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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시다 (출 14:10-31, 롬 06:3-11, 마 28:1-10)

첨부 1


「부활의 주님 나타나시사 두려움과 의심 물리치셨네 주의 교회 기뻐 찬송하여라. 다시 사신 주님 죽음 이겼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겼네」(찬송가 155장 2절)
이 찬송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①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셨다는 것입니다.
②그 결과, 우리 인간이 두려움과 의심이 사라지고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이전까지는, 온 세상 사람들이 죽음의 세력에게 붙잡혀서, 두려움과 의심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시작은 아담 때부터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의심한 나머지, 그 명령을 어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자, 사탄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한 욕망과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생명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사람들은 악한 욕망과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까닭에, 계속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면서, 갈등과 다툼을 일으켜 왔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하는, 피해 의식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피해 의식과 두려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득히 깔려 있습니다. 이 두려움을 없애지 않는 한, 사람은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아주 좋은 집에서, 그야말로 없는 것이 다 갖춰 놓고 살면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다 할지라도, 마음에 평안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고자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두려움과 걱정을 물리치지 않는 한, 그 모든 노력과 수고는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이 문제의 해결 없이 행복한 삶을 살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 왔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헛된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을 물리치시고,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새로운 인생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걱정 없이 평안한 인생을살 수 있을까’ 하고, 그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인생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드러내시고, 그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인간 모든 문제의 원인은 죄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주께서 해결하셨습니다.
죄의 결과는 두려움과 걱정입니다. 이 두려움과 걱정의 근본 원인이 피해 의식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 의식이란, 다른 사람들을 불신하면서 갈등과 다툼, 미움을 일으키고 있는 까닭에,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서로 미워하며 갈등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욕심과 교만한 마음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로 인하여,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 때문에 불행한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괜스레 고목(古木)을 무서워하고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했으니, 이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세상 모든 욕심을 다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죽음이란 욕심에서 왔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 죽음의 원인인 욕심을 물리치심으로써, 죽음을 이기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사람이 무엇 때문에 태어났다가,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고 살다가 죽어 갔습니다. 일평생 동안, 죽음의 공포를 떨치지 못한 채, 그 짧은 인생이나마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죽어 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진리의 빛을 발견하지 못하여,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1.죄와 죽음의 세력에 의하여 지배받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7절에서 「죄의 세력이 우리를 구속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건만, 사람들은 어리석은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 여전히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은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을 의심한 나머지, 인간 자신의 힘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입니다.
혹간, 주를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면서도, 그 욕심에 의한 피해는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하심만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더욱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입니다.
진실로 주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려면, 그래서 예수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세상 욕심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욕심을 버린 만큼 주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했습니다. ‘어서 속히 우리를 이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저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셨습니다.
그 구출 과정 속에서, 인간이 헤아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한 권능과 섭리가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를 체험하고, 주께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 감격과 감사도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자, 또 다시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수 없이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허락을 받아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 바로의 마음이 변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는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추격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곤란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ㄱ.겁먹지 말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하여라(출14:13)
ㄴ.여호와께서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보기만 하여라(14:13)
ㄷ.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몸소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여라(14:14)」하고, 백성들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말을 듣습니까 더욱 소리를 지르며, 모세를 잡아먹을 듯이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던 것입니다.

