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삶을 풍성하게 하는것 (요 10:7-15)

첨부 1


우리말 '생명'이 헬라어로는 푸쉬케 비오스 죠에라는 세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푸쉬케는 사람의 육체적인 생명, 즉 목숨에 해당된다 하겠는데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작용하는 육체의 기능을 가리킨다. 비오스는 육체적인 삶을 위하여 일을 하며 활동을 하는 역할을 말한다. 끝으로 죠에는 영생과 관련된 것으로 육체적 삶을 초월하여 서로 사랑하며 사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좋은 관계성을 의미한다. 사람은 이와 같은 생명의 세가지 차원을 치우침이 없이 동시에 조화를 이루며 살아나갈때 건강한 삶,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

어느 한가지에 편협되게 편중되는 삶을 추구하는데서 사람은 비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며 균형을 잃은 삶을 살게된다.

먼저 푸쉬케적인 삶이란 육체적인 삶을 말한다. 이러한 삶에만 치중할때 에 사람에게 오는 결과는 탐욕의 삶이다. 지나친 가난은 인간의 삶의 질을 떨뜨리고 불행을 가져오는 동기가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육체적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하는데서 한도 끝도 없는 탐욕의 삶은 시작된다.

하겠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는 결국 사망(야고보서 1:15) 을 가져온다고 했다.

탐욕의 삶을 인간의 육체에 비만을 가져옴으로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리고 내적인 자아에게는 정욕을 불러일으켜 도덕성을 상실하게 함으로 인륜을 파괴시킨다.

 둘째는 비오스적인 삶이란 성취욕으로 사는삶이라 하겠다.

이러한 삶에만 집착할때 오는 결과는 허탈과 상실감이다. 성취감이라고 하는 인간의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잊고 때로는 자기자신마저 잊은 채 살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오는 공통적인 결과는 허탈감과 상실감뿐이다. 전도서의 말씀이 이러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탄식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도서 2:10-11)

끝으로 죠에적인 삶을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삶인데 그 결과는 바로 풍성한 삶이다. 성경에서 영생 혹은 생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이 바로 죠에다, 요한복음 10: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 예수가 말씀하셨을 때 생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앞의 두가지 생명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의 추구라면 조에적 삶이란 관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라 할 수 있겠다.

하나님과의 관계성, 이웃과의 관계성을 바로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이다.

 이간이 관계를 상실한다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결과는 가져온다.

미국 샌프란스코 근교에 세계적인 거부들이 사는 동네가 있다.

그들은 평생동안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한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동네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의 자살 이유는 바로 [고독] 이라고 한다. 나이들어 자식들은 모두 품을 떠났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지속시킬만한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독을 감내할 길이 없어서 끝내는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고독이라는 것이 죠에적 삶을 경시한 채 살아온 삶의 결과인 것이다.누군가를 사랑하고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겪는 인생의 고통이 다름아닌 고독이라 하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사는 죠에적 삶을 살게 될때 [내가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달렸으니 이제 후로는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한 바울의 삶과 같이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