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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겸손히 주님께 인생을 배워, 지혜로운 삶을 삽시다 (창 24:34-38, 롬 07:15-25, 마 11:16-19)

첨부 1


제 아내는 하루도 안 아프다고 하는 날이 없습니다. 머리가 아프지 않으면 배가 아프고, 배가 아프지 않으면 어지럽다고 말합니다. 몸이 아프지 않을 경우에는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게 됩니다.
아내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자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평생토록 골골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듯 싶습니다. 저의 어머님도 그렇고 누님도 그런 것을 보니 말이지요.
그것은 얘를 낳아서 그렇답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 충분한 휴식과 함께 산후 조리를 잘해야 하는 법인데, 대개 그렇지 못한 까닭에, 여성들이 그처럼 고생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오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도,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을 보아서는, 벌써 오래 전에 돌아가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흔을 넘겨 팔십이 가깝도록 정정하게 살아 계십니다.
이처럼 여자분들이 항상 아프다고 호소하면서도 오래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번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미나 기간 동안, 연세대 황수관 박사로부터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여자분들이 잘 웃고 잘 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별스럽지도 않은 일에 까르르 웃어대는 가하면, 조금만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 여자분들입니다. 아주 작은 선물을 받고서도 감격하며 고마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감정 표현이, 여자들로 하여금 건강하게 하고 오래 살도록 하게 한다고, 황수관 박사는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음식을 더 잘 먹고 무슨 운동을 특별히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잘 웃고 우는 일이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황박사는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 웃고 우는 사람, 감정이 풍부해서 감동과 감격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남녀간의 그 차이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감격과 감동을 잘해야 하고, 또한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오늘의 말씀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하고 말씀하시면서, ‘아이들의 놀이’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결혼식 놀이를 하면서 피리를 불어도 함께 춤을 출 줄 모르고, 장례식 놀이를 하면서 슬피 울어도 함께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마음이 굳어져 있어서, 감격과 감동이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감정이 메마르고 무감각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감정이 메마르고 그 마음이 굳어 있어서, 당신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깨닫지 못한다’며, 한탄하시고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잘 깨닫지 못하면서도, 반면에 비판 능력은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 ‘저 사람은 미쳤다’고 하더니, 이제는 예수께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예수는 즐겨 먹고 마시기도 한다’면서, 비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다른 사람과 함께 같이 아파하고 같이 즐거워하는 일에는 심히 더디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거나 그 잘못을 따지는 데는 대단히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인생을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감정이 메마르고 감사와 감격이 없는 까닭에,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기뻐하기보다는, 늘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문제점만을 비판하고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마음에는 평안이 없으며, 늘 무겁고 낙심되는 일과, 불평과 불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반대가 되어야,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과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무거운 짐’이란, 죄의 짐을 말합니다.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생활 태도로 말미암아,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라고 고백한 것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옳다고 인정할 수 없는, 그런 인생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이 그러한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하시는 초청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바울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불쌍한 인생을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자신이

1.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라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바울은 눈 하나 까닥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의 마음은 굳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옳고, 스데반은 죽어 마땅한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스데반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까지 성령을 거역할 셈입니까(행7:51)」라고 호소할 때에, 바울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로 자기 자신이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까닭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①자신은, ‘죄에게 사로잡혀 살고 있는 죄의 노예’라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올바른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면서, 「내가 원하지 않고 미워하는 짓만 저지르고 있다(롬7:15)」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 행실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나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하면서, 「내게 이런 악한 일을 시키는 것은 내 속에 들어 있는 죄(롬7:17)」라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이란, 죄에 사로잡혀 살게 될 경우, 「나 스스로는 올바른 일을 원하나,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 버리는 것이 현실(롬7:21)」라고, 바울은 솔직히 털어놓고 있습니다.죄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바르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쳐 보지만, 그러나 결과는, 죄가 시키는 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죄는 ‘잘못된 생각’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와 겸손의 진리가 아닌,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거부한 채, 자신의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면
②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는, 분별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ㄱ.조용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정욕에 따라 서둘러 결정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주부가 집에서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다리미질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벨 소리에, 이 주부는 괜히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는데도, 마침 라디오에서 울려나오는 빠른 템포의 음악 소리와 전화 벨 소리가 어우러져, 이 주부의 마음을 재촉했던가 봅니다. 수화기를 귀에 댄다는 것이, 그만 정신없이 그 뜨거운 다리미를 들어 얼굴에 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것이 누구 잘못입니까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복된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조용히 주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른 나머지, 사람의 생각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다가, 일을 그릇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ㄴ.잘못된 줄 알았으면, 그리고 한두 번쯤 실패했으면, 고집을 버려야 할텐데, 여전히 교만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실수와 실패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기보다 앞선 사람을 찾아가, 지혜를 구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지만 미련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③죽도록 고생을 하면서도, 아무 소득이 없는 헛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ㄱ.그야말로,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ㄴ.그리고, 죽는 그날까지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항상 불안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평안치 않으니, 입에서 나오는 말은 늘 부정적일 수밖에 없고, 불평과 불만이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은 지금 어떠한지 돌아보도록 합시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은 지금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과연 스스로를 생각할 때에, 자신이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삶을 살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는 주님의 초청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러주시는 말씀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게 되면,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시는 새로운 인생 길을 잘 배우고 따르게 되면,