①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면서도, 악한 세력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악한 욕망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주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욕심과 말씀은 상대적입니다. 욕심을 많이 갖게 되면, 말씀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말씀과 은혜로 충만하게 되면, 욕심은 적어지거나 사라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잊어버리게 되자, 살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불신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연히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②악한 세력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악한 세력을 물리칠 만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세상 아무 것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을 굳건히 믿어야 하는데, 이 믿음이 떨어질 때에는 할 수 없이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 우리는 죽음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악한 세력은 끝끝내 우리 인간을 멸망에 빠뜨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자꾸만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고 들어갑니다.
물론 미끼는 욕망입니다. 우리가 이 욕망을 품지 않으면, 악한 영은 우리 속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악한 욕망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이 믿음과 소망이 없으면, 이 세상 욕망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이 욕망을 완전히 버리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결코 다시 죽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죽음이 더 이상 그분을 지배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바울은 로마서 6장 9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근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2.예수를 다시 살리셔서 인류의 소망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바울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가 이제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예수 안에서 새롭게 산 자(롬6:11)」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하며, 헛된 인생을 살다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죄입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 인생을 살게 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죄를 짓게 되는 원인이 욕심과 교만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욕심과 교만한 마음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찬송147장)」
지금까지 사람들은 욕심을 가져야 세상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그러면 그 생각을 바꿔야 할텐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려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할 수 없이, 당신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실패만 거듭하는 인간의 잘못된 전통을 뒤집어 엎으셨던 것입니다.
①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ㄱ.잘못된 생각, 곧 욕심과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물론 옛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주를 따르지 않게 되면, 여전히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ㄴ.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사상인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새 삶을 살게 되면, 불안함과 죽음의 공포 대신에, 자유와 평화, 믿음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지금까지 우리를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살도록 만들었던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우리를 영원히 복된 길로 인도하는 생명의 말씀 따라 살기로 결심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욕심과 교만한 마음을 버리시고 새롭게 취한,
②예수님의 새로운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ㄱ.자신의 생각과 욕심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쓴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마26:39)」하고, 하나님께 호소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ㄴ.원수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욕심의 결과는 시기와 질투, 미움과 다툼입니다. 예수는 이미 욕심을 버리신 까닭에,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원수들을 용서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눅24:34)」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에도 자기를 배반하고 멀리 도망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무서워하지 말라(마28:5) 두려워하지 말라(마28:10)」고 거듭 말씀하시면서, 평안을 빌어 주셨던 것입니다.
ㄷ.예수께서 보여 주신 새로운 삶의 모습은, 겸손한 태도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했다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반면에,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위치로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종(從)의 자리까지 더욱 낮아지심으로써,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던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면서도,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많은 죄를 짓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않았노라고 발뺌을 하건만, 예수님은 우리와 거꾸로 행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3.예수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주께서 구했으니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과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온전히 버렸네(찬송 194장 2절)」
자,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찬송 204장 1절)」
그러나 그뿐이겠습니까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찬송 347장 1절)」
①우리는 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나 자신을 예수와 함께 거듭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ㄱ.그래서 교만과 불신으로 가득한 나 자신이 깨어지고 부서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라는 말은 너무나 잘 아는 성구입니다. 불신은 불순종을 낳고, 불순종은 죄와 사망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권위를 앞세우거나 아는 체를 많이 하게 되면, 다툼이 생기고 서로 시기하며 미워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ㄴ.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게 되면, 원망과 불평 대신에 감사와 찬양을 하게 됩니다.
내 입으로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는 것은, 내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새롭게 거듭난 사람은, 기쁨이 그 마음에 충만합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고 찬송도 하게 됩니다.
②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면, 이제는 예수와 함께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ㄱ.그래서, 다시는 죄와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튼 죄와 죽음의 세력은 ‘나(自我)’라는 존재를 앞세우게 될 때에 찾아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아닌 주님이, 우리 인간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보여주신 희생과 헌신, 그리고 겸손히 봉사하는 자세를 본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ㄴ.그러니까, 예수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받으리라는 착각도 버려야 합니다. 재물을 많이 모으고 학식과 덕망을 많이 쌓으면 천국에 갈 수 있으리라는 망상도 버려야 합니다.
오로지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듣고자 하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평가하든지,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신대로 살아야 합니다.
자, 이제 다시 한 번 예수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십시오. 내 욕망과 내 의지를 따라 살려고 했던 지난 삶이 계속 실망과 좌절을 안겨 주었다면, 주와 함께 다시 사는 삶은 소망과 기쁨을 갖다 주리라 확신합니다.
아무쪼록 주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죽음이 아닌 생명을 누리게 되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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