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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이웃 사랑으로 악을 정복하자 (출 03:1-15, 롬 12:9-12, 마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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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世上)이 악하다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世上)이란,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악하다는 말은, 결국 우리 자신이 악하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나’를 빼놓고 세상이 악하다는 말이라면, 그것은 마치 ‘나’라는 존재가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고로, 세상이 악하다면, 그 책임은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도대체 세상이 악하게 된 책임을 누구에게 묻겠습니까 결코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물을 일이 아닙니다. 어느 누가 ‘자신은 세상이 악하게 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노라’고 말한다면, 그는 바보 중의 바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악하게 된 책임을, 그 누구에게 떠넘길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죄가 많든 적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세상은 더욱 오염되며 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을 점점 더 악하게 만드는 나의 죄가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을 악하게 만드는 나의 죄란,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그 욕심 중에서도, 이기심(利己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이나 입장은 돌아보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세상을 악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한총련 사태를 보십시오. 연세대가 데모하기에 좋아서 집회 장소로 택한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왜 학교 건물을 그처럼 철저하게 파괴한단 말입니까 붙잡힌 학생 숫자를 보니, 연세대 학생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타 대학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기네 학교 건물이 아니라고, 그처럼 건물을 부수고 깨뜨렸던 것입니다.
결국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만이, 악한 세상을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길이 됩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 우리를 위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기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것은 십자가 정신뿐입니다. 십자가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당신의 모든 것은 다 포기하셨습니다. 자존심은 물론이요, 목숨까지도 버리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무슨 죄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 곧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던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돌을 던지며 침을 뱉고 있는 사람들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시고, 주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희생이고 사랑입니다. 내 욕심을 버리고 너를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걸어가는 것만이, 이 악한 세상을 구원하는 지름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①우리 자신은, 누가 보더라도 정직하다고 인정할 수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7).
②이 때, 바르게 살려는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들이 많이 생길텐데, 그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19).
③오히려, 그들이 굶주리면 먹을 걸 주고 목말라 하면 마실 것을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20).
그렇게 해서, 「악이 기세를 부리지 못하게끔 선한 행실로 악을 정복하라(21)」고, 바울은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바울 선생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악한 세상을 바로잡는 방법도, 결국은 십자가 정신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을 베풂으로써, 선(善)이 악(惡)보다 훨씬 더 강하고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강하거나 우월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들보다 더 큰소리로 말하거나 우겨다짐을 해서, 그들을 굴복시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갈6:14에서「내게는 주 예수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강점은 육적(肉的)인 것이 아니고 영적(靈的)인 것입니다. 사랑과 인내와 겸손과 온유가 저들보다 더 많다고 하는 것이, 강점이 되고 장점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 정신만이,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무기가 되고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 무기를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말할 것 없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함으로써, 악한 세상을 선하게 바꿔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1.이웃을 사랑하라는 주의 명령을 잘 따르고 있습니까

바울은 롬12:9에서 「겉치레로 남을 사랑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①하지만 우리는, 모든 일을 인간 편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노라고 고백하던 사람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할지라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막14:29)」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주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곧 죽게 될 것임을 밝히자, 그는 안된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예수를 따라다닌 일이 헛수고가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속셈은 이미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마19:27)」라고 말이지요.
ㄱ.우리는 베드로처럼 자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주를 굉장히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속에는 세상 욕심이 가득합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편에서만 생각한다」고.
ㄴ.이와 같이 인간 편에서 생각하면, 주의 명령인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웃이 내게 억울하게 한 일만 생각나고, 그 이웃과 함께 해 봤자 손해만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②그 결과,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이란,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늘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웃음을 짓습니다.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악하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미움과 원망과 다툼이 바로 내 마음속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왜 전경이 죽어야 했습니까 언제부터 서로 원수가 되어 살았기에, 쇠몽둥이로 때리고 최류탄을 쏘아 대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들을 욕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오염시키고 악하게 만드는 그 요인이 바로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제대로 공경치 못하는 사람은, 자식도 바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웃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도 온전히 섬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사람 구실을 하며 살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참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에는, 각 사람이 살아온 대로 심판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천지가 변해도 이 말씀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 우리는 이 말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께서 무엇을 기준으로 심판하실까요 틀림없이, 주님이 명령하신 이웃 사랑의 실천 정도에 따라 심판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2.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고통 당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만 혼자서 편안히 살 생각하지 말고, 지금 애굽에 내려가서 네 백성을 구원하라!(출3:10)」명령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에게 동족 사랑을 실천하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싫다고 했습니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분명히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출3:12)」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하시려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특별히 부르셨습니다.
