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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마리아 通行(통행) (요 0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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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He had to pass through Samaria』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의지적으로 사마리아로 가시고자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지역에서 북부 갈릴리지역으로 여행할 때 최단 거리인 사마리아로 통과하지 않고, 상당히 우회하여 뵈뢰아를 통하여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보면 부산에서 서울을 가는데 충청도를 통과하면 빠른데 어떤 이유로 충청도를 통과하기가 껄끄러워 저 강원도로 돌아서 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함락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아있던 사람들이 그 이후에 쳐들어온 애굽등 다른 민족들과 잡혼을 하게 되어 그만 피가 섞인 혼혈민족이 되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혼혈족이 되어버린 그들을 멸시하며 천대하게 되었으며, 상종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야곱의 우물에 물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은 의외의 의복차림과 용어 등으로 보아서 유대인 남자가 틀림없는 분으로부터 자기의 인격을 인정해 주고 상담자로서의 대우를 받는 현실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인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하는 警意(경의)의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로의 통행!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보좌를 떠난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오신 道成人身(도성인신, Incarnation)의 근본 의도의 발로입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사명은 어디까지나 죄악세상에 있는 죄인을 구원하고 聖化(성화)하고, 이 땅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이 있는 이 세상에 오셨고, 죄인이 있는 사마리아로 통행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바다로 가야하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것이로되, 죄인을 구원하려고 죄악의 도굴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Secular;Secularization』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世俗化(세속화)』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세속화』라는 말은 일찍이 19세기부터 歐美(구미) 각국에서 논의되어 온 말입니다.
이 말의 내용은, 기독교가 세상에 들어가 세속화되어 변질을 가져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기독교가 사회화되고 기독교가 생활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기독교 세속화를 거룩한 교회와 사회가 그 독자성과 자유성을 견지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高次的(고차적)으로 통일되는 것이다』라고 해석을 내렸습니다.
야곱의 우물가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사람과 음란한 사람의 대립입니다. 예수께서는 본회퍼의 해석과 같이 사마리아 여인을 거룩한 데로 끌어올려 고차적으로 통일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회를 정화하고 거룩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죄와 싸워서 승리하고 죄인을 구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골방에서 떨고만 있는 영약한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였지만, 예수께서 영으로 같이 하신 후에는 로마의 우상과 음란과 잔인함을 뚫고 들어가 죄인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고 지상천국화를 위하여 선한 싸움을 잘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죄악의 도성이요, 죄악의 大魚群(대어군)을 보유하고 있는 바다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눈을 들어 강을 보라 물고기떼 밀려온다
곳곳마다 어부들이 그물 널리 던졌구나
밤새도록 애썼건만 한 마리도 못 잡았네
떠밀리는 물고기떼 주의 종아 어이할꼬』

이 사회에서 강도와 살인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제 새벽 서울에서 자매를 찔러 언니를 절명케 하고 현금 2만원과 70만원이 든 예금통장을 강탈하여 도주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도회지마다 토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쏘냐와 같이 가정의 빈곤 때문에, 또는 그 본성이 나태하고 음탕한 까닭에 轉落(전락)의 구렁텅이에 빠져 어두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현저하게 나타나지는 아니하지만 생명의 샘이 되시고 의의 빛이 되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그 마음에 불안과 죽음의 공포와 고민과 불행이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지만 참 생명과 행복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의문을 품고 대화하는 가운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되었고, 그 때 그녀의 뱃속에서는 샘이 생겨 영생하도록 솟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남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육체적인 남편의 개념이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모신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여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 여인의 삶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는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살았지만 이제는 영적인 만족을 위해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관심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 어디서 예배를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묻게 되었고, 뒤에 그녀는 물통을 던져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마을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누구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생명과 희망의 축복이 깃들이게 됩니다.
더욱 죄많은 이 온천장지대에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는 말씀처럼 은혜가 풍성하게 하여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야 하겠습니다. 한분 한분이 착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저 육체의 향락을 찾아 헤매는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믿도록 함으로써 귀하고도 놀라운 생명과 희망과 희열의 구원을 얻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놀라운 감격을 체험했고 곧 이어 마을로 달려가 자신이 본대로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이와같은 체험과 함께 세상을 향하여 달려나가는 감격과 뜨거운 사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의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죄많은 이 세상에 들어가는 역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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