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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가치한 쾌락을 멀리하라 (삼상 16:1-13, 엡 05:8-14, 요 09:1-41)

첨부 1


지금도 많은 지성인들이 그 이름을 거론하며 존경하고 있는 함석헌 선생은, 돌아가실 때까지 야인(野人)으로 계셨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수 없이 많은 회유(懷柔)와 협박이 있었지만, 그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그분이 비판만 날카롭게 했지, 생산적인 일에 직접 참여해서 활동한 일이 없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누구나 원하는 권력과 명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분이 쓴 책 중에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제목을 가진 것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함석헌 선생의 사상(思想)까지는 접근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의 변함없었던 자세만은 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 청주에서는 교회가 부끄러워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감리교회 감독(그 당시는 통리)까지 지내셨던 정춘수 목사의 동상(銅像)이 일부 시민들에 의하여 철거되었습니다. 삼일 운동 당시 33인의 한 분이었기 때문에 세워졌던 동상이, 일제 말에 친일파로 변절했다고 해서, 이번에 그런 소동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늙어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신앙 생활을 계속하다가, 깨끗하게 인생을 마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과 하늘 나라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된 나머지, 또는 다른 이유로 해서, 주를 부인하고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물론 우리가 지금 바라는 것은, 변함없이 신앙 생활을 계속 잘 하고 충성을 다한 후에, 주께서 오라 하시는 날, 천사들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춘수 목사가 일제의 협박과 유혹에 못 이겨 변절했던 것처럼, 우리도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락할 염려가 충분히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인 사무엘상 16장에 나오는 사울과 다윗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꼭 기억하고 살아야 할, 귀한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울이나 다윗은 둘 다, 젊었을 때에는 남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사무엘상 10장 17절부터 소개되는 사울을 보면, 아주 겸손하고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키도 남보다는 어깨 위로 더 컸고, 또한 암몬 족속을 보기 좋게 물리치는 용맹함도 있었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도 사무엘상 16절에서 말하기를, 다윗은 눈에 총기가 있고 힘도 세 보였으며, 혈색 좋은 청년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위가 오른 만큼 더욱 거듭나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사울이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까닭에, 그는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월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을, 사울 왕이 침범했던 것입니다.
그 후 사울은 거듭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첫 번 시험에 들었을 때에 그 시험을 이겨냈어야 하는데, 그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는 바람에, 계속 잘못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잘못을 깨닫고 고쳐 바른 길을 갔으면,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끝내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왕위에 올라 한동안은 정치를 잘했습니다만, 그러나 그도 큰 시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시험을 잘 이겨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후손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울이나 다윗이 모두, 젊었을 때에는 똑같이 훌륭한 재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으로 피택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사울은 그만 그 시험을 이겨내지 못한 까닭에 왕위에서 쫓겨났고, 다윗은 그 시험을 이겨냄으로써 더욱 훌륭한 정치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쓰실 만한 재목이라 생각하시고 부르셨었을 것입니다. 그리 잘난 것은 없으되, 나름대로 쓸모가 있어서 택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겸손하고 온유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입니다. 무슨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착각을 하게 되면 교만에 빠지게 되고, 교만해지면 시험에 걸려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는 경우, 참으로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사울의 말로(末路)를 보십시오. 아까 말씀드린 정춘수 목사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 무슨 창피이며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그야말로 차라리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목사가 안되고 통리(統理)가 안되었더라면, 그처럼 수치스러운 인생으로 마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름 받아 주의 백성이 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이요 큰 기쁨입니다. 이보다 더 크고 영예로운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직분을 온전히 감당치 못하고 오히려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되면,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삶을 살게 될 경우, 진실로 통탄스러운 결과가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울이 자기 본분을 잊어버리고 다윗에 대하여 질투와 시기심을 갖게 되자, 성령은 떠나가고 악령이 역사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총명하던 정기(精氣)가 사라지고 어리석은 생각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주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가득합니다

