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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사야의 변신 (사 0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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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평범한 사람 이사야가 위대한 선지자로 변신하게 되었던 한 사건에 대한 것이다.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는 몇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예언자였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세례 요한의 탄생과 사명도 그의 예언에 따른것이었다.

마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은 아예 1장 2절에서 이 귀절을인용하고 있다.

눅3:4-6, 요1:2

3... 사복음서가 모두 인용하거나 언급하고있다.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설명하였다.

눅4:17-21, ...이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고난받는 종으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도 이사야의 예언에 따른 것이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본래의 이사야는 지위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혹은 웃시야왕의 사촌이었다고도 말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관직을 갖거나 영향력있는 위치에서 일하던 사람은 아니다. 무명의 이스라엘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국운이 쇠하여 가던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서 다른 사람처럼 고통하며 고민하며 불안해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 속에는 위대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제 오늘의 설교로써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밝혀야 할 때가 되었다.평범한 이스라엘인, 무명의 사람 이사야로 하여금 위대한 선지자로 변신하도록 작용한, 그래서 얼마든지 우리 모두의 인생을 더 멋지고, 더 훌륭하고, 더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오늘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밝견할 수있 는 간단한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바로 본문은 이사야의 소명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도 이사야와 같은 변화를 체험해야 한다

이 점을 다음에서 세 부분으로나누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1. 이사야가 만난 하나님(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3절에 천사들의 노래를 들으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이스라엘 역사 후반기의 사회상은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타락되어 있었다 .

부자가 가난한 자의 머리 위의 먼지를 탐할 정도로 탐욕과 사회 부정의로 가득해 있었다. 하나님은 다만 풍요의 하나님, 물질적 축복만을 주고 마는 하나님, 자기 삶의 방편으로서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바로 이런 타락과 죄악의 세상 가운데 살던 이사야가 천사들의 찬양을 들었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복의 수단과 방편으로 이용하지는 않는지 병고침의 수단과 방법으로 환난을 피하는 부적처럼 많은 신앙인들이 자기 삶의 방편으로 신앙생활하며,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다.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2) 歷史의 主權者이시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고 하나님의 음성이 이사야에게 임하였다.

 이 때는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했던 시기이다. 주변에강대국들이 등장하고 이스라엘의 국운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이런 때에 애굽하고 동맹을 맺느니하는 등 교묘한 정치적 동맹 관계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세울지언정 하나님에게 진지하게 의지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저 옛날 조상들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예전에 존재하던 분, 출애굽의 역사를 이룬 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으로 생각하고 믿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에 관계하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사야는 역사 안에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주권자이시다. 오늘 우리의 삶에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

 3) 罪惡으로 물든 인간의 역사에 關心하시며 우리의 救援을 위해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원자 하나님.

 죄악을 밥먹듯하는 자들에게 엄한 심판의 경고와 그 중에서도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듯이 거룩한 씨는 남겨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기도에 있어서 지연이 곧 응답의 거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있다 . 잠시의 죄악의 관영은 심판의 포기가 아니라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 속에서 고통하는 의로운 백성들, 신앙의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섭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아시대의 대홍수 바벨탑의 심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예수님도 심판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도끼 불에 태워지는 쭉쩡이 슬피울며 이를 가는 자.

 11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이 죄악의 세상을 준엄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지만 그 안에 구원의 섭리가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사야는 구원의 하나님을 만났다.

 이 죄악된 세상 가운데, 심판의 날이 임박한 세상 가운데 구원의 주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인

2. 하나님을 만나고 깨달은 이사야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가) 1) 죄인-인간의 유한성-자기의 현상태를 깨닫는 성도.

5절-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 이신 왕을 뵈었음이여 이전에 이사야는 죄를 짓고 살았다.

죄를 짓는다는 의식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죄에 대해 별 생각없이 지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

그러므로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죽었구나.

 주님을 알기 전에,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죄를 짓고도 죄책감이 없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후에는 죄를 깨닫고 죄의 심각성을 알게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앙인들은 주님을 만난 후에도 죄에 대한 무감각증에 살고 있 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깨닫는 신앙인이 되길.

우리의 불신앙의 죄 미움의 죄 시기, 질투의 죄 투기의 죄 교만의 죄

죄의 심각성을 깨닫는 신앙인.

 2)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 6-7절

죄 용서함의 은혜 출33:20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자가 없음이라 분명히 일점일획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고 죄를 사해 주셨다.

그에게 영생을 허락하셨다.

 소명을 주셨다.

죄인에게 오히려 일을 주셨다. 용서해 주시는 것만도 고마운데 할 일까지 준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서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나의 현재의 상태를 깨닫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입는 성도.

 3.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오랜 동안 신앙생활 해 왔다.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성경 교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컬컬하고 답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반문한다. 문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데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이사야의 경우처럼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처지에 있다는것이다.

이사야는 신앙의 민족 이스라엘 중에 태여났다. 어려서부터 신앙 교육을 철 저하게 받으며 자라왔다. 그는 특별히 제사장 가문에 속하였고 율법에 따라 제사장직을 세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앙은 습관적이고 관습적이며형식적인 것이었으며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결코 살아 역사하시는 존재가 아니었던것이다.

그러던 그가 오늘 본문의 사건에 이르러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무엇을 意味하는가 1) 하나님을 過去의 하나님이 아니라 現在의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다.

하나님과 접하게 되는 것은 주로 성경을 통해서이다. 성경의 이야기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하였으며 어떤 약속을 주고 계시는지 알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우리들은 하나님을 창조의 하나님, 출애굽의 하나님,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 바벧탑을 흩으신 하나님, 다윗에게 용기를 주사 골리앗을 넘어뜨린 하나님등의 형식으로만 이해하고 말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곧 성경의 한 이야기 토막을 기억해 내기는 하면서도 오늘 여기 내가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와는 연관시키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의 하나님이시다.

오늘 나의 삶속의 나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

 2)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다.

위의 설명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사무엘의 하나님등으로 알면서도 나의 하나님, 이시대의 하나님으로는 확신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결코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한다. 산자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나의 생생한삶의 문제에 관심하시며 살아 숨쉬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구원의 역사를 계획하시고 일군을 부르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2000년전 4000년전의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나의 하나님.

이우성의 하나님

3) 하나님을 知識의 對象이 아니라 人格的 關係의 相對로 알게 되었다.

과거의 하나님은 지식의 대상으로 그친다. 현재의 하나님은 만남의 상대이다. 하나님에 대한 산더미같은 지식도 우리를 그에게 가까이 해주지 못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말씀하소서, 주 뜻대로 살겠읍니다, 도와주세요등의 고백과 기도로써만 맺어질 수 있는 분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과 삶속에서 우리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고,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고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있기를

현재의 하나님 산자의 하나님 관계의 하나님

이사야는 무명의 사람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므로 가능해졌다.

거룩하신 하나님, 주권자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을 만나고 나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놀랍게 쓰임받는 위대한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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