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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단정하고 진실하게 살아갑시다 (출 12:1-14, 롬 13:8-14, 마 18:15-20)

첨부 1


어제 신문을 보셨습니까
서사모아 근해에서 조업 중이던 원양어업 선에서, 선상(船上) 반란(反亂)을 일으킨 조선족 교포 선원들이 열 아홉 살 먹은 최동호라고 하는 어업 실습생을 산채로 바다에 던져서 죽게 했다는, 끔찍한 기사를 읽어보셨는지요
최군은 맹장염을 앓고 있어서, 치료받으러 가기 위해 배를 갈아탔다가, 그런 변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최군은 그들에게 살려 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지만, 그들은 인정 사정없이 최군을 바다에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사람 하나를 냉장고에 넣어 얼려 죽이고, 나머지 아홉 명은 식칼과 도끼로 찔러 숨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말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어떻게 그런 끔찍스러운 일이,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런 일을 볼 때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악해지면, 이런 일도 일어날 수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 자신이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당신의 형상 따라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 모습이란, 우리의 겉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주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또한 주께서 원하시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행할 수가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그 목적을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인간이 지켜야 삶의 법칙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특별히 주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특별히 주신 선물을, 좋은 일 하는 데 쓰지를 않고 엉뚱하게 사용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은 하나님의 고마우신 뜻을 저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속사람은 점점 하나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동물적인 모습만 남게 되었습니다. 타락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행하려 하지 않고, 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짓만 골라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인간 자신도 원치 않는 일인데, 그 무엇인가에 이끌려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기 전까지는, 작은 잘못을 하고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죄의 노예가 될 경우에는, 무서운 죄를 짓고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명을 하거나 다른 말로 둘러대면서 큰소리를 치게 됩니다.
죄의 노예가 되면, 죽도록 죄가 시키는 일만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온갖 창피와 수치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실패와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은, 죄를 지어 당하는 고통이나 실패를 맛보면서도,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재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변명을 하거나,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이 죄의 노예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악한 죄의 세력을 십자가로써 물리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곧 인간의 참 모습을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인지를 말씀하시고, 또한 그대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스승이 되시고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옛 아담의 성품이나 생활 태도를 버리지 않고 지금 그대로 살게 되면, 영락없이 죄의 노예가 되어 불쌍한 인생을 살다가 멸망하거니와, 새로운 아담 예수를 본받고 따라가면 새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진리를 우리가 알고 믿게 된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우리는 이제, 왜 사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복된 길인지, 올바른 삶의 방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말씀의 환한 빛 속에서 살면서, 그 목적지가 분명 바라보이는 인생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성령님이, 친구가 되어 함께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이 복되고 좋은 길을 놔두고, 세상 유혹에 빠져서, 죄의 노예가 되어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구원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이미 한번쯤은 구원의 체험을 하고서도 세상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다는 말입니까