①부르셔서, 날마다 우리를 거룩케 하십니다.
ㄱ.말씀을 들려 주셔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끔, 변화하게 해 주시고 성장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ㄴ.그리고 기도할 때에, 성령으로 오셔서 용기와 소망을 주시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잘 알아주지 않는, 아니 오히려 빈정대고 비웃기만 하는,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그 길이 옳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②제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ㄱ.원수 갚는 일은 주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아주 악하게 되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믿음의 길을 가는데 주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ㄴ.우리가 할 일은, 선한 행실로 악을 정복하는 것임을 깨우쳐 주시고 있습니다.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찬송가 521장 4절)」
③각 사람이 살아온 대로 심판하십니다.
다른 사람들과, 좀더 잘 살기 위한 경주를 한다거나, 누가 더 자식을 열심히 가르치는가 하는 내기를 한다면, 차라리 그 길이 더 쉬울지도 모릅니다. 속을 뒤집어 놓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고서도 이해하고 공경해야 하며, 매번 거짓말로 속이면서 손해를 입히는 이웃일지라도 선하게 대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실천 정도에 따라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먼 훗날에 있을 주의 심판만을 두려워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심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자신의 삶이 옳고 그른지, 그 양심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인정할 수 없다면, 어찌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삶을, 자식인들 인정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자신의 삶을 냉철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나 친구 중에 ‘정아’라고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아내가 그 학생의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아는 제 고집대로 사는 아이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은 꼭 하고 마는 성질입니다. 일단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일은 누가 말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못하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답답한 사정을, 이번에 아내에게 털어놓더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그에게 물어 봤답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렇지요” 그러자, 정아 어머니는 솔직하게 털어놓기를, 자기를 닮아서 그렇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과거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산 결과가 별로 안 좋았기 때문에, 딸만은 그렇지 않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딸이, 자기 살아온 그대로 사는 것을 보니,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싫어하는 인생을 내가 살고 있으면서, 어찌 자식은 그렇지 않기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주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르도록 합시다. 그래야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3.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웃이란, 바로 나와 함께 한 집에서 사는 사람부터 계산해야 합니다. 내 집안에 있는 사람부터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웃과 교회, 사회와 국가라고 하는 큰 이웃까지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①모든 일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연대에서 데모를 한 학생들은, 하나님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한 나라 안에 있는 우리의 대학임을 생각했더라도, 그렇게 학교 건물과 기물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기밖에 모릅니다. 내 기분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피해가 머지않아 바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또한 자기 식대로 살게 될 때에는, 그 피해를 내가 입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세상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돈이라고 마구 사용할 것이 아니라, 나라 경제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 몸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은 주의 성전임을 생각할 때, 주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사용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우리의 사고(思考)가 바뀌게 된다면, 이웃 사람이란 내가 사랑해야 할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웃이 바로 나요, 그리고 우리가 공경하고 사랑해야 할 하나님인 것을 알았다면, 바로 그 이웃을 위하여
②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이웃을 위한 희생과 사랑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통한 이웃 사랑이란,
ㄱ.우선 나 자신이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슨 물질을 베풀거나 이해하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이 정직하게 살면 이웃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ㄴ.그리고 이웃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웃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아직 믿음이 있노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행동으로 즉시 움직일 수 없다면, 우리의 이웃 사랑은 허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어야 할 때에, 머뭇거리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③그 사랑이란,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만일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우월하다고 한다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원수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주의 십자가의 정신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독교인임을 자랑하면서 긍지를 갖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들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ㄱ.먼저 나 자신이 온전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누가 보더라도 정직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ㄴ.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ㄷ.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악이 기세를 부리지 못하도록 선한 행실로 악을 정복해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오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을,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주님의 나라로 바꾸는 일에, 모두 함께 동참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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