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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택하고 복받는 길을 가라 (신 30:15-20, 고전 03:1-9, 마 05:21-37)

첨부 1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환각 놀음에 빠지자, 이를 보다 못한 그의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야기를, 어제 아침 컴퓨터 통신의 스파트(spot) 뉴스를 통하여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 딸은 환각 물질을 흡입한 전과(前科)가 있어서 집행유예 중에 있었습니다. 서울 불광동에 사는 25세의 그 딸은, 자기 집에서 부탄가스를 맡다가 어머니에게 들켰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그 짓하는 것을 본 어머니는 “딸이 환각 물질에 중독 됐으니, 사회에서 격리시켜 병을 고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울면서 경찰에 신고했던 것입니다.
다 큰 딸이 철창에 갇혀서 고생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한 어머니의 마음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어쩌면 그 마음이 갈가리 찢겨지는 듯 아팠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니 몇 날 며칠을 두고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딸이 철창 신세를 면하게 되는 그날까지, 그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러면, 그 딸이 그렇게 되었습니까 처음부터 마음먹기를, 어머니의 신고에 의해 철창에 갇혀야 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서 장난 삼아 본드 냄새를 마셔 대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도저히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중독이 된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맡았을 때에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주저하기도 했겠지요. 그러다가 점점 환각 상태의 황홀감에 깊이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도 그 짓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하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잠깐 잘못 생각하고 한 번 들여놓은 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잠깐 재미를 보자고 한 짓이 영원히 고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생명을 택하고 복 받는 길을 가던지, 아니면 죽음을 택하고 재앙 받는 길을 가던지,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신명기 30장 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든지 죽음이 아닌 생명을 택하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음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길이 아닌 죽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의아한 일입니다. 어째서 죽음을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생명이 되는 길을 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길을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처음부터 연약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굳건히 설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결코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되,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것이 올바른 인생을 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농사짓는 방법이나 옷을 만드는 법, 또는 그림 그리는 방법이나 병을 고치는 방법 등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른 인생을 살아서 복 받는 비결은 다른 방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법만이 정석(定石)이지, 다른 길은 다 헛될 뿐입니다. 다른 길은 결단코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아닌, 다른 길로 가게 되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는지 그 여부를 믿거나 아니 믿거나, 그리고 그 말씀 따라 살던지 아닌 살던지, 그것은 각자 그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각 개인이 자유로 선택한 그 결과, 또한 각 개인의 몫이고 책임져야 할 일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선택할 자유만 주어졌지, 인생을 맘대로 살 권한은 없습니다. 생명의 길이든지, 죽음의 길이든지, 그 길 따라서 가야 합니다. 결국 길은 하나인 셈입니다.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게 되면 복이 되는 것이고, 생명의 길을 벗어나게 되면 그 길이 곧 죽음과 재앙의 길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생명의 길을 가지 않으면 죽음의 길을 가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생명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인간 스스로 잘 알고 있거니와, 또한 그 길가는 것을 원하면서도,

1.죽음의 길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길로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신명기 30장 16절에 기록하고 있거니와, 그 길로 가야 생명이 되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이 변하여 여호와께 불순종하거나,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을 경배하고 섬기게 되면, 바로 그런 삶이 죽음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길을 가게 되면, 틀림없이 멸망한다고, 모세는 그의 백성들에게 일러두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①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란
ㄱ.형제끼리 서로 비난하고 시기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서 예수님은 「형제를 어리석다고 욕하거나 저주하게 되면 지옥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비난하고 시기하는 사람은 멸망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게끔 행동한다고 해서, 눈을 흘기거나 입을 삐쭉거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ㄴ.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다툼을 일으키는 자도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5:22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까닭 없이 형제에게 화내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서로 시기하고 파당을 만들어 싸움을 하는 것은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ㄷ.이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억울하게 할뿐만 아니라, 서로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결국 끝내는 함께 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②왜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멸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요
ㄱ.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하지만, 세상은 그런 지시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파 놓은 함정에 불과합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는 주의 명령이 싫어서 세상 길로 가지만,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 길로 빠지게 하려고 사탄이 덫을 놓았는데, 그 덫이 바로 육체적인 쾌락과 즐거움, 화려함과 명성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 않고서도 세상에서 맘껏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사탄의 사탕발림에 그만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의 소리 싫어서 먼길로 나갔네(335장)」그 길이 죽음의 길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ㄴ.특히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안 믿는 사람처럼 사는 이가 있다고, 바울은 한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과 3절에서 「주님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마치 주를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마귀의 자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기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다만 우리도 사탄의 자녀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보다 세상 사람들을 더 두려워한다든지, 세상 사람들 앞에서 믿는 형제를 마구 흉을 보거나 비난한다든지, 교회를 비방하는 일에 앞장서는 일을 하게 될 때에는, 바로 그 순간에 사탄의 자녀가 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과거 아무리 훌륭한 믿음을 지녔다 할지라도 틀림없이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란,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나 죽음과 멸망의 길이란, 자기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되면 나도 살고 내 가정도 살리고, 내 교회와 사회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내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살게 되면, 나 자신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교회와 사회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2.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 길을 가면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신명기 30장 16절에서, 모세는 뭐라고 말했던가요 우리가 생명을 택하고 복 받는 길을 가게 되면,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주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 「살아남아서 점점 번창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그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①생명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ㄱ.생명은 말씀 속에 있습니다.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곧 생명입니다. 진리 따라 사는 것이 곧 생명이 있는 삶입니다. 진리를 거스르면 죽은 삶이 됩니다.
