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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 (출 17:1-7, 빌 02:1-13, 마 21: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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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기독교인으로서, 성도들끼리 서로 격려해 줄 마음가짐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저를 도울 마음이 우러날 만큼 저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까 우리가 함께 성령을 받았고, 주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어 있다는 참다운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애정이 있고 동정심이 있습니까(빌2:1-1)』
이제 드린 말씀은, 제가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물은 내용입니다. 오늘의 이 말씀을, 바울이 직접, 우리 모두에게 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그런 질문을 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마음을 열어 화합하시오. 한마음과 한생각, 그리고 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여, 내 마음을 기쁘게 하시오(빌2:2)』라고 부탁하면서,『자신을 너무 드러나게 행동하지 말고 겸손하게 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고, 남의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빌2:4)』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부지런히 나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의 소유가 많아져야, 세상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런 생각이 진리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세상에서는, 돈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돈 가지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암(癌)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그 생명을 연장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돈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습니다. 이밖에도, 돈을 가지고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로 인하여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많은 문제 중에는 돈에 관련된 것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서로의 마음이나 생각이 맞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고부간의 갈등이나 자식의 문제, 그리고 세대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 들이, 그 한 예(例)에 속합니다. 이런 것들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사람의 지혜나 수단을 갖고서도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강압적인 방법을 써도 안되거니와, 사정과 호소도 잘 통하지 않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만드실 때부터, 인간이 가져야 할 근본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외면하고서는,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인간이 가져야 할 이 근본적인 요소를 《그리스도 예수의 자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자세를 본받지 않고서는,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자세란 어떤 것일까요 주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있었지만, 그 권리를 주장하거나 집착하지 않았습니다(빌2:6). 이 말씀이 놀라운 진리가 됩니다. 주께서 자기 권리를 포기했다는 이 진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기는커녕, 더 많은 권리를 얻고자 애씁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것도, 바로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리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한까지 침범했다가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 인간이 이 습성을 버리지 않는 한, 불행한 인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예수를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 주신 새로운 삶의 자세를 배우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보여 주신 새 삶의 자세란, 『자기 이익만 추구하지 않고 남의 일에도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 삶(빌2:4)』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 권리와 내 이익을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몸부림치는 생활이 아니라,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 삶의 자세를 갖고 살아야, 인간 관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한 마음과 한 생각, 한 목적을 갖고 함께 일할 수가 있습니다(빌2:2).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옛 아담의 성품과 생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입장과 내 이익만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하기를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새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각오는 수없이 하면서도

1.여전히 주의 자세와 마음을 본받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입장을 조금만 이해하려고 했더라도, 그처럼 모세에게 대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마실 물이 없어서 갈증을 느낀 백성들이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너희가 왜 내게 대드느냐 너희가 정말 그렇게 여호와를 시험해도 되는 것이냐(출17:2)』고 하면서 그들을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심하게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아주 심한 말까지 하면서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우리가 언제 당신더러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라 하였는가 왜 우리를 이곳까지 끌고 와서 목말라 죽게 하는 거요(출17:3)”하고 항의했습니다.
모세는 할 수 없이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주여, 이 무리에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이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나일 강물을 치던 지팡이를 들고 가서 호렙산 바위를 내리쳐라』하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일 강물을 치던 지팡이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는 제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①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 은혜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굳건히 의지하면서 은혜 가운데 살면, 문제가 별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런 일을 통해서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노력하면서, 주님의 섭리하심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ㄱ.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의심하게 될 때에, 정말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그토록 가까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 때문에, 주님보다는 세상을 더 의지하면서, 세상에 치우쳐 살게 됩니다. 세상 방법대로 살았으면, 계속 세상을 의지할 일입니다. 그런데, 일이 잘 안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을 찾거나 원망하고 있습니다.
ㄴ.주의 능력이나 은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런 다면, 별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그런 체험을, 한두 번쯤은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얼마나 많이 체험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처럼 불평과 원망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노릇입니까
②그야말로,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닐까요
지난 주(9월 26일) ‘주간조선’지에는 김춘수 시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옛날부터 계속 성경을 읽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 내용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없습니다. 성경을 문학으로만 대하고 읽는 것이지, 신앙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74세된 그는, 죽음이 두렵노라고, 실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대하고 들으나, 그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ㄱ.하나님의 섭리하심과 그 능력을 의지하면서 기도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ㄴ.일이 잘 안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교회 지도자만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미소짓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은혜를 저버리고 왜 엉뚱한 짓을 하느냐’고 하는 화난 표정이 아니라, 언제라도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실 것처럼 보이는 넉넉하고 밝은 표정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잘한 것도 없이 원망과 불평을 계속 늘어놓고 있건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신을 크게 나무라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를 받아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놓으면서 영적 지도자의 가르침을 외면하게 되면, 결국 그 인생은 악순환이 거듭될 뿐입니다. 반면에, 지금 이 순간이라도, 자신의 삶의 자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면,

