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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 (행 02:42-47, 벧전 02:19-25, 요 10:1-10)

첨부 1


“으악”하는,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 특유의 하이 소프라노 외마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보니, 새벽 3시 45분이었습니다.
웬일인가 했습니다. 알고 보니, 머리를 바른 자세로 하지 않고 잠을 자는 바람에, 목 부분이 굳어버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당장 화장실도 가야하고 새벽 기도회에도 가야 하는데, 꼼짝할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겠느냐고, 아내는 내게 하소연했습니다.
저는, 충실한 남편답게, 물수건을 뜨겁게 해서 찜질도 해 주고 물 파스를 발라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더욱 아픈 표정을 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태환이 말처럼, 내가 있어서 더 엄살을 부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지런히 교회로 오고 말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아내는 자신의 자리에 나앉아 있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된 것은, 머리를 바르게 하지 않고 잠을 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내가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하는 남편의 품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살게 되면, 결코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1장 28절 이하의 말씀에,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 살게 될 때에는, 인간이 악한 마음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악한 일을 행하며 죄에 빠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끝내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된다(1:32)」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살게 되면, 무슨 일이 있게 되는 줄 아십니까 오늘의 말씀인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풍성하게 해 주기 위하여 왔다」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양(羊)이란, 우리 인생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로 알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살게 되면, 참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그 삶은,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삶이 되기 때문에, 진실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하기를,「우리가 전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길 잃은 양처럼 헤매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벧전2:25)」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의 품안에서 살게 되면, 목이 굳어 버리는 일도 없거니와, 죄에서 떠나서 올바른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웃과 나눔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울타리(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①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습니다(44-45).
②그리고, 날마다 성전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46).
③또한, 서로의 집에 번갈아 모여서 기쁨과 감사에 넘쳐 음식을 나누었습니다(46).
④나아가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⑤이러한 삶이 예루살렘 시민들로부터 호감을 사게 되었으며(47),
⑥그래서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 늘어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47).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길에는, 시련과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바르게 살고자 할 때에는, 악한 세력들의 시기와 질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옳은 일을 했다는 것 때문에, 억울한 소리를 들어야만 할 때도 있고, 애매하게 고통을 당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주님을 생각하고 참아야 한다(벧전2:19)」고, 베드로 선생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바르게 살고자 하는 결심이나 의지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살고자 할 때에 당하는 고난이나 시련을 잘 극복하고, 처음의 그 믿음을 잘 지속시켜 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하게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작은 시련 앞에서도 쉽게 넘어지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강한 듯 하면서도, 실상은 조그마한 시험 거리도 잘 이겨내지 못하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1.주를 떠나서 길 잃은 양처럼, 그 영혼이 갈 길을 몰라 헤맬 때가 있습니다

