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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결한 마음 (요일 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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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은 본래 하나님의 성결을 반영하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그 실과가 결실했으며, 푸른 잎은 만국으로 소성케 하였습니다. 에덴에서 발원하는 4대 강인 『비손』『기혼』『힛데겔』『유브라데』의 청명함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담의 맑은 마음의 상징인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악마의 유혹에 못이겨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범죄 하였는데 이것이 최초로 인간에게 들어온 죄악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原罪(원죄)』라고 부릅니다.
원죄, 즉 죄의 뿌리는 인간의 심령의 깊은 곳에 터전을 잡게 되었고, 이후로 인간은 더 많은 죄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함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5:19에서도 주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과 거짓과 훼방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은 원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죄악으로 부패되고, 불의와 음란과 파쟁으로 윤리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금년도 저물어 가는 마지막 주일을 당하여 개인과 사회의 정화문제는 긴급,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일년간을 반성하여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범죄하게 하는 깊은 심적 작용의 하나는 욕심(에피두미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욕심은 모든 죄의 좋은 온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신문에 기재되는 비참한 사실들-사기, 절도, 강도, 강간, 살인, 집단폭행등-모든 사건들이 욕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라 홀테이느 씨는 『욕심은 연령과 같이 많아진다』고 말하였습니다. 중국의 楊朱(양주)같은 자는 『전세계의 유익이 되는 일이라도 자기 털 하나가 뽑힌다면 못한다』는 욕심이 아주 많은 욕심가였습니다.
국가적으로 볼 때에도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욕망은 한국을 합병하고, 만주를 삼키고, 중국을 침략하고, 남양군도를 점령하여 동아시아를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철퇴는 저희 위에 떨어져 처참한 패배를 당했던 것입니다.
현재 소련 제국주의가 하나님도 모르고 물질의 탐욕만이 불타서 위성국을 거느리고 온 세계의 적화를 꿈꾸고 있으나, 얼마 못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철퇴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욕심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를 결국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무서운 心的(심적) 大敵(대적)임을 인식하여야 하겠습니다.
참 종교는 이 心中(심중)의 적인 욕심을 죽이는데 중대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세에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욕망의 불을 붙여 크게 분쟁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종교계에까지 敎權(교권)및 교회당의 쟁탈전이 있었으니, 이것은 하나님 앞에 통회하지 아니하면 안될 문제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사관에서 쫓겨나, 구유에 누우신 정신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일상생활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풍파도 모두가 자기 욕심을 죽이지 못한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의 문제, 姑婦(고부)간의 갈등, 자식문제, 부모공양문제등 대부분이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또 하나 근본적인 죄로 교만을 들 수 있습니다.
죄의 최초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궁극적으로는 『죄를 짓도록 만드는 사단은 어떻게 하여 생겼느냐?』하는 문제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영물로서 천사의 타락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28:13-19를 보십시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 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되게 하였도다.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천사 『루시퍼』는 화광석 사이에 거하며 眞善(진선), 眞美(진미)한 존재였으나 저가 교만해진 결과로 하나님께 축출당하여 악령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은 죄의 근원이라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자기를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있다. 그러나 참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위대하심을 깨달아 더욱 겸손해 진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교만은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이어서 차라리 은혜 받지 못하고 겸허한 자만도 못합니다. 신앙의 교만에서 바리새 교인이 나왔고, 자칭 『감람나무』(전도관의 교주인 박태선)도 나왔으며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교만은 각각 타인을 자기보다 낫게 여길 수 없으며, 사회단체의 일원으로 화목을 이루어 봉사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따로 자기 중심의 그룹을 조성하여 자기 만족, 자기 유익만을 꾀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나탄난 黨爭(당쟁)은 이 자기 교만의 표현의 한 예였습니다. 東人(동인)과 西人(서인)으로 대립되고, 동인은 다시 南人(남인)과 北人(북인)으로 갈라지고, 다시 북인은大北(대북)과 小北(소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다시 대북은 肉北(육북)과 中北(중북)과 骨北(골북)으로, 소북은 淸小北(청소북)과 渴小北(갈소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최고인 것처럼 여기며, 자기 능력을 실제 이상의 것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믿고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머리와 내주먹을 믿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하며, 예수를 믿지 못합니까? 