1.어둠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어둠에 속하는 악한 행실을 벗어버리고, 낮에 사는 사람처럼 바른 생활로 무장하라(12)」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든지, 어둠 속에 살면서 죄를 범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상 반란을 일으켜 11명의 고귀한 생명을 무참하게 살해한 중국 거주 우리 교포들도, 처음부터 그런 목적을 갖고 배를 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몫 벌어서 멋있게 살아보겠다는 소망을 갖고 배를 탔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왜 그랬는지, 지금은 자신들도 분간할 수 없는, 그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행위가 꿈이었으면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온전한 정신으로 하는 짓이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그 무엇엔 가에게 홀려서, 자기 자신도 원치 않는 짓을 합니다. 그래서 한 번 죄를 짓게 되면, 자기가 저지른 행동이 미워서 인생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아예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심히 혼란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차 싶은 순간에, 우리도 사탄에게 속아, 범죄할 위험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른 생활로 무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①죄의 노예가 되어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ㄱ.그래서, 어둠에 속한 악한 행실을 범하게 됩니다. 남의 것을 거짓말로 속여 빼앗거나, 몰래 도둑질하는 파렴치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돈 벌려는 욕심 때문에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을 만들어 팔고, 돈 욕심 때문에 주께서 원치 않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이런 욕심을 막아내지 못하여 악한 행위를 멈추지 않게 되면, 나중에는 살인까지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ㄴ.신앙적으로는 십계명을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데, 죄의 노예가 되어 살게 되면 주일 범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②말씀 따라 바르게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면, 형제와 이웃을 미워하게 됩니다.
ㄱ.별 것도 아닌 문제로 인하여, 섭섭한 감정을 갖게 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말씀을 들어서 우리의 나쁜 감정을 다스리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악한 감정에 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ㄴ.미운 마음을 갖게 되면, 마음을 합쳐서 주의 일을 하기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런고로, 성전을 짓자고 하기 전에,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무슨 큰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는 불충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서 주님의 눈밖에 나게 되었고, 아벨은 열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하였으므로 주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깨닫기보다는, 사랑 받는 아벨을 괜스레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미움이 원한이 되어, 동생 아벨을 죽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한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악한 세상에서, 우리 가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 악한 세상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레 물들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악한 죄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 악한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물론 내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는 죄와 사망을 이기셨다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6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2.주님은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내려간 것은,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애굽에 갔다가, 애굽 사람들의 종(從)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코 애굽 사람의 노예가 되고 싶어서 내려간 것은 아닙니다. 분명 먹고살자고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먹고살기 위하여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짓다가 멸망당하려고, 세상에 나가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았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죄가 시키는 대로 죄악을 행하다가, 영원히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①그런 우리들을, 주께서 구원하셨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기 직전, 그들이 사는 집 문설주에 양(羊)의 피를 바름으로써, 죽음의 사자(使者)가 비켜 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양의 피, 곧 예수의 피로써 구원받았습니다. 주가 흘리신 그 피는, 희생과 헌신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각자 자기만 살겠다고 했으면, 백만이 넘는 그들이 과연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문설주에 발랐던 어린양의 피란, 곧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②오늘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주께서 흘리신 그 피를, 우리 또한 흘려야 합니다. 물론 그 피(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주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닙니다. 죽는 날까지 죄악 세상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사는 동안, 죄에 완전히 빠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흘리신 피가 효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예수님이 마태복음 18장 18절에서「땅에서 매어 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어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③이렇게 우리가 서로 자기 것을 양보하는 가운데,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께서는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서 예수님은 「두 사람이 땅 위에서 마음을 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겠노라(마18:20)」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하는 일이면,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께서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소망적인 말씀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말씀 따라

3.단정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몸도 단정해야 하고, 마음도 단정해야 합니다. 이제 몸치장은 어지간히 하고, 마음 단장 하는 일에 모든 신경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자칫 정신을 다른 데 두었다가는, 우리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애굽 왕이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자, 하나님은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지 않고, 첫째 되는 것들은 모조리 멸하시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말씀대로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그 재앙을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그들은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하나는, 양이 대신 죽음으로써, 자기들이 살아남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번, 모 여대생이 성폭행을 당할 뻔 했습니다. 아마 성폭행을 당했더라면, 그 학생은 일생을 망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성규라고 하는 군자교회 청년이, 그 악한과 대결함으로써, 학생은 폭행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32세의 최성규 씨는 그 악한의 칼에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최성규 씨는,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여대생을 살렸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생각할 때에, 그는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짓을 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포상(褒賞)을 하고, 그 가족에게 격려금을 주었지만, 죽은 사람에게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최성규 씨의 행동을 놓고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바로 죄의 근원입니다.
①우리는 이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ㄱ.함께 망하지 않으려면, 속히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면, 그 생각을 가진 사람 자신이 불행하게 되거니와, 그가 속한 가정이 불행하게 되고, 나아가서 그가 속한 교회와 사회가 불행하게 됩니다.
ㄴ.주님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 곧 십자가의 정신으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씻어 내야 합니다.
②그래야 우리는, 믿음의 무장을 단단히 할 수가 있습니다.
ㄱ.믿음이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 죽음은 진실로 값진 죽음이었다. 그의 죽으심으로 온 인류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 뒤에는, 부활의 영광이 반드시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ㄴ.이 믿음을 갖고, 바르게 살도록 애써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일까요 나의 즐거움과 유익은 멀리하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먹고 마시는 일과 분쟁과 시기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대신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하여, 주님께 도움을 청하라고 했습니다(롬13:13-14).
③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올바른 삶이란,
ㄱ.먼저 개인적인 유익을 떠나서,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로마서 13장 9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면, 어찌 남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속여 빼앗을 수가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단정히 한다는 말은, 내 속에 있는 이기심을 버리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
ㄴ.서로 마음을 합하는 일입니다. 물론, 내 뜻을 이루고자 할 때에는, 마음을 합칠 수 없습니다. 나의 일이나 내 집의 일보다, 주의 일을 먼저 하고자 하는 신앙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성규 씨가 자기 가족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그런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ㄷ.범사에 단정하고 진실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일은 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치 못하기 때문에, 불성실한 신앙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했던가요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결정했던 일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 모두 노력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모든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자신의 마음을 단정히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사탄 마귀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도록, 믿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도록 합시다.
아무쪼록,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잊지 마시고, 그날까지 마음을 단정히 하여 진실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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