2.하나님은 그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①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해 주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돌봐 주시리라 믿습니다.
ㄱ.주님께서는 이미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은 당신의 권리와 지위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지위를 박차 버리시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생활 을 고쳐서 바로 잡아 주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남의 일에도 관심을 가질 줄 아는, 바람직한 인간 모습을 되찾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ㄴ.그러나, 그뿐입니까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성령으로 오셔서, 말씀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지도하고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믿음대로 살려는 의지를 갖고 열심을 내게 되면, 이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일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주의 도움의 손길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분보다 귀하신 주님께서 우리 곁에 와 계시건만, 그분을 마음에 모셔들이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하지만, 주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인 복된 심령들도 참 많습니다.
②그들은, 어렵고 힘들 때에, 주님께 기도함으로써 도움 받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것은, 비단 세상 일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웃 사람이 몹시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도, 맘껏 돕지 못하게 될 때에, 그것이 힘든 일입니다. 이럴 때에 주님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바울의 일생은 순전히 그런 삶이었습니다. 자신의 안위나 행복은 뒷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사실 이런 삶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지향해야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그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와 국가는, 모든 문제가 점차 사라지고 주님의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③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데 있습니다.
늘 문제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ㄱ.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늘 가까이 계셔서 도와주시는 주님의 임재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ㄴ.주께서는, 믿음 갖고 말씀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적극 도우셔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보여 주시려 합니다.
사람의 수단이나 꾀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믿음을 갖고 정직하게 산 사람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께서 이루시는 모든 일이 꼭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화목을 도모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주께서 그 즉시로 마음에 평강을 허락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믿음을 갖고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이 아무리 옳아도, 그 생각대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른 생각을 갖고 살아야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아니,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를 믿고 따를 때에만 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그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을 믿고, 또한 그가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삶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 것 가지고서는 땜질에 불과하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식의 문제도 그렇고, 부부간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보여 주신 삶을 본받도록 애쓰는 것만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정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예수께서 보여 주신 삶의 자세를 본받고 따라가야 합니다

①그것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순간에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품이 원래 온유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름대로의 고집이 있고 주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뼈를 깎는 아픔을 동반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기도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ㄱ.이 문제의 해결이 있어야만, 다른 믿음의 형제들과 마음과 생각을 같이 하여, 주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ㄴ.그런고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앞서가는 사람들, 특히 지도자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상책입니다. 거듭난 것도 아니고, 성경의 진리를 꿰뚫어 아는 것도 아니라면, 배우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남을 존중하며 산다면, 그것으로써 믿음의 길을 온전히 간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더 생각한다면
②남의 일의 내 일 같이 여기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다 버렸습니다. 오로지 인류를 위하여 그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분들의 삶을 본받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런 삶을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자세히 배워서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산 분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입니다. 이분은 너무나 깨끗하게 사신 분입니다. 이분의 삶이 너무 맑고 깨끗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엄격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 선생의 집 앞마당이 늘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마, 안주인이 부지런하기 때문이겠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느 낯선 청년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저녁이면 나타나, 외솔의 집을 쓸고는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궁금해서, 이 청년을 기다렸다가, 물어 보았습니다. “여보시오. 대체 당신은 누군데, 이렇게 매일 청소를 해 주는 거요”
그러자 청년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외솔 최현배 선생님께 큰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저는 예전에 함흥 감옥에서 선생님과 한방을 사용했더랬는데, 하루는 제가 찬밥을 잘못 먹어 큰 배탈이 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굶으면 낫는다’고 하시고는, 혼자 굶기 어려울 터이니, 함께 굶자고 하시며 며칠을 같이 굶어 주셨답니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까지 저의 배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던, 선생님의 손길을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가진 것도 없고 해서, 이렇게 매일 마당이라도 쓸어 드리는 일로, 그 은혜를 갚고 있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베푼 외솔 최현배 선생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빌립보서 2장 10절의 말씀을 보면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이 예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만이, 우리의 진정한, 삶의 스승이 되십니다.
이분의 뒤를 따르는 우리들은 대단한 긍지를 갖고 살되, 진실로 예수님처럼,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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