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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안에서 온전케 되기를 힘써라 (창 01:1-2:4, 고후 13:11-13, 마 28:16-20)

첨부 1


기독교의 진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막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고들면 들수록, 그리고 알면 알수록, 더욱 신기하고 오묘하며 놀라운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기독교 진리 가운데서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은, 참으로 신비한 진리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류의 죄를 해결하시려고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오늘 우리와 함께 하셔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성령, 이분들이 다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 듯하면서도 잘 모를 이 말씀은,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핵심 되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깊이 깨달아 갈수록,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참된 종교임을 확신케 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믿음 생활을 온전히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면, 심히 안타깝고 괴롭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제자들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시니 말이지요. 그것도 ‘세상 끝날 까지’, 그리고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알지 못한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일 것입니다.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제 주변 이야기를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것처럼, 제 딸아이가 인천에 가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웬만하면 자식을 하나 두는 가정이 많기 때문에, 제 자식이 딸 하나뿐이라는 말을 하기가 쑥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저의 사랑이 그 아이한테 집중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은, 인천에 있는 그 아이에게서 떠날 날이 없습니다. 비록 몸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항상 그 아이 곁에 있습니다. 마음뿐이 아닙니다. 아침마다 전화나 삐삐로 나의 음성을 그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물론이요, 나의 음성도 그 아이 곁에 항상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그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이제는 그 주님께서, 육체가 아닌 영적 존재로서, 우리와 같이 계시니, 그 분이 바로 성령이신 하나님입니다. 주님의 모습을 직접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분의 모든 것을 깨달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모든 분야에 걸쳐, 그분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계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살아 계실 것입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잠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분이 예수님이시고, 지금도 영적 존재로서 우리 곁에 계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영(靈)은 실체(實體)입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인 것처럼, 영적 존재인 성령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실체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둘째 편지에서,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예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사귐, 이 셋이 하나가 되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오늘 우리들을 위하여 축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바울이 축원한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사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만,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 갈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그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이, 인간이 누리게 되는 가장 큰복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1.주를 떠나 무질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은, 어린아이일지라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왜 모르는지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그 몸은 땅을 벗어날 수가 없고, 그 호흡은 공기가 없이는 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은 영적 존재인 고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서는 도무지 살아남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면,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 속에서 나와 “우리는 물 없이도 살 수 있노라”고 외치는 것처럼, 심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되면
①악한 영(靈)의 지배를 받아,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악한 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한 역사(役事)를 부정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좋은 일들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좋은 일에 동참하는 것을 막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 중에서 가장 고귀한 일인, ‘십자가의 사건’을 우습게 여기도록 만듭니다. 신불신(信不信) 간에 ‘예수의 십자가’는, 인류의 역사(歷史)를 바꾼 큰 역사(役事)였습니다. 우리 개개인에게 있어서도, 예수의 십자가 지심은 ‘삶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ㄱ.그런데 악한 영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십자가와 부활을 의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혼돈과 무질서에 빠진 이 세상을 말씀으로써 새롭게 창조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말씀을 직접 실현하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ㄴ.여전히 무질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질서한 삶은 자연스러움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사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복잡한 서울의 어느 네 거리에서, 자동차들이 교통 질서를 지키지 않고 맘대로 운행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엉망진창이 되겠지요.
‘십자가 사건’은 새로운 질서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서로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심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물고 뜯으며 피해를 주면서도, 모든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무법천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잘못이 없으면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게 되면, 언제나 불평과 불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도 내가 짊어지려고 애쓰게 되면, 인간적으로 보면 바보스러운 짓 같으나, 하나님은 그를 복되게 하십니다.
②많은 사람들은 이 복된 진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치 앞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우둔한 인간들이, 아무리 계산을 잘해 봤자, 그 계산이란 죽음과 허무밖에 남지 않습니다. 주의 지시와 명령이, 우리 인간의 생각으론 도무지 타산이 맞지 않지만, 그 길이 진정 복된 길이요, 많은 유익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ㄱ.사람들은 주님의 그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그 무서운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우리에게 그 진리를 가르쳐 주셨건만, 인간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 진리를 인간이 받아들여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이사를 하게 되면, 떡을 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러한 나눔을 통해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왕이 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주님은, 세상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바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이 옳다고 믿어지면, 그 삶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ㄴ.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 서로 반목하고 갈등을 빚는, 불행한 인생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주를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영의 속삭임에 따라,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원망하며 불평 불만을 일삼게 됩니다.
악한 영은 자꾸만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게 합니다. 물론 그 악한 영은, 우리가 세상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기 꾐에 넘어가도록 하고, 자기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둬 둡니다.
결국, 주의 영이, 우리가 말씀을 따르도록 해서, 늘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반면에, 악한 영은 자신의 욕심과 계산 방식을 따르도록 해서,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왜 우리 인간을 만드셨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엉뚱한 길로 가지 아니하고,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은 삼위일체(三位一體) 신(神)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접하고 있는 성경 말씀과 자연 사물만 가지고서도, 하나님의 세계가 얼마나 신비스러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움직임도 신기할 뿐더러, 성경에 쓰여져 있는 하나님의 섭리 또한 너무나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그 모든 사실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궁금하고 답답한 일이 많지만,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다 알게 되겠지요. 지금 성경 말씀만 보아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하늘나라에 가면 그 얼마나 재미있고 놀라운 일들이 많을까요 저는 그 때가 간절히 기다려집니다.
다만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를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일부 알려진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는 체 하거나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붙잡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을 가득히 누리다가, 하늘나라에 기쁨으로 달려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되신 하나님께서
①인간으로 되어 오신 분이 예수 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무슨 은혜입니까
ㄱ.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함 받는 것보다, 더 큰복은 없습니다. 모든 불안과 걱정, 그리고 근심이 죄로 말미암아 오는데, 그 죄를 없애 주셨다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무슨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해서가 아닙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 것뿐입니다. 거저 주시는 이 은혜를 믿지 못하여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ㄴ.평안함을 주셨습니다. 돈이 넉넉해서 누리는 평안이 아닙니다. 무슨 특권을 누리게 되어서 누리게 되는 평안이 아닙니다. 튼튼한 집을 마련하게 되어서 누리는 평안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한 외부적인 조건이 어떠하든지, 항상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주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해 주셨기 때문에, 누리는 평안입니다.
ㄷ.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죄의 용서와 평안함의 은총을 유지하려면, 이 가르침을 지켜 살아야 합니다. 그 가르침이란,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탓하지 말고, 자기 자신부터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화목하고 평화스럽게 살도록 힘쓰는 일입니다(고후13:11).
②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셔서 사랑으로 늘 우리를 감싸주십니다.
ㄱ.창세기에 있는 말씀을 보니, 세상 만물을 지으신 목적이 인간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드시고, 그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크신 사랑입니까 우리 인간도 부지런히 벌어서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주려고 합니다만, 어디 하나님을 따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은 유위부족(猶爲不足)하여, 하나님의 권한까지 탐하다가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ㄴ.복된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안식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함을, 늘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날에 복을 내리시고 거룩히 여기셨다」고, 창2:3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날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무엇 때문에, 이 복된 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③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온전케 해 주십니다. 그리고 서로 화목하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았으면, 그대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그러한 용서와 사랑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죄를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우리의 의지나 결심으로써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곁에 가까이 오셔서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악령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끊어 놓고자 노력하지만, 성령은 그 관계를 돈독하게 합니다. 될수록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도록 하고, 사람들 사이를 화목하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3.주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더욱 온전케 되기 위하여 힘써야 하겠습니다

