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세상을 맛있게 만들자 (사 58:1-12, 고전 02:1-12, 마 05:13-20)

첨부 1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시인 내외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세수를 하고 들어와 아침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인의 아내가 쟁반에다 삶은 고구마 몇 개를 담아 들고 들어왔습니다.
“햇고구마가 하도 맛있다고 아랫집에서 그러기에 우리도 좀 사 왔어요. 맛이나 보셔요.” 남편은 본래 고구마를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가, 식전에 그런 것을 먹는 게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아내를 대접하는 뜻에서 그 중 제일 작은놈을 하나 골라 먹었습니다. 그리고 쟁반 위에 함께 놓인 홍차를 들었습니다.
“하나면 정이 안 간 대요. 한 개만 더 드세요.” 아내는 웃으면서 또 이렇게 권했습니다. 남편은 마지못해 또 한 개를 집었습니다. 어느 새 밖에 나갈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남편은 “인제 나가 봐야겠소. 밥상을 들여와요”하고 재촉했습니다. “지금 잡숫고 있잖아요. 이 고구마가 오늘 우리 아침밥이어요.”
“뭐요” 남편은 비로소 집에 쌀이 떨어진 줄을 알고, 무안하고 미안한 생각에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쌀이 없으면 없다고 왜 좀 미리 말을 못하는 거요 사내 봉변을 시켜도 유분수지.” 뾰로통해서 한마디 쏘아붙이자,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저의 작은 아버님이 장관이셔요. 어디를 가면 쌀 한 가마가 없겠어요 하지만 긴긴 인생에 이런 일도 있어야 늙어서 얘깃거리가 되잖아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아내 앞에, 남편은 숙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속에는 형언 못할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쌀독에 쌀이 떨어졌지만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고구마를 삶아다가 아침 식사 대용으로 내놓는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저의 아내를 자랑하고 칭찬하는 소리를 이제는 지겹게 느껴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다시 한 번 제 아내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 어렵던 초임지 교회인 학운교회에서의 생활, 그리고 한돌교회를 개척할 당시, 정말 번번이 쌀이 떨어져서 굶게 되었어도, 아내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국민학교를 입학했을 때, 차비가 없어서 걸려 보내 놓고 마음속으로는 울면서도, 내 앞에서는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썼던 아내입니다. 혹여 자기가 어두운 표정을 짓게 되면, 내가 힘들어 할까 봐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아내를 아껴 주기는커녕, 마음의 많은 무거운 짐을 안겨 주었습니다. 속상하고 괴로울 때에, 그 화풀이를 애매하게도 불쌍한 아내에게 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여린 아내에게 큰소리치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 못할 때에는 언성을 높이곤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아내의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가 아주 심하고 고통스러웠던가 봅니다. 그 동안 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용기를 내지 못하더니, 이번에는 서울에 올라가서 진단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 쇠약이었습니다. 정신적인 압박이 몸의 모든 신경을 연약하게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제 잘못이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그 동안 아내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가했던 것입니다.
남편된 저는 이와 같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가했건만, 한편 주변의 많은 분들은 아내의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런 고마운 분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지금까지 장황스레 말씀을 드렸습니다.
먼저 황성주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사랑의 클리닉’이라는 건강 센터를 세우고, 교역자와 그 부인들에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 진단을 해 주고 있습니다. 아내도 이분 덕분에 용기를 얻어 건강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약을 하자, 여러 번 전화를 걸어서 사전 준비를 점검하고, 검진 받는 과정에서도 아주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더라는 것입니다.
장영자 선생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분이지만, 오랫동안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분입니다. 이분은 원래 약사이신데, 지금은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번에도 아내를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아내의 병 치료를 위해 그 바쁜 중에도 모든 정성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아내가 몸이 허약해져서 그렇다고 하면서, 염소탕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염소를 끌고 오셨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분들이 염려해 주고 사랑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분들이 있는 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래도 살맛이 있다고 봅니다. 이분들은 비단 제 아내에게만 사랑을 베푸는 분들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똑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로 그런 분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구마를 삶아 내놓으면서도, 짜증이나 불평을 하지 않은 어느 시인의 아내. 차비가 없어서 딸을 걸려 보내 놓고 속으로는 울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던 저의 아내. 그 기술이면 얼마든지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련만, 따뜻한 사랑과 저렴한 비용으로 병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믿음의 병원을 세운 황성주 박사.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건만, 단지 믿음 안에서 만난 인연으로 우리에게 깊은 사랑을 베풀고 있는 장영자 선생님. 그리고 염소를 내놓은 우리 교회 어느 성도님.
이와 같은 분들이 이 세상에는 의외로 아주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누가 뭐라고 하던지 괘념치 않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 따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이 세상을 좀더 살 맛나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불평이나 원망의 말을 하기보다는, 밝은 미소와 따뜻한 말로 세상을 밝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끔 말하기를

