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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아버지 집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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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는 자기의 있을 곳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있을 곳은 바로 이 육체입니다. 육체가 병들고 무너지 면 우리의 삶은 처소를 잃어버리고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있을 곳은 육신이 거할 집입니다. 그것이 개인 소유든 전세집이 든 삭월세집이든 월세집이든 몸둘 곳이 있어야 됩니다. 집이 있어야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처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사회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사회내에서의 있을 곳이 우리는 필요합니다.

즉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또 인간대 인간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우 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은 이와같이 있을 곳을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있을 곳을 지 키기 위한 몸부림과 있을 곳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러한 속에 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인간의 이 모든 노력을 순식 간에 다 가져가 버리고 맙니다.

인간이 그 누구나 당해야만 할 죽음은 지상에서 인간의 있을 곳을 영원히 빼앗가 가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죽음 저 건너편에 있을 곳은 어떤 곳일까요 죽음이 인간에게 최대 의 공포가 되는 것은 죽음을 통하여 지상에 가지고 있는 일체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이 문제에 관해서 명쾌하게 해답을 주셨습니다.

 1. 네 아버지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믿 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일 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확실한 장소개념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죽으면 구름같이 영혼이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우리가 있을 집이 있는 것처럼 아버지께서 예비한 환경적인 그런 장소 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께서도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1절로 4절에는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 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라고기록되 어 있습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대개 동의하기를 바울 선생이 셋째 하늘에 올라간 것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원수들에게 잡혀서 돌로 얻어맞아 죽은 것 이 확인되매 그들이 바울의 시체를 끌어다가 거름더미에 던졌버렸스빈다.

시외각지 거름더미에 바울을 던져 놓았는데 바울의 제자들이 함께 서서 기 도할 때 바울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왔지 않 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선생께서는 그가 간 곳이 분명한 처소인 셋째 하늘이라고 말했습니다.

 첫째 하늘은 대기층을 말합니다. 둘째,하늘은 우주 공간을 말합니다. 그럼 셋째 하늘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영원한 천국을 의미하 고 있습니다. 바울 선생은 체험한 첫째 하늘인 대기층과 우주 공간인 둘째 하늘을 지나서 셋째 하늘인 영원 무궁한 우리 아버지의 처소에 들어가서 낙 원에서 그는 도저히 사람의 말로써는 표현이 안되는 그런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왔다가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천국에 올라갔을 때 몸으로 올라갔는지 몸밖에 나가서 영혼이 올라갔 는지 도무지 구분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몸으로 갔는지 영으로 갔는지 하나 님만 아시지 자기는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통해서 바울 선생은 이 세상에 우리가 오감각을 통해서 체험하고 보고 아는 이 세상과 천국에 올라가서 그가 체험한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빈 다.

 또한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요 한계시록 4장1절로 11절은 사도요한은 천국체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벽옥 같고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 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요한계시록4:3)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홍보석이란 것은 바로 보혈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벽옥이란 것은 푸른 것을 살리는 생명을 의미하기도 합니 다.

 그는 또한 보좌를 굴러싼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무지개는 언약을 말합니 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무지개로써 다시 이 땅을 홍수로 멸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신 것처럼 아버지 보좌 주위에 녹보석의 그런 무지개가 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망을 폐하시고 이제 하늘나라에 들 어온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이십사 보좌가 있고 거기에 이십사 장로가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의 대표와 신약의 열두 사도 24장로가 오늘 구원받은 온 인류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금면류관을 쓰고 흰옷을 입고 아버지 보좌 주위에 앉아 있었습니 다. 그리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있는데 이것은 온 세상에 보내는 하나 님의 성령을 상징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보좌 앞과 가운데와 주위에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그 가운데 주위에는 네 생물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 님의 보좌를 지키는 천사인 것입니다.

 이 네 생물은 그 얼굴이 하나는 사자같고 하나는 송아지같고 하나는 사람 같고 하나는 독수리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좌주위에서 이제 천국의 예배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 보좌가 중심이고 그리고 하늘나라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으로 모두 삶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8절로 11절에는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 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 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 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 이집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 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 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앗나 이다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늘나라는 분명한 장소가 있습니다. 이 대기권과 저 우주공간으 리 지나 셋째 하늘에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님은 그곳에서 우리에게 오셨고 또 그곳에 갈 길을 주님께서 에배하신 것입 니다.

 2. 천국 낙원의 모습

고린도후서 12장 14절에 사도바울은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 습니다. 그는 인간의 언어로써는 도저히 하늘나라에 있는 낙원의 그 영광스 러움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가 없어서 단지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 이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3절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마음속에 이 세상에 사는 것보 다는 떠나서 낙원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다고 그 렇게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요한이 본 천국의 낙원은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2절에 분명히 나타 나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 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 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 장한 것 같더라

저는 결혼 주례를 할 때마다 웨딩드레스 입고 아버지 손에 인도되어 들어 오는 신부를 제가 가만히 바라봅니다. 항상 신부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 을 합니다. 그 머리며 모습을 일생에 가장 아름답게 단장을 했기 때문에 얼 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요한은 우리가 가서 살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신부 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 그 이상으로 표현하고 있 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성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21장 11절로 22장 3절에 잘 기록되 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성안에 거하십니다. 부활해서 그리스도의 신부로 올 라간 모든 성도들이 그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통해서 광명이 되어 나오기 때문에 해와 달과 별 이 필요가 없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밤낮 영광 속에 밝아서 밤이 없습니다. 낮만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까 하나님 아 버지가 계시니 그 보좌에 예수님이 계신 그 보좌로부터 물이 사통팔방 모든 금길 가운데로 물이 넘실 넘실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에 이 물의 이 름은 생명강입니다.