온전케 된다는 말은,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아 산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요소인 이기심과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품성인 진실 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잘 살펴보고, 그 삶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①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주의 부활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게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진리따라 살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복된 길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 주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우리는 세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를 바라보면서,
ㄱ.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나의 잘못이나 허물은 다른 사람이 이해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내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기란, 심히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고난입니다.
ㄴ.이 고난을 극복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화목케 되는 일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축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과 화목하려면, 내 의지나 결심만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인생이 참 평안을 누리리고자 한다면, 주님의 용서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용서와 사랑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라도,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 19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선한 일을 하고 싶어도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는」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만 합니다.
우리가 원하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그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요 말할 것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ㄱ.인간의 세상 욕심을 멀리해야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이 많아도 이겨내도록 하고, 갖고 싶은 것이 많아도 절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애쓰면, 성령님이 그 욕심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 주시리라 믿습니다.
ㄴ.성령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듣거나 보게 되면, 하나님의 명령이 나의 마음에 지시를 합니다. 무슨 일은 해야 하고 무슨 일은 하지 말아야 할지 그 지시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ㄷ.복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이 날은, 하나님과 사귀면서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날입니다. 그리고 성도들과도 사귐을 가질 수 있는 복된 날입니다.
이렇게 살면, 전능하신 하나님, 그 옛날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더욱 온전케 됨으로써, 하나님과 좀더 가까워지고 이웃과도 화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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