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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받은 자의 도리를 다하라 (룻 03:1-5,4:13-17, 히 09:24-28, 막 12:38-44)

첨부 1


미국에서는 지금 고부간의 싸움이 한창 입니다. 고어와 부시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고부간의 갈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유증은 아주 심각합니다. 전체 득표수는 고어가 더 많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부시가 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시가 당선된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플로리다주 재개표 결과에 따라 당락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옛날엔 패자가 승자에게 축전을 보내고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한 분이 먼저 깨끗이 패배를 시인하고 상대편의 손을 들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보다 양보한 사람이 더 국민들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두 분은 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누구든지 먼저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먼저 양보의 미덕을 보여준다면, 다음 번 대통령은 거의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 이 아닌가 봅니다. 두 분은 우리네보다 훨씬 더 고귀한 인격과 성품을 지녔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도, 그리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 그야말로 십자가 지듯이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더욱 아름답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처럼 아름답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큰복을 베풀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룻기 본문은 더욱 진한 감동과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정든 고향 땅과 부모형제를 버려두고 시어머니를 따라온 며느리 룻을, 나오미는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가 봅니다. 나오미는 룻의 신랑감을 사방팔방으로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만큼, 나오미는 며느리 룻이 예쁘고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자기 고향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되신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며느리 룻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 기도원을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뭐든지 심거나 뿌리지 않고 거둘 수는 없다는 것과, 열심히 가꾸지 않고 많이 거둘 수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저의 가슴을 강하게 때렸습니다.
성실한 농부는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가꿉니다. 그래서, 가을에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실한 성도는 젊었을 때에 희생과 봉사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합니다. 그렇게 살 때, 노년에 가서 거둘 것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젊어 힘이 넘칠 때, 그 남는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지런히 뿌려야, 노년에는 그 열매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살아야, 죽어 저 세상에 갔을 때에 거둘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무엇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징벌이 있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냥 우연히 룻을 만나서 효도를 받게 된 게 아닙니다. 그가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룻처럼 훌륭한 며느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룻 또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게 되었고, 그 결과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심은 대로 거두었던 것입니다.
희생과 헌신에는 뒷말이 없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뒷말이 있으면, 그것은 마치 열심히 뿌려놓은 씨를 흩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를 뿌렸으면 가을이 되기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겸손한 자세로 자기 행위를 감추게 될 때, 그 희생과 헌신은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영생을 얻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될 때에 하늘의 복을 누리리라 믿고,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복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리라(9:28)』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구원의 복을 받기 위해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예수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어떤 예수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입니까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셔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그 예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를 거두는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또한 주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려야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의 기본적인 생활은 희생과 헌신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나오미처럼 아랫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잘 이해하면서 보살펴줘야 합니다. 그리고, 룻처럼 윗사람의 말에 순종하고 이웃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믿는 자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천국에 들어가 심판을 받는다면, 상급과 징벌 중 어떤 결과가 주어지겠습니까 만일 상급을 받는다면, 과연 어떤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9:27)』고 했습니다. 교회만 그럭저럭 다니다 보면 천국에 들어가리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심은 대로 거두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믿는 자의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그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십자가를 피하거나 외면한다면, 하늘에서 상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서운 책망과 함께 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위협이나 공갈이 아닙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젊었을 때에 헌신과 희생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은, 늙었을 때에 존경과 섬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산 사람들은, 그 말년이 아주 비참하다는 것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아 알고 있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안위와 우환질고를 면하기 위해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일이 기 때문에, 그분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무를 소홀히 한 채 십자가 지는 일을 자꾸 외면할 경우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1.믿는 자의 도리를 다하고 있습니까

전쟁에 나갔던 한 병사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지뢰가 터지면서 두 눈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의사가 수술하면서 말해주었습니다. “수술은 하겠지만, 눈을 크게 다쳤으므로 당신은 장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병사는 ‘장님이 된다면 살아서 뭐하겠느냐’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달래면서, 의사는 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붕대를 풀게 되었을 때에, 의사는 그 병사에게 말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분명히 장님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누군가가 안구 하나를 제공해 주어서 한쪽 눈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병사는 ‘애꾸눈으로 살아서 뭣하나’고 하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때, 의사가 큰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봐요, 당신을 위해서 멀쩡한 사람이 애꾸눈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하면서 붕대를 풀었습니다. 병사가 눈을 뜨고 보니, 앞에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눈 하나가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눈 하나를 빼주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청년은 그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하건만, 우리는 불만 불평이 많습니다. 그 죗값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기는커녕,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 명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려고 이런저런 말씀을 들려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깊은 관심과 사랑을 외면하면서, 우리 고집대로 살게끔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앙탈 부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 고집대로 산다면, 그 길은 실패하고 멸망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고집을 깨우쳐주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원받은 자의 길로 가려 하지 아니하고 세상 길로만 자꾸 빠져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죄와 싸워 이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현재 안락하게 사는 것을 선호합니다. 어려운 이웃과 고통을 나눠지는 것이 믿음의 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십자가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나오미와 룻의 교훈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가꿔야 가을에 거두게 된다’는, 그 뻔한 이치를 우습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노년에 고통 당하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2.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살아감으로써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오미와 룻처럼 우리도 서로 상대방의 상처를 싸매 줘야 합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의 입장과 형편을 헤아려, 그를 위해 남편감을 구하려고 애썼듯이, 오늘 우리도 서로의 입장과 형편을 헤아려야 합니다. 목사는 교인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고자 힘쓰고, 교인들은 목사가 겪고 있는 아픔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①주님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삽시다.
그런데, 이기심이 이 길을 방해합니다. 이 악한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예수 믿는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목숨을 내놓고 이런 죄와 싸우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내 것과 내 몸을 아끼면서 예수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내 것은 모두 주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때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②이런 믿음생활에 전력투구할 때, 우리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오미와 룻처럼 살면,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요컨대, 나보다는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을 먼저 헤아려 살게 될 때,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③그리고, 그렇게 산 사람에게는 그 행한 대로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과 생명과 권위를 지키려다가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손들에게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 정신에 따라 실천하게 된다면, 자신의 생명과 권위도 지킬 수 있고, 자손들과 이웃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는 사람답게 구원받은 자의 도리를 다함으로써 참으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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