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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의 빛 (요 0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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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4를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시대는 종말을 짓고, 보다 더 완전하고, 보다 더 진리를 구현하는 은혜시대가 도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대표인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집을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과 같음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38에 보면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셨다기 보다 온전케 하러 오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간디의 유명한 무저항주의도 이 성구로 말미암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속 깊은 뜻을 명확히 나타내고자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제, 결혼문제를 예로 들어 볼 때, 제자들은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아내를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모세가 그리함은 너희 마음이 완악함을 인함이라』고 답변하셨으니, 예수께서는 시대상에 따라 하나님의 진리를 납득시키기 위한 差度(차도)가 있음을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一夫一妻(일부일처)의 결혼생활을 당위하며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창세로 부터의 하나님의 의도가 율법시대에 있어서 어두운 심령들에게는 이혼증서를 주어 아내를 버림을 인정하는 정도로 늦춰 주었던 것입니다.
마치 영양가치가 있는 떡이 인체에게 유익이 되는 식물이나 소화기능이 약화된 위장병 환자에게는 도리어 해가 될 뿐이요, 미음이나 혹은 죽으로 적은 영양을 흡수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는 굳은 음식을 먹어도 잘 소화시켜 많은 역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를 거쳐 진행하는 은혜시대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중에 있는 깊은 뜻이 밝히 계시된 시대요, 하나님은 이 시대의 사람에게 고도의 자유와 정의를 찾아가기를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들어가서 상고해 볼 때 교만과 시기심이 가득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왔던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심명기 22:22절에 보면 『남자가 유부녀와 간통했을 때에는 여자와 남자를 다 죽여 이스라엘에서 악을 제하라』고 했으며, 그 방법은 신명기 22:24에 『둘 다 성문에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법은 이러하니 선생은 어떻게 이 여인을 처리함이 좋겠습니까?』 저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죽이라』하면 법은 이루게 되나, 예수께서 주장하시는 사랑은 땅에 떨어져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 것이요, 『죽이지 말라』하면 전술한 모세의 율법 즉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해결할 수 없는 기로에 서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이 되시는 주님께서는 이 기회를 잘 포착하여 예리하게 율법의 존엄성을 타인에게만 맞추었던 것을 그들 스스로에게 돌리고 스스로 죄인됨을 율법에 비춰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율법이 무너지느냐 아니면 사랑이 무너지느냐 하는 위기에서 그 놀라운 지혜로써 율법과 사랑, 모두를 승화시키고 온전케 하신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빛 되신 주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돌로 쳐라! 그러나 죄없는 자가 쳐라!』 이 주님의 선언에 둘러 서있던 사람들은 슬그머니 돌을 땅에 떨어뜨리고 하나 둘씩 꽁무니 빼듯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그 여인만이 남았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사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기자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곧 살인하는 자라』고 하였으니 증오심은 정신적인 면에서 더 심각한 영적 살인이 될 수 있으며, 기회가 닥치면 육적 살인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찌 형제의 눈의 티를 빼려 하느냐?』라는 양심적 반문이 여기 저들의 심령을 찔렀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죄인을 재차 범죄치 않는 선인으로 변화시키는데 말로써 할 수 없으므로 응징의 채찍을 내려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될 수 있는대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은혜시대의 복음적인 처리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형을 무기형으로 대치함을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벌써 실시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소년형에 있어서 같은 방향으로 지향하고 있음은 귀한 일이요, 신약성경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소련의 스탈린이 자기와 세력을 다투는 인사들을 사형으로 숙청해 버린 그 죄악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또 쌓게 하는 것이요, 소련 멸망의 원인을 조성하는 것이 됩니다.
기억에 새로운 헝가리의 전 수상 『나지』씨를 생명을 보증한다고 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사형에 처하고 만 그들의 과오는 국제상 비난의 여론을 크게 비약시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떠는 가련한 여인을 구출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죽는 자를 살리는 법이요, 죄인을 회개시켜 의인이 되게 하는 법입니다. 예수께서 땅바닥에 글씨를 쓰심은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쓴 죄명은 예수의 손으로 곧 지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여하한의 죄라도 빛이 되시는 주님 앞에 나오면 십자가의 못자국있는 손으로 다 도말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린 살인강도도 사유함을 받아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의 법입니다. 야고보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긍휼이야말로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사죄야말로 우리가 죄의 멸망에서 용서함을 받는 모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이 아무리 하여도 납득이 아니되는 것이며, 그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공로없이 구원받는 진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시험을 승리한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곧 사랑의 凱歌(개가)였던 것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게 포로가 된 한 사람이 링컨을 몹시 악평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링컨에게 욕을 퍼붓고 있던 그는 어느날 링컨 앞에 서야 하는 호출장을 받고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형을 받게 되는 줄만 알고 할 수 있는 한의 증오심을 발휘하여 링컨을 매도하고 저주하면서 갔습니다.
드디어 그는 링컨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아무 말없이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내주었습니다. 그 포로가 펴 보니 그것은 무죄석방의 특별사면장이었습니다. 그는 석방 후에 개심하여 북군에 편입하였고, 흑인노예의 해방을 위하여 싸웠으며 누구보다도 링컨에 충성하는 군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이와 같이 적의 힘을 나의 힘으로 만드는 신비로운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의 다윗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과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울왕은 삼천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살해하려고 광야 앞 하길라산 길가에 진을 쳤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안 다윗은 그날밤 부하 아비새와 같이 진영에 들어가 사울과 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모르고 자는 코앞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아비새는 창으로 일격에 사울을 땅에 꽂을 것을 제의하였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죽이지 말라』하고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감쪽같이 자기의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윗이 멀리 서서 아브넬을 불러 『너는 용사인데 왜 네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왕의 창과 물병은 어디 있느냐?』고 외치자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고 『내가 범죄하였으니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고 참회의 반가운 말을 하였고, 아름다운 화목을 이룩하였습니다.
외국을 침략하는 죄악을 범치 아니한 우리나라이지만, 내부 단결의 결점이 많아 하나님의 복을 받는데 많은 지장을 초래한 이 나라인 것을 반성하고, 세상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굳게 뭉쳐 이 은혜시대에 있어서 어느 나라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등 중동지역 국가들의 바람이 심한 이 시국에 우리는 상하좌우 사랑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재건완수에 전력을 다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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