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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과 동행하여 천국에까지 (룻 01:1-18, 막 12:28-34, 히 0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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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팡세’의 저자인 파스칼이 말하기를 ‘인간의 가슴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공허하고 고독한 마음을 채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잘 믿어야 고독이라는 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어느 목사님이 조사한 결과, 문제가 있어서 그 목사님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의 99%가 그 원인이 고독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종교잡지의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0%가 ‘나는 외롭다’고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독은 인간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함께 동행할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마음과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동지(同志)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에 자신의 답답한 사정을 털어놓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런 참된 동지를 얻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독을 느끼고 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살던 베들레헴 지역에 흉년이 들자, 그녀의 가족은 모압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녀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죽어 없어진 것만 해도 못 견딜 일인데, 두 아들마저 죽었으니, 그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녀는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을 것입니다. 낯선 이국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혼자 되었으니, 그 고독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두 며느리가 있지만, 자녀 없이 혼자가 된 그들이니, 언제든지 때가 되면 떠날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오미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고국 유다 땅에서는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자기 뜻을 전하면서 각기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와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보아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큰며느리는 못이기는 척 나오미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한사코 시어미와 동행하겠노라고 우겼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그녀의 굳은 결심을 밝혔습니다.
정말 고독했던 나오미로서는 룻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나오미와 룻은 함께 살았지만, 이제 정말 나오미 곁에는 룻이라는 참된 동반자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 맘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더러 있더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외롭고 허전한 맘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문제는, 주님을 우리 맘에 모셔들이거나 어떤 동지를 얻기 위해선, 그 주님과 동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 룻이라는 좋은 동행자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영원한 본향인 천국 가는 길에는 함께 동행할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사랑의 주께서 우리 손을 잡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지만, 믿음 안에서 서로 마음과 뜻을 함께 하면서 고락을 함께 나눌 진정한 친구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친구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오미나 룻은 서로 참된 동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의 입장과 형편을 잘 이해하고 각기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배려했습니다. 나오미가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악독한 여자였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입장보다는 타인의 형편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배려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룻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는 성군 다윗의 증조모가 될만한 덕목과 성품을 지닌 여자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타향살이가 얼마나 고달프고 외로운지 시어머니를 보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외롭고 힘든 길을 자청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극구 만류했는데도, 그녀는 시어머님과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었습니다.
왜, 그런 결단을 했을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보다 시어머니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홀로 고향에 돌아가게 된 시어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착한 그녀로서는 시어머니께서 혼자 고향 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그 선한 마음이 다윗에게 유전되었고, 나아가서 예수께로 그 피가 흘러 내렸으리라 믿어집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이 그 죄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음을 보시고, 주님은 당신 몸을 희생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악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되십니다. 어디든지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버릴지라도, 예수님만은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교회를 등지고 구인사로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는지, 저의 발길을 종종 그 들의 집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교회와 목사를 욕하고 헐뜯던 사람들에게도, 주님은 사랑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참 좋은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위에 계신 나의 친구, 그의 사랑 지극하다/이는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 나의 친구/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찬송가 97장 1절입니다.
친구간의 사랑은 일방적일 수 없습니다. 물론 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고 주님을 대하느냐에 따라서, 주님과의 우정도 계속되거나 끊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깊고 따뜻한 사랑을 계속 베풀지라도, 우리의 사랑이 별스럽지 않거나 형식적일 경우, 주님과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듯이, 우리 또한 주님을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듯이, 우리도 이웃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1.우리는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어머님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 여자였지만, 시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즉, 시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신도 섬기겠노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서로 다투고 분열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까 과연 누구를 위해 믿음의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과연 누가 이득을 보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서로 용기와 믿음을 북돋워주고 이끌어줘야 합니다. 나오미와 룻처럼, 서로의 형편과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언제나 내 입장과 형편에서 생각하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본받고 따라가야 할 주님의 희생 정신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란, 주님의 십자가 희생 정신을 본받아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막8:34)』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천국 가는 길에서 믿음의 동반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좁은 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마7:13)』고 하셨습니다. 또한,『그 길은 좁고 그 문도 작아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마7:14)』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 믿는 형제의 참된 동반자가 되려면, 많은 아픔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예수를 믿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정성스러운 마음이 아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어느 순교자 이야기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했던 이 순교자는 최후까지 ‘종교를 버린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회유를 받았습니다. 집행관은 이 사람에게 “생각해봐라! 인생은 즐겁고 죽음은 너무 고통스럽지 않는가”하면서 신앙을 포기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순교자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올 죽음은 더욱 쓰라리고 괴로울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인생은 더욱 즐거울 것입니다. 현재의 고통을 장차 나타날 영광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장차 누릴 천국에서의 즐거운 생활을 생각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와의 동행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간 결과, 위대한 성군 다윗의 증조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괴롭고 고달픈 일일지라도,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계속할 경우, 우리 후손 중에서 위대한 인물이 배출되리라 믿습니다.

2.주님의 희생을 본받아서 기쁨으로 이웃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창5:24에『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다른 번역에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을 『일생 동안 하나님 뜻을 따라, 그분과 함께 살다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주와 동행한다는 말은 ‘주의 뜻에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①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자랑과 명예를 얻기 위해 주의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진정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 몸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도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동지가 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②그런고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과 이웃을 섬겨 살아야 합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주님을 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 마음을 다 꿰뚫어보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지, 주님은 다 아십니다.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위해서 하는 일인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인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심(邪心)을 버리고 주님과 동행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의 길은 거칠고 험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잠깐동안의 세상 즐거움과 명예 때문에 주님과의 동행을 포기해선 안 될 것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내 입장과 내 주장보다는 상대방 형편이나 생각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갈 때에
③우리는 그토록 사모하는 천국에 더욱 가까이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혼자 갈 수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려면, 고통 당하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짐을 나눠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 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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