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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신 이의 뜻을 따라 빛을 증거하자 (사 49:1-7, 고전 01:1-9, 요 1:29-42)

첨부 1


「주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시는 날, 여러분이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 주십니다」라고, 바울 선생은 고전 1장 8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 주신다〉고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확신 있는 말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자신 있게 그리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만을 의지하고 따르게 된다면, 틀림없이 죄가 없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어서 다시금 밝히기를,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항상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분명히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죄 중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생활을 통하여 영원히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①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구원에 대한 감사).
②다시 죄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됨).
③빛된 생활을 함으로써,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말씀의 실천과 전도).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되, 다시 죄에 빠지지 않도록 늘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좀더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우리의 생활 자체가 주님을 증거 하는 빛된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에, 우리 자신은 복된 삶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까지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한 소년이 수영을 하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 근처에 살고 있던 농부의 아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그 농부의 아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될 수가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소년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청년이 되었을 때에, 그 농부의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있었던 그 일에 새삼스레 감사를 예(禮)를 하며,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의 아들은 의학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의 부모들은 돈을 대어 그 농부의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농부의 아들은 의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페니실린〉이라는 약을 발견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노벨 의학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물 속에 빠졌다가 구출 받은 소년은 영국의 대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폐렴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 농부의 아들이 발견한 페니실린 덕분에, 이 사람은 다시 한 번 살아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정치가가 바로 누군고 하니, 그 유명한 〈윈스턴 처칠〉이고, 그 농부의 아들은 〈알렉산더 플레밍〉이라는 사람인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도 기묘한, 그래서 동화와 같은 이야기입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처칠을 물 속에서 건져 준 플레밍,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가 감사의 답례를 한 처칠, 그래서 결국은 다시금 은혜를 입게 된 처칠. 플레밍의 희생 정신이 없었다고 하면 처칠 수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처칠의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페니실린 약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플레밍이라는 사람이 처칠을 죽음에서 구원했고, 그 구원에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아니하고 보답한 처칠이 플레밍을 훌륭한 의사가 되게 했으며, 그래서 다시금 처칠은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정신이 우리 인생을 죄에서 구원했다면, 우리가 그에 대한 감사와 보답의 삶을 살게 될 때에, 우리는 다시금 인생을 새롭게 살게 되는 것이며, 또한 다른 사람까지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감사와 감격한 마음을 갖고 그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그 은혜를 잊어버린 채 또 다시 죽음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지요

1.혹시, 우리 자신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처럼, 여전히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서 49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세계 만민의 빛으로 세우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를 통하여, 「온 세상의 어둠과 혼란을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이와 같이 쓰시려고, 이사야가 태중에 있을 때에 이미 부르셨으며, 또한 손을 펴서 항상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갓난아기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 속에서 극적으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영국을 위기에서 구원하게 하였고, 또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복음을 전하게 했던 것입니다.
농부의 아들인 플레밍을 통하여 처칠을 두 번씩이나 죽음에서 구원하게 하고, 그래서 처칠로 하여금, 전 세계 인류를 독재와 전쟁에서 벗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우연히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무슨 뜻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세계 만민이 너를 통하여 나의 구원과 해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하겠다(사49:6)」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 거룩한 뜻을 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진리의 빛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채,
①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기보다는, 부르신 주의 뜻과 은혜를 저버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혜와 감사를 잊어버리게 되면, 이름만 구원받은 것이지 실상은 구원받지 못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은혜를 알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②진정 구원받지 못하면, 빛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혹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주의 일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꼭 공치사를 하거나, 아니면 일한 것에 대한 그 몫을 꼭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게 되면, 빛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③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을 갖지 못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구원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삶의 기쁨을 모르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전 1장 5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활 전체를 풍부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살게 될 때에, 우리의 생활에 변화가 오고 또한 풍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풍성함이란, 물질을 비롯한 이 세상 것으로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지요. 주를 모르고 살면 세상 것을 아무리 소유해도 만족함이 없지만, 주를 진정 바로 알게 되면 언제든지 감사한 마음과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주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면 삶의 기쁨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까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던가요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했습니까

