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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 13장의 예수 (시 15:1-5 요 13:1-11)

첨부 1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예수께서 느닷없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어떻게 제자의 발을 스승으로 하여금 씻어 주도록 방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버티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예수께서 제자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제자들과의 강한 연대, 결속을다지는 뜻이 있었다. 제자들을 남겨 둔채 죽음의 길로 떠나는 스승의 깊은뜻이었다. 스승과 제자와의 끈끈한 관계를 다지는 길은 발을 씻어 주는 일이었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이 이야기를 좀 더 높은 차원으로 해석하였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하늘 나라에서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이제와 하늘 나라(현재와 영원)에서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게된다는 것이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철저한 결속의 의미를지닌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살고 내가 그사람 안에 살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할 수 없다(요한 15:5)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스승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인간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섬김이라는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경쟁관계 속에서는 나는 살고 너는 죽어야 한다는 논리만 있다. 그러나 섬김의 관계 속에서는 나는 죽고 너는 살아야 한다는 논리가 있을 뿐이다.

현대인의 결함이 무엇일까 극단적인 이기주의이다. 섬김이 아니라 서로가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탐하고 추구한다. 유물론자들(T. Hobbes)은 사람은 사람에 대해 이리라고 했다. 자본주의자들은 그 엄청난 업적에도불구하고 사람은 사람에 대해 장사꾼(A. Smith)이라 했다. 모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공격하고 빼앗으려 한다.

지난 주간 경남 마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어린 아이가 사나운 개에물려 죽은 사건이 있었다. 아직 국민학교에 취학하기도 전에 순진난만한어린 아이가 세퍼트에게 물려 죽은 것이다. 참으로 참담하고 가슴 아픈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고 분노케 하는것은 그와 같은 참상의 현장에 10여명의 장정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런 처절한 현장을 목격하고도 그 사나운 개의 아가리에서 어린 아이를건져 주려고 뛰어들지 않았다. 사나운 개에게 자신이 물려 찡길까 두려워서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실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통탄해 맞이하지 않을수 없는 비정한 현실이다.

(2)
예수께서 몹시 번민하시며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 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장담하자 예수께서는 잘 들어 두어라. 새벽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번이나모른다고 할 것이다
제자들의 배신을 예고했다. 가롯 유다의 배신은 돈 때문이었다. 베드로의 배신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돈의 유혹, 죽음의 위협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신앙을 버리기 쉽다. 특히 돈에 대한 유혹은 악마와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때 악마는 이미 가롯 유다의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 넣었다

19세기의 영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제왕이었다. 이같은 현상은 제2차세계대전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때의 영국의 정신적 상황에 대해 토마스카라일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영국인이 손대는 곳은 모두가 황금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께 버림받는 증거이다

19세기, 20세기 전반의 영국은 유물론이 발흥,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엄청난 부의 축적을 성취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자랑하던 성서는 물질의 기세에 눌려 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영국의 태양은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하였다. 과연 역사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지배자도 없다는사실을 증언하였다. 섹스피어전집은 영국인이 저술하였고 영국인은 성서가만들어 냈다던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로 전락해 버렸다.

베드로는 그 놀라운 신앙에도 불구하고 세번씩이나 예수의 제자임을부인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공포는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그르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러므로 가나안 정복의 대명을 받은 여호수아는 모세로 부터 강하고 담대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인간의 역사는 승리와 좌절의 점철이다. 승리의 역사는 창조적 소수에의해 성취된다. 가나안 정복은 열 사람의 비겁한 정탐꾼에 의해서가 아니라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창조적 소수에 의해 완성되었다. 모든 창조적 소수는 용기와 신앙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이란 용기(The Courage to be-P.틸리히)라고 말한다.

기드온의 미디안 전쟁은 수만명의 군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300명의 소수에 의해 미디안의 12만5천명을 격멸한 전쟁이었다. 다윗과 블레셋의 전쟁도 강력한 신앙과 용기의 다윗에 의해 결판이 났다. 하느님은 두려워하는사람을 택하지 않고 용기있는 사람을 택하신다.

(3)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영광을 받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의 길로 가게 되었다. 인간 최악의 고난의 길이다. 그는이 고난의 잔을 피하려고 처절한 정도의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죽음은고통이다. 슬픔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비겁해지기도하고 굴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의 고난을 자신의 영광이요 하느님의 영광으로받아들였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고난은 불행이다. 그러나 성서적 의미에서

고난은 인간의 영광이다. 고난이 아픔이기는 하지만, 슬픔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영광이기도 하다는 것이 예수의 견해이다.

호주의 작가 패트릭 화잇트(P.White)는 1973년 노벧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작가수업을 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했다. 열심히 저작활동을하였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나머지 호주에 돌아와나무꾼이 되었다. 삼림의 계곡 속에서도 그는 계속 소설을 썼다. 그래서발표한 작품이 행복한 계곡과 인간의 나무이다. 마침내 세상의 빛이그에게 이르렀다.

계곡에서 나무를 자르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작가지망생으로서창피한 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행복한 계곡으로 여겼다.
그는 그 작품에서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분량만큼 진보한다고 말했다. 고난을 통해 그는 자신의 진보를 성취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나무에서 계속 말하였다.
인간은 진정으로 겸손하게 될 때에, 자신이 하느님이 아님을 깨달은때에 그는 가장 하느님께 가깝다. 종국에는 하느님의 자리에 올라갈 수도있다.
예수는 제자의 배신으로 종교모리배들과 정상배들에 의해 십자가에서죽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고난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최상의 영광을얻게 된다고 믿었다. 그는 이 고난을 단순히 제자들의 배신의 결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 사건 속에서 하느님의 경륜을 찾았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은 하느님의 영광이 되리라고 믿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분은 원래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그분을 최고로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주셔서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꿇게 하시고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여 하느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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