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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화될 수 없는 사이 (고후 06: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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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대한 효심과 자식에 대한 사랑과 형제 자매 사이에 우애가 없이 각자가 제멋대로 놀아나는 가정을 가리켜, ‘콩가루 집안’이라고 합니다. 가정만이 아니라 교회나 직장, 학교나 국가가 콩가루와 같은 상태가 되면 끝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공동체만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공동체에까지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됩니다. 한 예로, 문제가 어느 쪽에 있든 간에 노사 분규로 인해 그 회사가 수백 억, 수천 억 원의 손해를 보고, 또한 관련 기업과 지역 주민들의 경제 생활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준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서로 다른 각자의 개성과 재능과 실력 등이 하나의 뜻과 목적을 위해 화합과 조화를 이룰 때에는, 단순히 합쳐진 결과 이상의 엄청난 힘과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공동체에까지 막대한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결코 화합하거나 조화되어서는 안 될 경우가 있습니다.

2.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불신자와 이교도 그리고 이름만의 교인과 멍에를 같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라는 말은 원래 다른 종류의 동물들에게 같은 멍에를 씌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종류가 다른 짐승들에게 한 멍에를 씌워 밭을 갈면, 한 멍에를 멘 짐승들의 본성이 다르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실험 삼아 소와 사자에게 한 멍에를 씌우면, 결국 애꿎은 소만 죽이게 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은 불신자인 배우자와 이혼하라는 것도 아니고,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불신자와 함께 제물이나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세상의 관습과 제도와 법 등을 전적으로 무시해 버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지금도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그들과 직접 간접으로 얽혀 있고, 또 앞으로도 이 세상을 떠나지 않는 한 불신자들과 얽혀진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인 복음 전파를 위해서 그들과 교제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취지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취지는 불신자들의 우상 숭배를 비롯한 모든 죄악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일에 공동 보조를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상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 또한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더더구나 그리스도와 벨리알 곧 사단이 서로 조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궁극적으로는 사단에 속한 불신자들이 상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는 길이 다르고, 이미 받은 것이 다르고, 앞으로 받을 몫이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그런데 믿음이 좋다고 자부하는 교인들 중에도 우상 숭배적인 습성과 습관을 따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언제가는, 혼기가 된 자녀를 둔 어느 교인이 열심히 궁합을 보곤 하길래, “하나님 믿는 사람이 궁합을 뭐하러 봐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색을 하면서 “아유! 목사님, 믿는 사람도 궁합은 봐야 되는 거예요. 궁합 보는 건 미신이 아녜요.” 해서 웃고 만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알던 총각은 찰떡 궁합이라고 해서 얼씨구나 좋다고 결혼했는데, 걸핏하면 싸우고는 색시는 친정으로 가고 신랑은 시집으로 가곤 했는데, 요즈음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역책 등을 보고 푸는 것은 미신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그 궁극적 배후에는 사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신앙 생활을 영적 싸움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불신자들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 배후에는 그들이 알든 모르든 간에 주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영적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말년에 자기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불신자를 사랑하되, 그 속에 혹은 그 배후에 작용하는 영적 세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적 세력을 제압할 영력을 갖춰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자들에 끌려 주일을 범하고, 세상적인 재미에 빠지고, 죄악의 낙에 탐닉하다가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윌리암 부쓰(W. Booth)는 공중의 권세잡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죽어 가는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는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거룩한 전쟁이라고 하며 구세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그가 불행한 환경을 이기고 만난을 극복하면서 복음 전도자가 된 후, 어느 날 유명한 장군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장군의 부인이 “이제 장군은 칼을 버렸지요. 칼 대신에 괭이를 가지고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한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스는 “각하의 전쟁에는 평화도 있고, 쉴 때도 있군요. 그러나, 우리의 전쟁에는 휴전이나 휴식이 없습니다. 매일 긴장하고 계속해야 할 전쟁이지요. 그런데도 우리에겐 봉급도 없습니다. 아마 천국에서나 받게 되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3. 신자의 신분

믿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신, 살아 움직이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할 수가 없는 것처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일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에 죽은 우상이 세워진 역사적 사건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영이 내주해 계신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에, 죄악의 낙을 누리고, 죄된 욕망만을 추구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우리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신다는 축복의 말씀을 망각하고 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영역 안에 있는 불신자들 가운데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우리를 영접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약속은 이미 우리에게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령님의 역사를 좇아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2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했습니다.

4. 맺음말

조나단 에드워즈(J. Edwards)의 고백을 소개해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나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힘을 다해 세상과 정욕과 악을 대적하여 싸울 것이다. 복음을 고백하거나 전하는 데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나는 복음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겠다. 이 결심을 사람들이 전적인 헌신으로 보아서 나를 주님께 속한 자로 받아들여 주기를 위해 기도한다. 이제부터 나는 나 자신을 내 것으로 알고 행하지 않겠다. 만일 내 능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 아닌 데에 사용하거나, 전심 전력을 기울여 그 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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