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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슴에 새겨진 새 계명 따라 순종하는 삶을 (렘 31:31-34, 히 05:5-10, 요 12:20-33)

첨부 1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에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형편이나 실력을 생각하지 않고서, 다른 사람이 한다고 무리하게 따라 가려 하다가는 큰 탈이 날 염려가 많다’고 하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입니다.
두 새의 몸통 크기를 비교해 볼 때, 뱁새는 약 12Cm가 되고 황새는 112Cm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뱁새는 황새에 비해서 약 1/10밖에 안 되는 작은 새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처럼 작은 새가 황새를 따라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마치 뱁새가 황새를 좇아가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로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거리가 멀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에 그랬듯이,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마16:24)』고, 주님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기도 심히 어려운 일인데, 거기에다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라야 한다니,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눅14:27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요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를 믿어야, 영원한 멸망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요12:26)』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의 뒤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주님께서 일러주신 계명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십자가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뱁새가 자기 힘만으로는 황새를 따라갈 수 없지만, 사람이 뱁새를 차에 태워 싣고 간다면 황새를 따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힘만으로는 주님을 닮는 일이나 십자가를 지는 일이 힘들겠지만, 성령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주님의 영이 우리 속에서 일하시므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영광 속에서 더욱더 주님을 닮아갑니다(고후3:18)』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길이 생명의 길이요, 그분을 닮아갈 때에 영광스러운 일이 있게 된다는 확신을 갖고,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가야 하겠습니다.

1.지금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까

유머 작가인 ‘루코크’라는 사람이 ‘현대판 사도행전’을 엮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첫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20여명은 모였어야 할 이 예배에 겨우 40명만 출석했습니다.
베드로는 가족과 함께 갈릴리 호숫가 별장으로 주말 여행을 떠났고, 바돌로매는 손님들이 왔다고 해서 빠졌습니다. 빌립은 지난 밤 너무 늦도록 TV를 보고서 예배가 끝날 시간쯤에 일어났으며, 안드레는 새 배를 구입하고자 보트 쇼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야고보는 잔디 깎는다고 못나왔고, 마태는 연장 근무를 한다고 했으며, 요한은 골프 경기에, 도마는 시험공부 때문에 부득이 교회에 나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예루살렘 다락방에 내려오는 것을 중지해야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서양 사람이 쓴 이야기이지만, 오늘 우리나라도 이와 거의 비슷한 형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지난 3월중엔 평소에 잘 출석하던 분들이 열두 분이나 결석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12명은 많은 숫자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다 있었습니다.
십자가란 다른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옛 신앙인들처럼 십자가를 거꾸로 지거나 사자 밥이 될 염려는 없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처럼, 송곳 위를 걸어야 하는 고난도 없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매 맞는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전설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멀리한 채 ‘안일(安逸)’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외부적인 핍박이나 방해가 없다 보니, 자기 안일에 빠져 삶의 의미까지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고난이 있을 때에는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나 목적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나 목적을 묻지 않습니다. 그저, 즐겁고 편안하게 사는 것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말씀도 쉽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찬송을 불러도 즐겁게 부를 수 있는 것이어야지, 슬프거나 무거운 찬송은 싫어합니다. 서울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재미있는 예화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인생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란 아주 극히 드뭅니다.
①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와 바울처럼 살 것을 가르치거나 강조한다면, 교회에 붙어 있을 자는 거의 없습니다. 예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하고, 바울처럼 감옥에 가야 한다고 할 때, 끝까지 믿음을 지킬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해야 합니다. 조금 불편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주께서는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따라야 한다(막8:34)』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순종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이익을 멀리하고, 주께서 일러주신 말씀 따라 순종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몸소 겪음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배우셨다(히5:8)』고, 히브리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주님의 순종을 제대로 본받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②오히려, 불순종하거나 거역하는 일이 더 많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얼마나 불순종하고 거역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나 민수기를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반항했습니다. 하나님께 굳건히 맹세한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처럼 하나님을 애태웠던 것입니다.
우리도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복이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을 행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을 때에 어떤 결과가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해서 잘 알고 있건만, 또다시 거역하거나 반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지도자인 모세에게 대들었다가 많은 사람이 불뱀에 물려 죽은 사건을 다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어기거나 지도자를 거역했을 때에는 죽음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 가슴에 새 계명을 새겨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돌판이 아닌, 마음과 양심에 새겨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린 그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쓰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베푸시는, 아름답고 좋은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길, 곧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어김없이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고난의 십자가를 외면할 경우, 주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확실히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즐거이 질 경우, 하나님은 그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되셨다(히5:9)』고 한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우리를 진정으로 복된 인생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인 것을 확실하게 믿고 따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이 영원한 구원을 바라보고, 주님의 뒤를 열심히 따르는 성도가 됩시다.

찬송가 18장을 지으신 분은 ‘게르하르트’라고 하는 루터교회 목사님이십니다.
그가 11세 때, 독일 인구의 1/3이 죽는 30년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흑사병이 돌면서 인구의 2/3가 죽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때에, 그는 태어났고 살게 되었습니다.
12세 때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세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아가 됐습니다. 고학하면서 어렵게 공부를 했는데, 신학교만 14년 동안이나 다녀서 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가 되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해서 44세에 결혼했습니다. 자녀 다섯을 낳았는데, 흑사병으로 네 자녀가 해마다 죽어갔습니다. 9살 먹은 아들만 하나 살았습니다.
이 아들의 손목을 잡고 숲을 거닐면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詩)가 바로 18장 찬송입니다. 그 찬송가 가사를 원문대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한없는 주의 사랑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네. 오 주님, 내 마음을 당신 속에 짜 넣어 주소서. 다른 아무것도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오직 주님께만 내 전부를 바치게 하소서. 나의 기쁨도 나의 보물도, 오직 주님의 사랑 속에 붙잡혀서, 차가움도 가시고 두려움도 가시고, 슬픔도 걱정도 그 사랑 속에 다 녹아져 없어졌네.
오 주님,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찾아 헤매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내 가슴에 가득히 채워주소서.’
이러한 신앙고백이 우리들의 입에서 저절로 나올 수 있게 하려면,
①우리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한 알의 밀알이 땅에 묻혀 썩어지는 희생이 있을 때,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요12:23)』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십자가에 높이 달릴 때,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요12:32).』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2천년 전에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결과, 오늘날 전 인류의 1/3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영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님처럼 고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②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슴에 새겨진 새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에는 고난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일(安逸)은 바랄 수 없습니다.
물론, 그 고난은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겪는 것인 고로, 결코 헛된 고난이 아닙니다. 이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갈 때, 큰 보람과 유익을 얻습니다. 그 무엇보다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 진실로 복된 일입니다.
③우리가 가슴에 새겨진 계명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게르하르트 목사님이 ‘한없는 주님의 사랑은 사람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고 말했듯이, 주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면서 살 때에는, 도무지 인간의 머리로는 다 헤아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피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극복해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앞에 놓인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잘 감당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뜻을 이루면서 좀더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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