「양떼를 떠나서 길 잃어버린 나
목자의 소리 싫어서 먼길로 나갔네
방탕한 이 몸은 불효 막심하여
부친의 음성 싫어서 먼길로 나갔네」
(335장 1절)
목자의 뒤를 따라간다고 할지라도, 강을 건너야 하고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돌부리에 채어 넘어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엉겅퀴에 걸려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자의 음성을 잘 듣고 따르게 되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문제는,
①목자의 음성을 잘 듣지 않거나, 듣고서도 그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에 생깁니다. 그러면 엉뚱한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4절에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반기고 그 뒤를 따라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목자의 소리는 잔소리가 아닙니다. 생명의 소리입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려고 들려주시는,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목자는 우리의 앞길을 환히 아십니다. 어느 길로 가야 복이 되고, 또 어느 길로 갈 경우에는 화가 되는지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의 뒤만 따라가야 합니다. 잘난 체하고 앞서서 가거나 제멋대로 가다가는, 위험한 일을 당하기가 쉽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집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에 열심히 참석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주 듣지 않아도 되는지, 간간이 출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예화는, 우리가 항상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 놓여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 폭포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10미터 앞까지는 물결의 흐름이 일정하게 내려오다가, 10미터를 지나면서부터는 갑자기 급류를 이루어 폭포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폭포가 있는 것도 모르는 채 배를 타다가, 그만 폭포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사고가, 과거에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구(氣球)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지나다가 내려다보니, 배 한 척이 급류를 향해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10미터만 가면 죽으니, 그만 돌아가시오”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배 위에 탄 사람들은, “잔잔한 물결 위에서 잘 가고 있는데, 무슨 거짓말이야!”고 하면서, 계속 갔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폭포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영영 살길을 잃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거나 듣지 않으면, 앞날의 불행을 막아낼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길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②목자의 뒤를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전적으로 주께 맡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노라고 하면서도, 참 염려가 많고 걱정도 많습니다. 별 걱정을 다 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시골 아주머니가 버스를 공짜로 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버스 운전사가 보니, 그 아주머니께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스 운전사가 “왜, 그 보따리는 계속 머리에 이고 있습니까”고 하고 물었다지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하는 말씀이 “내 한 몸, 공짜로 타는 것도 죄송스러운데, 어떻게 짐 보따리까지 실을 수 있답니까”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그 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요 예수의 이름으로 거저 구원을 받았건만, 세상의 근심 걱정 짐 보따리를 그대로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 지요 그렇게 되면, 믿음 생활을 충실히 할 수 없거니와, 말씀들을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여 죄악에 빠질 염려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2.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①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고, 또한 그 삶을 풍성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참 제자가 된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주시고 또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필요한 것을 다 채울 수 있고, 풍성하게 되며, 그 남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ㄱ.결국 우리가 주를 온전히 따르면, 우리의 삶이 풍성하게 되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릴뿐만 아니라,
ㄴ.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웃과 나누는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풍성함이란, 물론 물질적인 풍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라야, 진정으로 풍성한 삶을 누린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고 이웃에게 나눠 줄 것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자입니다. 반면에 어렵게 살아도, 이웃에게 나눠주며 사는 사람은, 넉넉한 삶을 살아가고 있노라 할 수 있습니다.
②이처럼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주의 지시를 받아 살면서, 이웃과 나눔의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사랑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 주님은 「나는 양의 문이니, 누구든지 그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그 문을 드나들며 좋은 풀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큰복이 되는 것은, 그 영혼이 안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ㄱ.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해서 부끄러운 삶을 살게 하는 도둑을, 하나님께서 막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을 보면, 「도둑은 우리 인생을 도둑질하고 파괴하며, 끝내는 우리를 죽일 목적으로 몰래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만 잘 듣고 따르게 되면, 이 도둑을 막아낼 수가 있습니다.
ㄴ.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버스를 탔을 때에, 어느 길로 가는 지 모르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살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쁨과 평안이 언제나 가득한 곳, 하늘 나라로 편안히 데려가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음성을 잘 듣고 따르는 자에게, 풍성한 삶을 허락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③고난 당할 때에, 위로가 되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바른 길로 가려는 자를 인정하지 않거나, 때로는 훼방하며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애매한 소리로 우리를 억울하게 하면, 어떤 때는 그들을 저주하며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실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 그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점은,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셨건만, 십자가를 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아름답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웃에게 나눠주며 사는 것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잘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여기시는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그 억울하게 한 이를 저주하는 대신, 용서하며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천년을 삽니까 만년을 삽니까 혹 만년을 산다 한들, 고해(苦海)와 같은 우리 인생살이, 무슨 기쁨과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지나간 세월은 한 순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짧은 인생을 진정 헛되이 살지 않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야 하고, 또한 그의 음성을 듣고 잘 따라가야 합니다.

3.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만일 여러분이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주님을 생각하고 참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벧전2:19)」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크신 상급(賞給)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면서 당하게 되는 고난이나 핍박을 잘 참아 내고, 오히려 핍박하는 자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으려면,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①집회에 열심히 참석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부지런히 잘 듣고 깨우쳐야 합니다.
ㄱ.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쨌든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하는 일입니다.
ㄴ.그리고, 말씀에 따라 나누는 생활을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만 나눠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처럼,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물질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ㄷ.그럴 때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왜 자꾸만 시험에 빠지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내가 영광을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영광이 아닌 핍박을 받을지라도, 용서하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입니다. 그래서, 나의 것을 나눠주고 나의 물질과 몸과 시간까지 헌신했으나, 비록 욕을 먹게 될지라도, 우리는 참아 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걸어가야 할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입니다. 믿음 따라 바르게 살려면, 고난은 필연적입니다. 그래도 이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이 길이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잠깐 동안의 젊음이나, 잠깐 동안의 이 세상 즐거움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순간에 불과한 이 세상 삶에다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②주께서 일러주시는 길이 힘든 길이지만, 그 길을 잘 참고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로 가야 안전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악한 일을 저질러서 벌을 받는다면, 그것을 참아 낸다고 무슨 상이 있겠습니까 옳은 일을 한 것 때문에 벌을 받고도 말없이 참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벧전2:2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분명히 옳은 길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갈 때에 겪는 고난이 있을지라도 잘 참아 내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셔서 상급을 주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가는 길은, 주께서 이미 걸어가신 길이요, 그래서 승리하신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실패자인 줄 알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일으켜 승리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승리의 손을 들어주실 때까지, 이 믿음의 길을 온전히 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함으로써, 영원히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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