1.이 세상은 너무 어둡고 살맛이 안 난다고 합니다

살기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에 하는 말입니다. 이웃과 다툰 일이 있거나, 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그런 말들을 흔히 합니다.
가정이 화목하거나, 하는 일이 잘 될 때에는 ‘지금처럼 살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그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뜻대로 일이 잘 안되거나 자식이 속을 썩이는 일이 생기면, 금방 그 입에서는 ‘망할 놈의 세상’이라는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입을 빌려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금식을 한다고 하면서 시비와 다툼을 일으키고 있고, 그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떠나지 않고 있다(사58:3-4)」고 한탄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살맛이 안 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어떻게 보면 어두운 면이 많습니다. 사랑과 화해는 없고 시비와 다툼만이 가득한 듯 싶습니다. 말만 많지, 서로 도와주고 아껴 주며 보살펴 주는 인정이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세상을 만들었습니까 나만 빼놓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까 아니면 외계인이 와서 그런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갔습니까 아닙니다.
①우리 크리스챤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기회와 봉사할 일거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회와 일거리를 박차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ㄱ.이유는 있습니다. 도와주면 버릇이 된다고,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정부에서 보조가 나오고 있으니 괜찮다고, 그런 사람은 도와 줄 만한 자격이 없고 또한 도와줘 봤자 별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사랑하고 도와 줄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ㄴ.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먼저 바르게 살면,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고 인도하여 주겠다(사58:11)」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내 가족과 친척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그 이유는 충분하지만, 나와 무관한 사람에게까지 도와줄 여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와주면, 나는 빚을 지게 되고 어려움을 당하리라는 계산이 앞서는 것입니다.
이런 계산과 인간의 지혜가 기승을 부리게 되는 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②세상과 교회의 앞날에는 어둠이 짙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58:8에서 하나님은, 「주의 말씀 따라 올바른 삶을 살아야, 그의 앞날이 아침 햇살처럼 밝게 열릴 것이며, 상처도 빨리 치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의로운 행실이 너희를 인도하고 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이 말씀을, 하나의 이상적(理想的)인 이론으로만 여기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꿈꾸는 참다운 인간의 삶도 하나의 이상(理想)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금식도 많이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지만, 그 입에서는 불평이 떠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금식을 하면서 기도를 해도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느냐”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예배를 드렸건만, 그리고 십일조도 부지런히 바쳤건만, 우리의 고통을 왜 외면하시느냐(사58:3)”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는 믿음까지 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것은

2.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마5:16).」주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착한 행실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착한 행실이 우리를 복되게 하는 조건도 아닙니다. 다만 믿음을 가진 사람이 그 믿음 있음을 드러내는 열매일 따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고 또한 복되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명령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착하게 살 다른 이유나 조건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밝은 소망을 갖고 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냥 그 명령 따라 사는 것뿐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명령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도록 하신 것은, 우리를 그만큼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어느 성도에게 일을 맡길 때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인격과 성품, 그리고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일을 맡깁니다. 일을 맡겼다가 제대로 감당치 못할 때에는, 다시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아예 처음부터 못하겠노라고 거부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인정해 주는 목사의 권위를 무시하는 결과가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고맙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될 만한 소양(素養)이 있음을 보시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무슨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말씀으로 거듭나고 새로워지면 쓸 만하다 여기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우리가 바르게 살려는 노력만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고, 그리고 도와 줄 마음이 있으면 인간적인 계산을 하지 말고 도와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좋지만, 그로 말미암아 또 다른 사람이 피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부름 받은 사명은

3.세상을 맛있게 하는 소금이 되어야 하고,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저의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제가 다니고 있던 홍성제일교회 김일래 권사님이 아시고, 다른 성도들에게 호소하여 수업료를 장만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조건이나 이유가 없이 도와 주셨습니다. 그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제 마음 자리에 계속 남아 있어서,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도 따르지만, 이와 같이 서로 돕고 도움 받으며 사랑하고 사랑 받는,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깨뜨리고 삭막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이기심입니다. 자기와 가족만 아는 개인주의입니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도시화가 이루어질수록 더욱 가속화되는 것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입니다. 이러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최후에 가져다주는 것은 인류의 공멸(共滅)입니다.
①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잘못된 성품이나 이기심을 극복하고 주님을 계속 닮아 감으로써,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ㄱ.세상 지혜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경험, 그리고 생각이나 판단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어떻고 내 형편은 어떻다고 하는, 세상적인 지혜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주 쓸모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과 함께 하는 삶에 있어서는 거의 100%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계명을 어기거나 가르치면 하늘나라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된다(마5:19)고 했습니다.
ㄴ.땅의 영광이 아닌, 하늘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땅에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냥 말씀대로 살다보니, 물질이 허락되고 능력이 주어지는 삶이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물질을 모으고 능력을 얻겠다는 수고는 헛될 뿐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참……. 아무튼 하늘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야, 참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②그 참된 삶이란, 물론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땅의 영광을 생각하고서는 빛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생색내는 일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껏 좋은 일을 하고서, 욕을 먹거나 문제를 일으킬 염려가 많습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라는 자세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빛된 삶이 되고 세상을 맛나게 하는 소금이 됩니다.
저도 전에는 길거리에 있는 걸인들에게 동전 집어 주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들 뒤에는 악당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악당을 돕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지 않은 한 사람을 위하여 기회만 있으면 돕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ㄱ. 그래서 한 생명이라도 더, 세상이 결코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삶의 소망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ㄴ.그리고 우리의 노력이 미미해서 별로 큰 도움이 안될지 모르지만, 우리 뒤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믿어야 합니다.
ㄷ.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나쁜 것을 지적하고 판단하며 불평하느라 자기 빛을 드러내지 않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③그러므로 우리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불태우고 우리 자신이 녹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가하여 심령을 상하게 하는 해악자(害惡者)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에서 압박을 받아 영육이 상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서 온전케 하는, 사랑의 시술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이 살맛 이 나도록, 세상을 맛있게 만들어 가는 소금이 되고 어둔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되어 살아가는, 성숙하고 성실한 성도가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