산더는 천하는 정복했지만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는 정복하지 못했다고 말했 습니다.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 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또,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일 을 이루지 못한다고도 했습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음의 분노를 자제할 수만 있다면 이 사회는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분노하게 됩니까그것은 근본적으로 죄 때문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채 효사상과 윤리, 도덕을 강조함으로써 이 사회 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은 더러운 옷위에 깨끗한 옷 한벌을 덧입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내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하면서 '죄'라는 세 번씩 강조하고 있습니다. '죄가 엎드린다'라는 말은 히브리말의 원뜻에 '뱀 이 먹이를 낚아 채기 위해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라는 표현입니다. 뱀은 성경에 '죄'라고 나타나기도 하며 '사탄마귀'를 말하기도 합니다. 즉, 뱀이 웅크리고 있듯이 오늘도 원수마귀는 여러분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주관 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분노를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마음 속에 분노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탄과 싸우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것은 아닙니다. 첫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게 불순종함으로써 범죄하여 그 죄가 후손에게 전가되는 것을 원죄라 고 하는데 사탄마귀는 이 원죄를 자극하여 우리로 죄를 짓게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극복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의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 라는 말은 죄 를 극복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죄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죄를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서 나를 대신해서 흠없는 양 한마리가 죽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의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 다라는 말은 가인이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표를 주셔서 가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 다.

 이 구원의 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해 주실 것을 예표하는 것 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 다.

 이 사회가 진정으로 살기 좋은 사회가 되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된 사람들로 가득할 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죄를 회개하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 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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