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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부활되나? (고전 15: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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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정하면서도 궁금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사후의 생에 관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일부 학자들은 사후의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고, 또 죽었다가 소생한 사람들에 관해서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고, 또 구주의 부활이야말로 장차 우리가 부활할 것에 대한 소망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0에 보면,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임을 입증한 바울 사어떻게 부활되나
도는, 본문에서 죽은 자들이 어떻게 부활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2. 부활하게 되는 방법

사람들이 사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갈 세계가 있다고 하면,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게 마련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사느냐” 하며 항변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라고 하신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한 니고데모의 질문과도 비슷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을 부정하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헬라와 로마 세계에서는 지혜 및 지식과 힘을 추구하였고, 또 그런 것들을 소유했다고 자랑했습니다마는 가장 중요한 영생의 진리인 부활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그들을 지목하여, 그들이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즉, 씨가 땅 속에 들어가 죽어야만 새싹이 나는 것을 너무나 잘 체득하고 있으면서, 어째서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느냐고 나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씨가 죽어 새로운 형체로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사람도 죽으면 새로운 형체로 다시 살아난다는 점 이외에 어떤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식물계에 있어서의 물질의 불멸성을 인정하거나, 인간의 부활이 자연 법칙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부활되나
단 한 번뿐인 인간의 부활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이뤄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11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알 것을 바로 알고 확고하게 믿어야만 합니다. 영육일치의 우리 존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이 세상에서는 죽지만,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부활 사상은 육체만 죽어 없어지고 그 속에 갇혀 있던 영혼은 결코 멸하지 않는다는 영혼불멸설도 아니고, 지금 이 육체가 다시 산다고 하는 육체의 부활도 아닙니다. 물론, 소생이나 환생과도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았던 자아를 천국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하도록 새로운 형체로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활의 소망이 되는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 모두 재물이나 권세, 지식이나 지혜, 예술이나 명예 등을 추구하되 그러한 것들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말고, 오로지 영원한 천국 삶을 위한 방편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할 몸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고 하면, 어떤 몸으로 오느냐고 항변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해 바울 사도는,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뿌려지는 씨와 거기서 싹이 나서 자라는 식물과는 실체나 형태가 다르나 동일한 유기체인데, 각 씨의 장래 형체는 씨를 뿌리는 인간이나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은 인간과 부활한 인간은 실체나 형태 등이 다르나 동일한 유기체이며, 부활한 인간의 형체는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형체를 가리켜 고린도전서 15:44에 신령한 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식물에 비유하여 부활의 방법과 부활의 몸을 설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 세상에는 하늘의 진리를 암시해 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생리학자는 인간의 몸에는 1분마다 500만개의 세포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육의 몸과 다른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고 하는 말씀을 못 믿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활동하실 때, 생명의 권세를 가지신 영생의 주이심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 그리고 굴로 된 무덤 속에 있던 나사로를 소생시키셨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시키신 것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미리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가끔 완전히 죽었다가 소생한 기이한 사건들을 접하게 됩니다. 최근에 저는 그와 같은 기이한 일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호흡이 끊어져 죽은 줄로 알았던 82세의 한 미국 노인이 검시관의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되살아났다는 기사입니다. 2주일 이상 인기척이 없다는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노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 노인은 악취까지 풍기는 완전한 시신 상태였는데, 검시관이 사진을 찍기 위해 플래시를 터뜨리자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물론, 이 기이한 사건은 천국에서 살기에 적합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생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소생한 사람들을 통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는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의 첫 번째 요지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더라도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요지는 형체 곧 몸이 항상 반드시 똑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자아에 육의 몸이 있게 하시고, 뒤에 신령한 몸이 있게 하시는 것처럼,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여러 가지 몸을 지정하시고 선택하십니다.
바울은 “육체는 다 같은 것이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라고 했습니다.
자아의 욕구를 좇아 사는 인간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을 좇아 사는 인간의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사는 사람의 영광이 다 다릅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광은 엄청나게 다를 것입니다.

4. 맺음말

정사와 권세를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우리 주님은, 사망 권세를 제압하고 부활하심으로써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 주님은 우리의 부활의 소망이요 보증이 되어 주셨습니다. 씨가 죽어 새로운 형체의 식물로 다시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육의 몸을 가진 우리 안에 보내 주신 당신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이 엄청난 영광의 소망을 굳게 붙잡고 위엣 것을 추구하며 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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