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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아의 방주를 살펴보니 (창 06: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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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아의 방주

우리는 노아를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방주와 홍수, 그리고 심판과 구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방주' 그 자체에 주의력을 모아서 방주에 담긴 노아의 땀과 정성을 생각함과 동시에 오늘의 우리가 붙잡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합니다.

2. 찻나무로 만들어진 방주

먼저 방주의 재료를 보니까, 잣나무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잣나무라고 하면 나무 중에서도 귀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방주의 길이가 300규빗, 넓이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라고 했습니다. 길이가 약 150m, 넓이가 약 25m, 높이가 약 15m나 되는 거대한 배였습니다. 그 규모의 배를 잣나무로 다 만들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지금처럼 전기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무를 운반하기에 용이한 산길이 있었을리도 만무한 시대에, 그 큰 배를 잣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다시 모아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아의 수고와 정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고 할 때 우리의 수고와 정성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은 가득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수고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에게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노아보다 더한 수고라고 할지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빈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기도 바쁜 우리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는 잣나무가 아니라 자기의 편리에 따라 다른 나무를 가지고 방주를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의 사정이 먼저이고, 자기가 하면 하나님께서 용납할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3. 역청으로 틈을 막은 방주

방주의 기본자재를 잣나무로 사용한 것에서 노아의 수고와 정성을 살펴본 우리는 잣나무들의 틈새를 막은 역청의 효용성입니다. 잣나무들이 아무리 정교하게 연결되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틈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작은 틈들은 결국 방주를 침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 틈을 역청으로 칠하여 봉함으로써 방주의 안전성을 확보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자세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틈새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틈새를 우리는 무심히 지나거나 방치하는 예가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틈새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드는 사람도 없습니다.

잣나무의 수고가 헛되지 않으려면 역청을 바르는 후속적인 수고가 동반되어 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요동치는 물결과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건재하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역청을 바르는 수고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짓고 있는 믿음의 방주는 침몰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역청을 바르는 일은 우리를 살피는 일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신앙생활의 상태와 내용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깨닫고 확인하는 일입니다.

4. 엄청난 규모의 지어진 방주

노아가 만든 방주는 실로 엄청난 규모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 규모를 길이가 300규빗, 넓이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라고 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오늘날의 계측법으로 환산해 보면 길이가 150m, 넓이가 25m, 높이가 15m입니다. 이 정도의 크기라면 14,000톤 정도의 적재량을 견딜 수 있는 배라고 합니다. 당시의 배를 만드는 기술이나 방주를 만든 인력 등을 감안해 볼 때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입니다. 이 엄청난 규모의 배를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건조한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를 규모의 측면에서 관찰하는 이유는, 우리의 신앙공간이 지금의 상태보다는 더 커져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웅혼한 하나님의 약속을 담기에는 우리의 신앙공간이 협소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을 유지하기도 벅찹니다. 헌신의 규빗이 너무 낮고, 기도의 규빗이 너무 짧습니다. 소망의 규빗도 좁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수고의 규빗도 너무 작습니다.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규격에 크게 미달하는 규모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고 있는 믿음의 방주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규격에 합당한지를 살펴야하겠습니다. 헌신의 규빗, 기도의 규빗,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수고의 규빗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설정하신 기준에 합당하도록 규모를 키워야 하겠습니다.

5. 우리가 지어야 할 방주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방주를 좋은 자재를 사용하여 빈틈없이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는 침몰하지 않는 생명선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노아의 방주와 같이 수고가 동반된 헌신의 방주,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 믿음의 방주,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는 방주를 건조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기쁨을 간직할 뿐만 아니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생명선이 되시기를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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