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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처럼 섬기며 살리라 (욥 38:1-7, 히 05:1-10, 막 10: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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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모내기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수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의 풍성한 결실을 위해서, 그동안 농부들이 흘린 땀과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봄과 여름 내내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며 김매기 하는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가을에 거두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힘씁니다. 그렇지만, 웃자랄 때에는 잘라 내주기도 합니다. 벼가 너무 잘되어 키가 아주 클 경우에는 벼의 위 부분을 적당하게 잘라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벼이삭이 나와도 잘 여물지 않거나 강한 바람에 그만 넘어질 염려가 많기 때문입니다.
욥의 시련이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도 인정하실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웃 사람들도 그를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하다가는 교만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으로 하여금 환난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진정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겪으면서 자기 실체를 바로 깨닫고 자중하도록 그런 조치를 취하셨던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에, 한 번 교만에 빠지면 멸망할 때까지 헤어나 지 못합니다. 그래서, 욥이 교만해져 멸망하기 전에, 농부가 웃자란 벼를 잘라내듯이 하나님께서 미리 손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쉽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때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지만, 시련이 쉽게 끝나지 않자,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내가 무슨 까닭에 이런 환난과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요컨대, ‘네가 뭘 안다고 떠드느냐’는 것입니다. ‘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지혜를 의심하는가’하고 욥을 책망하시면서 ‘네가 어찌 내 깊은 뜻과 사랑을 다 알 수 있겠느냐’고 따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가 이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비를 내리게 하고 번개를 치게 할 수 있는가 이 세상의 그 누가 티끌을 모아 흙덩이가 되게 할 수 있는가’하고 욥에게 따져 물으셨습니다.
그제야, 욥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은 말하기를 “제가 잘 깨닫지도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려댔습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 하시는 놀라운 일을 미처 깨닫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습니다”라고 고백한 후, 그는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던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미워해서 환난을 당하게 하신 줄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자신을 위한 깊은 사랑과 뜻을 가지고 행하신 일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에서 최고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대학입니다. 그리고, 그 대학 중에서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곳은 미국의 하버드입니다. 그런데, 그 하버드 대학은 다음과 같은 학생 강령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①모든 학생은, 자신의 삶과 학업의 주된 목적이 영생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②모든 학생은, 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명심하면서 은밀한 곳에서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③모든 학생은 하루에 두 번 성서를 읽음으로써, 성서의 용어와 사상뿐만 아니라, 영적 진리들에 대해서도 언제라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습니까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가 이러할진대, 남들보다 조금 더 배웠다고 교만하게 굴 수 있겠습니까 조금 더 지능지수가 높다고 해서 잘난 척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지혜의 능력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살아야 가장 지혜로운 삶인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본받아 살아감으로써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복된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며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어떤 모범을 보여주셨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막10:45)』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왔다(45)』는 것입니다. 요컨대, 주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섬김의 도(道)를 가르치기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높은 곳에 계셔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낮춰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섬겨 살았던 것입니다. 결국 주님처럼 산다는 말은, 자신을 낮춰서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섬겨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처럼 이웃을 섬겨 살고 있습니까

1.주의 뒤를 잘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주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제자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그 야고보와 요한이 하루는 주님께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주께서 영광 받으실 때, 우리가 주님 다음의 자리에 앉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두 제자가 이런 부탁을 하자, 다른 제자들이 두 제자에게 화를 냈습니다.
두 제자는 ‘우리 형제가 주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훌륭한 제자다. 그래서, 주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고 있다. 그러니, 장차 주님께서 왕이 되시면, 우리가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생각하고 그런 부탁을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에, 다른 제자들이 시기심이 생겨서 그들에게 화를 냈던 것입니다.
스승인 예수께서는 ‘섬기는 종’이 되어 십자가를 지려 하고 있는데, 두 제자들은 장차 주께서 왕이 되리라 생각하고 그런 어리석은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던 까닭에, 두 제자에게 그처럼 화를 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생각과 무슨 목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까 좀더 귀한 직분을 얻어 사회에서 대접받기 위한 것은 아니겠지요 주님 예수 덕분에 이 세상에서 무병장수하고 평안히 잘 살다가 죽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려는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되면, 주의 제자답게 살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처럼 섬기는 종이 되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교회를 다니면,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며 다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주의 뒤를 온전히 따를 수 있겠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주님이 우리에게 일러주신 말씀과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2.우리는 주님을 본받아서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가 죽기 바로 일년 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 공연을 위해, 작곡가 하이든도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늙고 병약하였기 때문에, 그는 휠체어로 그 공연장에 입장했습니다. 그의 등장은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온 힘을 다해 공연을 마치자, 박수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습니다. 이 반응에 감동하여 늙은 음악가는 일어서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떨리는 손을 위로 치켜들고 외쳤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음악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기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그 ‘천지창조’의 작곡가인 하이든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재능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솔직하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욥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뵙기 전에는, 자신이야말로 참된 신앙인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이 많았기에,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뵙고 난 후에는, 자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주께서 나를 위해 하시는 놀라운 일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뒤를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①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우리는 신경질을 내거나 짜증을 낼 때가 많습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우대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를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어떤 때는 아주 훌륭한 어른인 체 뽐내다가도, 아주 작은 일로 화를 벌컥 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는 한 치 앞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자기 앞에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르면서 큰소리를 뻥뻥 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입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압니다. 별것도 아닌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소리치고 으스대는 것입니다. 속이 꽉 찬 사람은 자신이 떠들기 전에 벌써 다른 사람이 알고 인정해주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자신을 낮춰 사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들려주시는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그 결과,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높여 교만하면 멸망에 빠지지만, 자신을 낮춰 주님처럼 겸손하면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가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랑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②우리는 주님처럼 겸손하게 되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일이 참 많습니다. 불행히도 IMF를 겪게 되어, 그가 잘한 것까지도 무시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나는 죽었노라’하고 조용히 계셨더라면, 세월이 가면서 그의 공로가 차츰 드러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당신 스스로가 자신의 치적을 떠들어대기 때문에, 별로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도, ‘천지창조’를 작곡한 하이든처럼, 우리는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서 주님만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주님을 본받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나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참으로 힘든 과제이지만, 이 일이 우리기독교인이 감당해야 할 아주 중요한 사명인 줄로 알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과 감정, 이익을 물리치고, 우선 주의 뜻을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일일지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면 겸손히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부름 받았습니다. 내가 잘 살고 영광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③이런 자세로 열심히 살 때에, 우리는 영원한 구원과 영광을 얻게 됩니다.
주의 뒤를 충실히 따를 때에 영원한 구원을 얻습니다.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면 영광도 얻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분이 되셨다”고 주님을 소개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처럼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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