2.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여 빛의 증거자로 삼고자 함입니다
이사야서 49장 6절에서「세계 만민이 너를 통하여 나의 구원과 해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하겠다」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셨거니와, 고전1장 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진리의 빛을 나타내신 하나님은, 오늘은 우리를 통하여 이 세상에 빛의 증거자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기 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직접 우리 나라에는 들어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간접 선교를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에 있던 로스 목사가 우리 나라 상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인 통역을 통하여 전하는 말씀이라, 두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조선 사람들은 끝까지 잘 듣고 있었습니다.
로스 목사는 말씀을 전하면서도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조선 사람들은 다르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신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을 마치고 결신자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조선인 상인들은 로스 목사에게 가까이 와서 양복을 만져 보며, 그 옷감을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으며 그 값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복음이 목적이 아니라, 로스 목사가 입고 있는 양복감을 구입할 생각으로 끝까지 말씀을 들으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는 했으나, 그 응답의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빛의 증거자로 삼으시려는 것인데, 우리는 그 목적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것을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섭섭해 하실까요 아니 어쩌면 심히 책망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많은 수확을 기대하고 봄에 고추를 심었으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의 그 실망감과도 같을 것입니다.
농부가 고추를 심거나 마늘을 심듯이,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을 심으셨습니다. 농부가 좋은 열매를 기대하고 그 씨를 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만들어 이 땅에서 살도록 하신 것은 그 목적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냥 인간 자신이 쾌락을 즐기거나 재미있게 지내면서, 인간 자신만을 위하여 살다가 일생을 마치라고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무엇이 참된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옳은 인생인지를 보여줌으로써, 빛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빛된 삶을 살아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①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던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어둠이란 물론 죄악 세상을 의미합니다.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죄가 되는 줄 모르고 살던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 주셔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옳은 것을 택할 수 있는 믿음과 의지를 주시고, 그 택한 대로 바르게 살 수 있게끔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죄에 물들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자마자 잘못된 습관과 죗된 생활을, 한 순간에 버리거나 고칠 수는 없습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좌절하거나 낙심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을 몇 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믿는 자에게는 틀림없이 그런 복이 임할 것입니다.
②믿음을 갖고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다시 말해서 믿음 생활을 꾸준히 하고 새롭게 되기를 거듭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진리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 진리 안에서 풍성하고도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이 순서를 밟게 될 때에,

3.우리는 부름 받은 뜻에 따라 빛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순서를 다시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ㄱ.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ㄴ.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후에,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새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ㄷ.그러나 새 삶을 살려는 결심을 하게 되면 사탄의 시험을 겪어야 합니다. 몇 번의 넘어짐과 시련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ㄹ.이 과정을 무난히 마치게 되면, 사명을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굳센 믿음과 의지도 생기게 됩니다.
ㅁ.그래서 주님의 보호하심과 도와주심에 힘입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스 목사는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복음만 전하려 하게 될 경우,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던 중, 양초와 성경을 함께 주기로 했습니다. 조선 상인들이 양초를 신기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인들은 양초를 얻기 위하여 만부득이 성경까지 받아 가져가야만 했습니다.
한문으로 된 성경이었는데, 한문을 아는 이들이 호기심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성경인데, 그만 성경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되자, 기독교를 믿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 중에서 백홍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는 중국 봉천으로 건너가 맥킨타이어 목사에게 세례 받기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백홍준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세례 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분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까지 세웠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성경 말씀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양초와 같이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만 다닐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뜻을 깨닫게 되어야, 삶의 변화가 오게 됩니다. 생활에 변화가 없이 믿음의 연조만 깊어지게 되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빛된 삶을 살려고 한다면
①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때에, 그 얼굴빛이 달라지고 말씨가 바뀌게 되며, 그 생활이 또한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을 가까이 하여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은총의 선물과 능력을 받았다」고, 고전 1장 7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②그런데 문제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그렇지요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지를 바로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③부르신 이의 뜻을 따라 빛을 증거 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나, 예수는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고 증언했습니다.
물세례는 머리에 물을 적시거나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하지만, 성령 세례는 마음이 새롭게 되는 변화를 말합니다. 말씀을 듣거나 읽는 중에, 아니면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가 나의 주님이시고, 그분이 사신 발자취 따라 사는 것이 가장 값진 삶이라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인류의 빛이 되신 주님을 바로 증거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더욱 거듭나는 올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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