2.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환히 열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종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의 결혼을 자기 맘대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자신의 고향으로 종을 보내어 며느릿감을 찾아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 때, 심부름 보내는 종에게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너는 아무 걱정 말고 내 고향으로 가서 내 아들의 혼처를 고르라.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어, 네 앞길을 잘 열어 주실 것이다(창24:40)」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아들의 결혼을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한 수 배웠던 것입니다.
①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자신의 생각에 묶여서 쓸데없는 고생하지 말고, 나에게 와서 인생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면, 〈온유와 겸손의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실수를 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계속 잘못을 범하게 하는 그 죄(罪)는, ‘잘못된 생각’을 말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잘못된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자신의 부족이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자꾸 들춰내며 비판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신 ‘온유와 겸손의 진리’는 이렇습니다. 사실상 예수님은 아무 잘못이나 허물이 없으면서도, 죄를 짓고 사는 인간의 위치까지 스스로를 낮추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이해하시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면서, 또한 마음 아프게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종래 우리 인간의 모습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취한 태도는, 우리를 계속 불행하게 했습니다만, 예수님이 보여 주신 새로운 인생 길은 참으로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
②우리 인생의 짐을 가볍게 해 주시고 마음의 안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30절에서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는 삶, 그래서 완벽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인간은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는,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할 때에, 그 인생은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 되거니와, 다른 사람을 쉽사리 정죄하는 더 큰 잘못을 범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는
ㄱ.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부족한 존재라는 것, ㄴ.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그 지도와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 ㄷ.자신이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다른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된다는 것, ㄹ.오히려 우리는, 인간은 누구나 바르게 살려고 하나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임을 직시하고, 서로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서로를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면,
③하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그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왜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잘못하고 괴로워할 때에, 함께 마음 아파하거나 눈물 흘리지 못하고, 나는 마치 그런 잘못을 전혀 범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런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교만한 마음이, 스스로를 얽어매는 무거운 짐이 되었고, 또한 모든 수고를 헛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따뜻한 사랑의 음성을 듣고

3.주님께 겸손히 나아 와, 인생을 새롭게 배워야 하겠습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11:30)」참으로 복된 소식입니다.
답답하게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은, 그 어떤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로 하여금 불만을 말하게 하고 짜증나게 한 것은, 그 누구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었던 것입니다.
①이제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하신 주께, 어린이 같은 마음 가지고 나아 오시기 바랍니다.
이미 경험한 것이 많고 배운 것이 많아서, 남을 가르치고 잘못을 질책하는 스승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 인생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ㄱ.물론, 먼저 우리의 무거운 짐을 주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무 염려하지 말고 완전히 내려놓도록 해야 합니다.
ㄴ.그리고 주의 진리와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완벽한 삶을 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잘못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탓하지는 않습니다.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는 부족한 인간이,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있을 것처럼 우겨대고, 자신은 잘못이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윽박지르는 때에, 주님은 우리를 못마땅히 여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생들의 삶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런고로, 아직 한 번도 인생을 다 살아보지 않은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할 우리 인생 길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할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여쭙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②두말할 것 없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ㄱ.모든 일은 기도하고 시작해야 하며, 또한 기도하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자부를 구할 때에, 그의 종을 고향으로 보내기 전에 먼저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종을 떠나 보낸 후에도 계속 기도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종도 계속 기도하면서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4장 42절에서 그의 종은,「제가 오늘 우물에 이르렀을 때에,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ㄴ.기도한 대로 이루어진 것을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일이 잘된 것을 깨닫고 「주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라고, 창세기 24장 48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일은 많아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잘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일들이 너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이루어졌을지라도 감사가 없으면, 그 모든 일은 허사가 될 염려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감사가 없을 경우, 아무리 많은 일이 이루어졌어도 그 마음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대로, 온유하고 겸손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새로운 인생 길을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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