요한복음 9장 39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은 눈을 뜨게 하고, 맹인이면서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심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었다는 말은 성령이 떠난 상태를 말하고, 맹인이면서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육신적으로 눈이 어둡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눈이 멀게 된 것은, 인간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욕심을 품게 되면 성령이 떠나가게 되고, 그 다음에는 악령의 지배를 받아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①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세상 욕심으로 인하여 성령이 떠난 상태에 있습니다.
ㄱ.그렇게 되면,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선악을 분별치 못합니다. 욕심 때문에, 그 양심이 흐려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지 못하면, 사울 왕처럼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본분과 분수를 망각하면 월권을 행사하게 되거니와, 지나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벌거벗은 임금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임금이 값지고 훌륭한 옷을 입고 싶은 욕망이 지나친 나머지, 나중에는 벌거벗은 몸을 하고 거리로 행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하들도 그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임금님은 참으로 훌륭한 옷을 입으셨다‘고 아부할 뿐이었고, 진실을 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지위를 잃어버릴 염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의 백성들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똑똑히 알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히 입을 열어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재수 없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육신의 눈은 멀쩡했는지 모르나, 마음의 눈은 한결같이 깜깜하게 멀었던 것입니다. 욕심과 명예와 두려움으로, 그 영의 눈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아이의 눈은 밝았습니다. 어른들처럼, 세상 욕심으로 그 마음의 눈이 멍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겁도 없이 이 아이는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쳐 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 욕심 때문에 진실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은 떠나가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ㄴ.하나님의 뜻을 행할 능력도 잃어버립니다. 모든 정력을 세상 욕심에 빼앗기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멀리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연적으로
②악령에게 사로잡혀 죄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세상 욕심이란 무가치한 일인데, 그 욕심의 사촌이 쾌락이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행동하는, 인간 중심의 생활입니다. 그야말로, 죄악뿐인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마음의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런 삶이 죄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③그런 생활에는 어둠이 가득할 뿐입니다
영광이나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은 쾌락에 빠져 즐거울 지 모르나,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이 볼 때에는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말로(末路)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주의 제자라고 하는 영광된 직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과 본분을 망각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사명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감당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기력하거나 소극적으로 산다든지, 세상 욕심과 쾌락에 빠져 주의 뜻을 거스르게 되면, 그 인생은 참으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진실로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지 않고, 참되고 값진 삶을 살고자 한다면, 주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 세상 것보다 더욱 값진 것이 주의 진리 말씀이요, 이 세상 쾌락을 추구하는 것보다, 진리 말씀 따라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2.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밝은 빛으로 늘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가치관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제까지 좋아하던 세상 것을 멀리하고, 하늘의 값진 것을 바라볼 수 있음을 말합니다.
사실상 맹인이었던 사람은, 영적으로는 맹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한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말은 듣지 않으셔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 안다”고 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정확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분명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판단력을 가질 수 있으려면,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몸은 비록 교회에 와 있으나 그 마음이 세상에 있으면, 주께서 그 마음의 눈을 뜨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 따라 다윗을 선택하고 기름을 붓자, 성령이 다윗을 사로잡았다고 했습니다(삼상16:13). 기름이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상징을 갖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택되자,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사용하시려고,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구분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고 있어야,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명예와 같은 세상 욕심에 그 마음이 기울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강제로 지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맹인이었던 사람이 한 말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야, 성령이 역사 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빛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빛된 삶이란,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서 바른 것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빛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①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십니다.
그야말로 양심의 눈을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내 어둔 눈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옴은 정결한 맘 주옵소서
(332장 2절 상)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면 눈까지도 밝으리라
(332장 3절)」
②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밝게 해 주시고, 주의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시기를
「어서 깨어나 힘을 내어라! 지극히 화려한 네 예복을 다시 입어라!(사51:17, 52:1)」하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면 그 일을 행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3.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공경하며 그 뜻을 따르도록 힘써야 합니다

바울 선생님은 에베소서 5장 8-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ㄱ.과거에는 우리의 마음이 어둠에 싸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ㄴ.그러나 지금은 주께서 주시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합니다. ㄷ.그런데, 그 사실을 생활로 증명해 보여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ㄹ.그 빛된 삶이란, 선한 일과 옳은 일, 그리고 진실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둠에 싸여 있었다는 말은 악령의 지배를 받던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주시는 빛, 곧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가게 되었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어둠에 있지 아니하고 밝은 빛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냉철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아직도 어두운 세력에게 질질 끌려 다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 어서 속히 그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①그런 다음에, 우리는 성령에 사로잡혀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 선생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은 주께서 주시는 빛으로 가득 차 있으니, 생활로 그것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엡5:8)」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또한, 에베소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이 주시는 빛, 곧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기쁘게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ㄱ.영적인 눈이 밝아져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총기가 있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세상 욕심으로 흐려지게 되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그 눈은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어야 합니다. 바로 눈앞의 일만 생각하고 죄를 짓게 되면, 먼 훗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정춘수 목사님이 먼 앞날을 예견할 수 있었더라면, 그 고통이 좀 심할지라도 견디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ㄴ.그리고 옳은 일인 줄 알면, 그 일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험이 닥쳐와도, 그 시험을 이겨내고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지켜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죄를 짓고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수 있었던 것입니다.
②선한 일과 옳은 일, 그리고 진실한 일만을 해야 합니다.
바울 선생은 에베소서 5장 11절에서 밝히기를, 「어둠 속에서 행하는 쾌락은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악의 세력은, 자기들이 얼마나 강하고 악한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것만 같습니다. 온갖 모양으로 악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죄악을 행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일순간 살다가 말 존재라면, 진실보다는 자기 이익을 지켜야 하겠지요. 먼 훗날 심판이 없다면, 그리고 영생이 없다면, 주의 뜻에 따라 사는 것보다는, 오늘 멋있게 그리고 신나게 즐기며 살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인생을 값지게 살 수가 있습니다. 미래를 생각지 않고 오늘만 생각하게 되면,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진실하게 살 지 못합니다.
③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주님의 뜻에 따라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거룩한 백성이라는 이름을 빛내며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주를 바로 공경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이름을 지켜 나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는 이름 말입니다. 그리고 ‘진짜 예수장이’라는 소리를 계속 듣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켜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성도가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죽는 순간에 주님께 떳떳이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할 수 있도록, 말씀따라 열심히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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