ㄴ.그 진리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제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삶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서 30장 20절에서 말하기를 「그분에게만 매달려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려는 노력이 있으면 우리의 삶은 풍성해지거니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면 잠시는 편할지 모르나, 그 삶은 점점 쓸쓸해지고 삭막해져서 나중에는 멸망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ㄷ.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의 음성 듣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복되게 살 수 있는 지혜를 말씀해 주십니다.
엊그제 저녁입니다. 복사할 게 있어서 복사를 하는데, 그만 종이가 걸려서 말썽을 부렸습니다. 급한 마음에 뒤에서 종이를 빼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종이를 넣었으나, 종이가 한쪽으로만 들어가다가 다시 걸리곤 했습니다. 이렇게도 만져 보고 저렇게도 만져 보았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더 이상 만지다가는 고장만 더 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복사하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제천 롯데캐논 복사기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습니다. 그리고 기사(技士)가 시키는 대로 조처했습니다. 그랬더니, 복사기는 정상적으로 가동이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종이 조각이 그 속에 남아 있어서 새로운 종이가 들어오는 것을 기계의 감지기가 인식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속에 세상의 욕심 찌꺼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 받고 새롭게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 욕심이 우리 속에 있는 한, 성령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우리 속에서 성령이 역사 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고 사탄의 음성만 듣게 되는 것입니다.
②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욕심의 찌꺼기들을 끄집어내고 하나님의 음성을 잘 감지하게 되면
ㄱ.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키워 주십니다. 욕심의 위세에 움츠리고 있던 믿음이 주의 음성을 듣게 되면 활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수분이 없어서 시들해진 화초에다가 물을 주면, 그 화초가 생기를 찾듯이 말입니다.
ㄴ.그래서 믿음이 점점 자라게 되면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고, 그렇게 되면 주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삶이란 진리 안에서 주와 함께 동행하는 삶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삶은 풍성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생명을 택하고 복 받는 길을 가야 합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여러분이 죽고 사는 것은 모두 여호와께 달려 있다」고, 신명기서 30장 20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산다고 하는 것’, 곧 ‘기독교인의 생명’이란 〈성령이 충만하여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아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도와 가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반면에, ‘죽는다고 하는 것’은 〈악령의 지시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형제를 비방하며 저주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안영희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는 주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녀는 환각제를 흡입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망가뜨렸으며, 자신과 가정을 불행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비록 그의 육체적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삶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①하나님만이 가장 중요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ㄱ.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그 순간에 우리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ㄴ.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면, 우리는 누구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5절 말씀에 보면「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익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아니냐를 분간하는 방법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②말씀대로 살려면,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어느 정도까지 자라다가 멈춰 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적 성장까지 멈춰서는 안 됩니다. 육신의 성장은 우리의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자라고 싶어도 그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 성장은 가능합니다.
ㄱ.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됩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 듣기를 즐겨 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영적으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ㄴ.욕심과 교만한 마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욕심과 교만은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잡초입니다. 믿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믿음 생활을 세상살이와 혼동하게 될 때에, 영적 성장은 멈춰 버립니다. 멈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추락하게 됩니다.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내되, 생색을 내거나 권한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늘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일을 도와 드렸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ㄷ.그렇게 되면, 다른 형제와 다투는 일없이, 서로 화목한 가운데 주의 일에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평화와 기쁨, 그리고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죽음은 다툼과 슬픔, 그리고 원망과 불평을 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그에 적대하는 세력인 사탄은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을 수반하는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단, 생명을 택하느냐, 죽음을 택하느냐, 그 선택은 우리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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