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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회개 (고전 10: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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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어떤 질문을 해 올 경우에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그들의 관심을 하나님께로 돌리도록 유도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빛에서 해결책 또는 해답을 제시해 주곤 하셨습니다.
문제투성이인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우상에게 바친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대한 교훈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먹어서는 안 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확산되어 ‘먹는 파’와 ‘먹지 않는 파’로 갈라져서 서로 비방하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고린도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바울 사도에게 문의했습니다.

2. 사랑을 위한 자유 및 권리 유보

이 문제에 대한 바울 사도의 태도는 매우 독특했습니다. 먹어도 된다거나, 혹은 먹으면 안 된다는 식의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파가 옳고 저 파는 그르다고 판단해 주는 대신에, 하나님의 교회 전체의 유익과 덕이라는 점들을 내세웠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정당한 자유와 정당한 권리 행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하거나 덕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잘못을 저지르거나 부당한 자유와 권리 행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을 통해 잘 아는 바와 같이, 정당한 자유와 권리 행사란 경우에 따라서는 부덕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악덕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고는, “내가 뭐 못할 소리를 했냐 못할 짓을 했냐” 하는 식이면 곤란합니다. 군인에게 필수 덕인 용기가 적군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발휘된다면, 그 용기는 덕이 아니라 악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정당한 자유요 정당한 권리 행사라 할지라도, 사랑을 위해서는 유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의 취지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또 개인적으로 아무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교회에 손해나 부덕이 될 경우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태도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즉, 제물을 먹어 육신의 배를 불리지 말고,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연약한 교인들의 양심과 건덕을 배려하여 천국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 생활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적용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대통령이라는 품위와 체면도 없이, 먹어도 될 것 안 될 것 가리지 않고 마구 먹어대어 급기야 수천억원이 넘게 된 사람에 대해 온 세계가 떠들썩한데, 그 사람이 신부가 운영하는 ‘꽃동네’에 보낸 후원금은 매달 천원이었다고 합니다. 부창부수라고, 그 아내도 똑같이 매달 천원씩 보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의 자유와 권리 행사는 어디까지나 이웃 사랑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먹어도 될 경우

바울 사도는 주님을 믿는 믿음에 철저한 사람이지, 인생사에 막힌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고린도에는 우상의 전이 많았고, 거기에 제물로 바친 다음에 시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에 시장의 고기는 대개가 우상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에 진열된 고기 등 양식은 이미 제물로서의 종교적인 특성을 상실한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매매되는 것이므로 누구든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유대인이 제물을 먹기 전에 엄중한 물음을 양심에 묻는 것처럼, 공연히 “제물이냐 아니냐, 먹어도 되냐 안 되냐” 하고 물어 양심에 걸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알고 그냥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바울 사도는 땅과 땅에 충만한 것이 다 주님의 창조물이요 소유물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4에도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역시 같은 이유로 불신자의 집에서 차려 놓은 음식물도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그냥 먹으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은 우상의 제전에 참례해서는 안 되지만, 이교도들과의 교제는 이웃 사랑과 선교적인 차원에서 계속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이 약한 교인들이나 교회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에는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 약한 교인들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이웃 사랑과 선교적인 차원에서 이교도들과 함께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4. 먹어서는 안 될 경우

바울 사도는 먹어서는 안 될 경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약한 교인이 “이 음식물은 제물입니다.”라고 말한 경우에는, 알려 준 그 교인과 그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신앙 양심 때문에 먹지 말게 할 의도로 제물이라고 알려 준 것인데, 모른체하고 그냥 먹는다면 알려 준 교인의 비난을 받게 됩니다.
결국 내 자유와 권리 행사가 약한 교인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또 비난의 죄를 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취지는, 일껏 좋은 식탁에 초대받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서 약한 교인의 비방을 받을 필요가 없잖느냐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13)라고 했습니다.

5.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결론적으로, 바울 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안 먹느냐,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 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함인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경우에는 먹고 마시는 것이 좋고, 안 먹고 안 마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경우에는 안 먹고 안 마시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이 말씀의 권면은 비단 우상의 제물 문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전 생애의 대강령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밀로반 딜라스는 한때 유고슬라비아의 정예 막스주의자였습니다. 20대 초기에 반정부 활동으로 투옥되었을 때, 그는 아주 더럽고 악취 나는 감옥 하수구를 통해 공산당 서적을 감옥으로 밀반입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는 “공산주의를 위해 더럽거나 천하거나 하찮은 일은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일을 기꺼이 수행했다고 말했습니다.6. 맺음말

여러분, 불신자인 공산주의자가 악한 이념을 위해 그토록 헌신적이었는데, 우리는 주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교회에나 모든 사람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과 덕을 끼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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