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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둠에서 빛으로 (사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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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양정신이라는 여자 목사가 있었다. 그분이 “이 어두움을 비추이다”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이 감명을 받았다. 그중에 “신하사”라는 탈영군인이 있었다. 이 사람은 지금부터 약30여년전 안동의 어느 극장에 수류탄을 들고 들어가 인질극을 벌였던 사람이다. 사형을 언도받고 형무소에 수감중 바로 양정신목사의 간증을 읽고 큰 감화를 받아 자신의 눈을 빼어주겠다고 까지 했었다. 이 사람은 완전히 변화를 받아 예수믿고 사형됐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어두운 곳에 빛이 비췬것이다.

2.숱하게 많은 사람이 예수를 통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찾았다. 살인강도가 변화됐고 흉악범이 새사람으로 변화됐다. 이 땅에 오신 예수는 구석 구석의 어두움들을 물리치셨다. 그리고 새빛을 주셨다.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I.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1-2).
A.어둠과 절망이 계속되는 시대였다.

1.이스라엘의 국가적으로 볼때 바벨론의 포로생활 70년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 이었다. 남왕국 유다의 실정은 절박했다. 아람과 에브라임의 전쟁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2.인간은 문화를 창출하고 발전시켜 가지만 그 문화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다만 잠시 편하게 할 뿐이다. 잠시의 편안을 위해 인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고 그 댓가로 고통의 열매를 거둬야 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인생길이다.
B.이 어둠을 비추는 큰 빛이 임했다.

1.이 빛은 모든 곳에 임했다. 스불론과 납달리라는 지역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받던 지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빛은 이방인들의 지역도 비추일 것임을 예언했다. 이방인 지역이란 멸시와 천대가 극심했다는 표현이다.

2.이 빛은 바로 서기 원년에 탄생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한다. 지금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 탄생 약 800년전 이었다.

3.이사야의 예언대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 스불룬과 납달리가 있는 유대 땅을 환하게 비춘 주님의 빛은 지금 이 한국강산을 그 어느 때 보다 더 강하게 비추고 있다. 그리고 헌신된 선교사들을 통하여 이 빛은 지금도 자꾸만 더 어두운 곳을 찾아서 비취이고 있다.

4.아시아의 오지와 아프리카의 구석 구석까지 비추인다 해도 꼭 비추어야 할 중요한 곳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심령이다. 나 자신의 가슴을 비추는 빛이되어야 한다. 나를 비추지 못한 빛은 아무리 먼곳을 비춰도 나와 상관이 없다.

5.상처로 얼룩진 가슴, 원망으로 가득찬 가슴, 미움으로, 증오로 가득찬 가슴마다 주의 사랑의 빛, 생명의 빛이 비추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큰 영광을 보게될 것이다. 이 영광은 자신을 맡기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두움은 더이상 자리잡지 못한다. 빛은 단순히 어두움만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 빛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다.

II.빛은 엄청난 변화를 동반한다(3-5).
A.기쁨이 임했다.

1.이 기쁨은 옛날의 영화를 되찾은 자에게 주어지는 근원적인 기쁨이었다. 억지로나 강제에 의한 기쁨이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 기쁨, 마치 여호와의 법궤를 되 찾아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는 모습을 본 다윗의 기쁨과 동일한 기쁨을 의미한다.

2.농사꾼은 가을에 기쁨을 누린다. 봉급생활자들이 한달에 한번 누리는 기쁨과는 또 다른 기쁨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누리는 기쁨이다.

3.주의 영광이 임한 곳에 기쁨이 온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을 때 그는 기쁨의 사람으로 변한다.
B.평화가 왔다.

1.1991년의 성탄절은 그 어느해 보다도 유래없는 평화의 분위기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이다. 미국의 과학자 협회는 핵전쟁의 위협을 상징하는 “종말의 시계”바늘을 12시 7분 전에서 17분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2.미국과 소련은 무기감축을 위해 협상을 하고 있다. 사실은 그들이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경제적인 현실여건상 어쩔수없이 선택한 길이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자.

3.우리가 주 앞에 설 때 우리는 완전한 평화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 땅에는 미움과 욕심과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냈고 또한 큰 변화를 주었다. 이 빛은 도대체 어떻게 주어진 것일까

III.빛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6-7).
A.우리를 위하여 한 아들을 주셨다.

1.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주셨다. “우리”라는 말 속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다. 힘없고 연약한 나, 때로는 실수하고 좌절하는 나를 위하여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이다.

2.하나님께서 나를 돕는 방법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 주셨는데 그 아들은 능력이 뛰어난 분, 나를 능히 지장없이 도울 수 있는 분이라는 말이다. 이 아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부여받으신 분이다. 나를 괴롭히는 인간독재자가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능력이 탁월한 통치자다.

3.기적의 통치자, 용사이신 하나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는 별명이 주어지셨다. 이 모두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사인이다.
B.그는 평화의 왕이다.

1.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 내가 피곤해서 새벽기도를 못하고, 게을러서 새벽기도를 못해도, 믿음이 없어서 전도를 못해도, 확신이 없어서 방황해도 유혹에 넘어가 실수할 때라 할지라도 그 어떠한 때에도 주님은 나에게 무력을 사용치 않으시는 분이다.

2.인간 통치자는 어떤한가 그는 쥐꼬리 만한 권력이라도 자신의 권익을 위해 무참히 나에게 휘두른다. 채찍을 휘두르고 주먹을 휘두른다.

3.세상에 수 많은 통치자가 있다. 인간의 권력자가 있는가 하면, 지식의 통치자가 있다. 수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을 지켜야 살길이 열린다고 강요했다. 또한 수 많은 종교가 우리를 통치했다. 토테미즘, 애니미즘,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등 수많은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그들은 모두 인간을 지배했다.

4.기독교는 결코 지배하지 않는다. 교회가 신자를 지배한다면 그 교회는 사람의 교회지 하나님의 교회는 아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자유는 우리를 주님께 굴복하게 만든다. 강요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의 깨달은 탕자의 굴복이다. 이 일은 주께서 우리에게 온 몸을 주셨기 때문에 주어진 은총이다.

결론

1.이제 성탄절이 닥아왔다. 성탄의 기쁨은 어두움이 빛으로 바뀌는 것이다.

2.지금 나의 심령에 빛이 있는가 암흙이 있는가

3.영접하는 자 곧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자녀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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