신앙이 잘 들어가지 않는 분의 심령을 냉정히 고찰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보다 자기가 더 위대하며 성경보다 자기 이성이 더 진리라고 암암리에 인정하는 교만이 그 마음 속에 잠재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떠한 큰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하나는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는 멸망을 면치못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욥기 39:26-26을 보면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우리는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혹 마음에 아직도 자기 자신이 죽지 아니하여 교만함으로 자기를 내세우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면 교만한 마음을 소멸시키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죄를 일으키는 욕심과 교만을 버리고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을 정결케 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유일의 지침이 되는 성경은 두 가지의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세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세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 예를 들어 회개와 그리스도의 보혈의 관계를 파악하기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어떤 불효자식을 둔 어머니가 상심한 나머지 병상에 누웠는데 하루는 다락에서 조그마한 널판을 가져오라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시켰습니다. 아들은 마지못해 그 널판을 가져와 보니 거기에는 많은 못이 박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못은 네가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마다 네가 모르게 내가 박아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던 불효자식은 그 못들을 보고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치 널빤지가 아닌 자기 어머니의 가슴 속에 못을 박았기에 어머니가 병들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때부터 새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효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전심전력으로 공양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였으며, 자식의 효를 생각하며 널빤지의 못도 하나씩 뽑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니 널빤지의 못은 다 뽑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회개한 아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못자국이었습니다. 못은 다 뽑혔지만 널빤지는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간판을 쓰는 집에 가서 페인트로 널판에 칠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간판 집에 가서 널판을 하얀색 페인트로 칠하고 그 위에 아름다운 꽃까지 그렸습니다. 아들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어머니의 건강도 회복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죄는 회개와 보다 더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가 당해야 할 형벌을 대신 당하신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와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여 지고, 심령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며 감리교회를 일으킨 요한 웨슬레는 진젠돌프 백작의 모라비안 파의 경건한 신앙운동에 깊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진젠돌프 백작은 스텐바크의 그리스도의 성상(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그림)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 화가 스텐바크가 아름다운 집시 처녀 뻬삐다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스승인 유고의 부탁을 받아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의 성상을 별로 생각 없이 돈을 벌기 위하여 그렸던 것입니다. 뻬삐다는 완성되어 가는 그리스도의 성상을 보고『저기 저 사람은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십자가에 달려서 비참하게 죽어 가고 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화가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때 뻬삐다는 『그러면 스텐바크 선생님 때문에 죄없는 저분은 자기의 목숨을 바친 것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스텐바크는 바로 이 질문에 온몸이 굳어질 듯한 마음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예배를 드리고,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미완성된 그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위해 죽으시는 주님을 올려다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 감격으로 그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수많은 영혼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고, 진젠돌프 백작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헌신하게 했다고 합니다.

핵무기와 유도탄의 출현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정결함을 받는 자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죽는 순간은 오히려 저 영원한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축복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28에 보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3:10에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약 2000년 전에 화약도 나오기 전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베드로가 기록한 것입니다. 이 땅의 최후의 심판은 불의 심판입니다.
마태복음 24:29에서 주님은 『그 날 환난 후에 해가 즉시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지금 인공위성이 돌고 또 떨어지며,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핵폭발과 같은 불로 이 땅을 청소한 후 살아남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성경은 어떻게 언급했습니까? 우리는 죽는 것보다 이 땅에 살아남아 우리 겨레가 잘 살 수 있는 길을 닦는다면 그 이상 귀한 일이 또 없을 것입니다. 이 살아남는 길도 오로지 정결한 마음을 갖는 데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깨끗한 편이고, 하나님은 깨끗한 마음에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6:11-13을 보십시오.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거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인공위성을 먼저 만든 나라가 이 땅에 남는다고 말하지 아니했으며, 핵무기가 많은 나라가 생존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의 후손이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될 것입니다.
금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회개하고 주의 보혈로 죄를 씻어 깨끗한 마음을 가짐으로 우리 겨레가 이 땅에서 잘 살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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