 그 좌우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있는데 거기에 열두달 매달마다 과실 이 맺힙니다. 그래서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와서 마음대로 그 과실을 따먹 고 즐기고 그렇게 하기 위한것입니다. 저주란 그곳에 있지를 않습니다. 하 나님께서는 천국의 모습을 뚜렷하게 우리에게 계시해 주셔서 천국은 막연한 꿈같은 처소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우리 현실처럼 감각적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냄새맡을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손으로 체험할 수 있고 그곳 에서 우리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천국 낙원의 생활

누가 낙원에 들어가서 살고 있습니까 구약시대 성도들이 그곳에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죽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래층 음부에서로 불꽃 가운데 고생하면서 영원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으며 하나님 을 믿고 구약시대에 짐승의 피로써 언약을 맺은 이러한 사람들은 아브라함 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성도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누가복음 9장 28절로 30절에는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 시고 기도하시러 산이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 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 야라 누가복음 9:28-30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서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 그 모습이 달라지고 옷 이 빨래한 흰옷같이 희어졌는데 그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니까 1500여년 전에 느보산에서 죽은 모세와 근 600년에서 1000년전에 물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뚜렷이 살아서 그곳에 와서 주님 앞에 주님이 예루살렘 성에 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 1500여년 전에 이미 죽은 모세와 6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간 엘리야가 잠을 자고 있었느냐 아닙니다. 그들은 뚜렷이 살아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와서 예수님께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지 금 이 땅에서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리면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직행으로 천국 낙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집 곧 손으로 지은 것 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8절 로 9절에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바울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이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몸을 떠나서 무덤 속에 잠잔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몸을 떠나서 주와 함께 있을 것이 더 좋다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 다. 그래서 천국에는 예수님을 믿다가 죽어서 육신의 장막집을 버리고 올라 간 사람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부활한 성도들이 그곳에 다 모이는 것입니다. 데살로니전 서 4장 15절로 18절에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서 못하 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에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우리는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것 은 우리의 현실의 죽음은 잠시동안 헤어지는 것이고 며칠후 우리는 다같이 천국 낙원에서 만나든지 부활해서 공중에서 만나든지 만나게 되는 것입니 다. 낙원의 생활은 우리가 전부 부활의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모습이란 이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병든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늙은 몸이 젊은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곳에 사는 그 모습은 어떤 것이냐, 요한계시 록 21장 4절로 7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 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 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오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니 내 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는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할렐루야! 그래서 그곳에는 다시 눈물이 없습니다. 울 필요가 없습니다.

아픈 것이 없고 곡하는 것이 없고 죽는 것이 없고 배고픈 것이 없고 생명수 샘물로 날로 더 생명이 넘치고 하나님이 친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아버지 의 친아들이 되어서 아버지와 매일 같이 살고 매일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 고 매일 아버지와 함께 사니 이야말로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충 천하는 그러한 곳에서 우리가 실제적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낙원의 인간관계를 보면,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죽고난 다음이니까 부모 형제 다 알아 보겠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 경에 보면 음부에 내려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사로 를 이 세상에 보내어서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그들에게 전달해서 이곳에 오지 않게 좀 해주십시오. 죽은 사람도 세상에 있는 자가 형제를 기억하고 자기 형제는 음부에 오지 않도록 건져달라고 호소한 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낙원에 들어가서 어떻게 부모 형제를 몰라보겠습니까. 그러므로 낙 원에 올라가서라도 여러분 부모형제의 그 정은 그대로 계속되는 것입니다.

내 부모요, 내 형제요, 그 가정은 그대로 계속하는 것입니다.

 오직 천국에서 사라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상의 부부의 인연은 사라 집니다. 부부의 관계라는 것은 이땅에서 살동안만 존속하는 것입니다. 이렇 기 때문에 성경에 하나님께서 남녀를 만드시고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가 살아있을 동안에 서로 같이 있지, 마음은 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육체가 사라지면 그 속사람은 완전히 육체와 생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예비한 그 낙원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아갈 후보자로서 이 땅을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낙원에 들 어가는 길이 되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와 서 어디로 가는 줄을 모르고 이땅에서 이전투구를 하면서 지위,명예,권세, 부귀,영화,공명만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떨어진 낙엽같이 심판의 바 람에 휘말려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입어서 예수 님을 믿고 천국들어갈 후보생이 되어서 매일매일 그 나라를 향해서 나갈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그러므로 여러분 이땅에서 봇짐을 싸고 외국으로 이민가듯이 우리들은 죽음이 다가올 때 이 삶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주님께 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영원한 우리 아버지의 집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마음에 불안을 가지지 마십시오. 우리 에겐 영원히 있을 곳이 있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그곳을 바라보며 수를 위하여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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