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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있는 사람-욥 (욥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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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주일이다.
새해 첫 날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는데 둘째날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으로 계속되는 것을 감사 드린다. 이렇게 되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이신 여러분! 금년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새해 첫날을 시작하였는가

새해에는 우리 성도들이 자기 가정을 살펴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가정 생활인가를 살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할 줄 안다. 성도의 가정이 성도다운 가정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王國을 다스리는 것 보다 家庭을 다스리는 편이 더 어렵다.'

가정을 잘 다스려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이 일을 위하여 힘 써야 한다. 일본의 성경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아름다운 가정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가훈을 만들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2. 하나님 앞에서 상하귀천이 없다. 육에 있어서는 부부, 부자,군신이지만 영적으로는 모두가 다 형제 자매이다.

3. 거짓말은 어떤 경우에도 할 것이 아니다.

4. 폭언이나 음란하지 말라. 이것을 행하면 저주를 받는다.

5.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게으름은 죄악이다.6. 노력을 아끼지 말라. 무릇 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힘써서 행하라.

7. 약용외에는 술과 담배를 금하라.

8. 만가지의 청결을 지키라. 청결은 마음에만 할 것이 아니다.

9. 함부로 외박하지 말라. 집을 소홀히하는 자는 천하에 집없는 자가된다.
10. 매일 오후 7시는 기도의 시간이다. 온 가족이 이를 성수하라.

방주를 예비한 노아는 자녀들을 교양있게 가르치지 못하였다. 자녀들 앞에서 술에 취해 넘어진 것도 잘못이지만 아비의 허물을 들어내는 일을 그 아들들이 행한 것은 더욱 나쁜 것이다. 제사장 엘리는 자기의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일에 실패한 인물이다. 아나니아는 아내 삽비라와 함께 신앙관리상 허점을 가진 인물이었다. 자식교육도 문제고 부부간의 신앙관리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온 가족이 함께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데 우리는 신앙가정에서 가끔은 큰 소리가 들리므로 매우 낭패를 당할 때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신앙이 생활과 일치되지 않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저는 오늘 여러 성도들의 가정이 복받는 가정이 되기를 바라면서 욥의 신앙을 모범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말씀을 준비하였다.

욥은 어떠한 사람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부요한 사람이다. 부요란 무엇을 말하는가 넉넉한 것을 말한다. 욥의 부요함이 우리 교회에 속한 성도 여러분과 가정 위에 충만하기를 바란다.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1. 자녀들에 부요한 사람이다.
욥의 자녀들은 남자가 일곱, 여자가 셋이다. 동양에서는 대부분 아들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욥은 아들 욕심이 더욱 많았던 모양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자녀를 많이 생산하라면 욕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이 많으면 다복한 가정이라는 말도 있음을 기억하자.

제가 아는 친구 목사의 가정은 형제들이 모두 10남매이다. 욥의 경우는 순서를 말하지 않아서 아들 일곱이 먼저이고 나중에 딸만 셋을 두었는지 아니면 아들 딸 아들 딸 번갈아 가며 자녀를 두었는지 알 수 없다. 친구 목사의 가정은 위로 8 명이 딸이다. 교육계에서 활약하거나 혹은 의사로 은행원으로 사업가로 모두들 잘 지내고 있다. 마지막에 남은 두 자녀가 아들인데 그 중 막내로 태어난 아들이 지금 미국에서 목회를 계속하고 있다.
네비게이토의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이 쓴 '재생산을 위한 출생'이라는 책이 있다. 트로트맨이 어느 날 스코트랜드의 에딘벅을 방문하는데 한 부부가 정답게 유모차를 밀고 가는 것을 보았다. 또다른 부부도 눈에 띄었는데 한결같이 아름다운 아이들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부부간의 만남에서 재생산이 일어난 것을 관심있게 지켜 보았다. 어린 아이들의 10개의 고사리 같은 손이 어떠한 일군이 될런지 생각만 해도 감격스러웠다. 크로트맨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 왜 재생산을 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했다.
① 어려서/미성숙 ② 결혼하지 않아서 ③ 건강하지 못해서 ④ 원치 않아서

이 시간 저는 여러분들이 새삼스럽게 자녀를 많이 두라는 의미로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자녀들이야 여러분의 소견대로 할 일이다. 그러나 바울처럼 '복음으로 낳은 자녀'들이 얼마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자기 자식도 복음으로 살게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복음의 자녀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뛰어난 존재였다. 디모데가 그렇고 빌레몬이 그렇고 오네시모와 디도 모두가 바울이 감옥에 머물러 있는동안 길러낸 믿음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들이 반드시 환경이 좋은 상황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많이 생산해 내기를 바란다. 이런 자녀는 열이 아니라 백이 넘어도 지나치다 말하지 않을 것이다.

2. 재산에 부요한 사람이다.
욥 1:3에 소개한 내용을 보면 그의 소유물이 양이 7,000 약대가 3,000 소가 500 겨리 암나귀가 500 인가 하면 종도 많이 있었다. 이 사람이 동방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는 소문을 가진 것을 보면 부자 중에 상 부자였다.

3. 성품에도 부요한 사람이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1:1)
완전하고 의로운 자였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을 의미한다.
-부인의 비난에도 유순하였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였으나 욥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 사단은 그의 압력으로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단의 예측은 빗나간 예측이 되었다. 욥의 대답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 (2:9-10)

4.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다.
-자녀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는 예를 가졌다. (1:5)
혹시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염려해서이다.
-갑작스런 비보를 듣고 취한 행동은 '경배'였다. (1:20)
겉옷을 찢고/마음에 큰 충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머리털을 밀고/개인적으로 영광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한다.
땅에 엎드려/절망적인 표시이기도 하나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한 자세이다
-그는 범죄와 원망이 없었다. 입술의 말로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1절'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시편 119:11 에서 시인은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하였다.

하나님은 때때로 재앙이 우리들의 삶에 끼어들도록 허락하신다. 유다에게 들어간 사단은 자기의 스승을 은 20에 팔도록 충동하였고, 베드로에게 들어간 사단은 예수를 저주하면서 부인하게 만들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들어간 사단은 자기의 재산 중 일부를 감추어 성령을 속였다. 사단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마치 자기 집 드나들듯 한다.

여러분의 믿음,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만일 여러분에게 욥이 당한 시련과 꼭 같거나 비슷하거나 한 시련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자세를 보일 것인가 생각해 보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책상머리에 앉아 이렇게 질문을 기록해 보라.
'만일 욥에게 주어진 시련이 내게 주어진다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낼 것인가

사단의 나의 소유물을 다 날려버린다면... 욥은 졸지에 극빈자가 되었다.

1. 스바 사람들의 공격으로 종을 죽이고 소와 나귀들을 약탈해 갔다. 2:15

2.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양과 종을 살라 버렸다. 2:16

3. 갈대아 사람들이 세 때로 침략하여 약대를 빼앗고 종들을 죽임 2:17

4. 맏이 집에서 형제들이 음식을 나누는 중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져 압사당하였다.(2:19)

만일 사단이 하나 뿐인 나의 육체에 손상을 미친다면.. 졸지에 장애자가!
-욥은 재 가운데 앉아 기와 조각을 가지고 몸을 긁고 있었다.
이것도 사단의 주문에 의한 하나님의 허락이다.
한마디로 욥의 생활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이었고 그의 외모는 엉망이었다. 욥 19:13-14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 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나를 혐오하는구나 ... 어린 아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

욥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였다. 죽고자 하여도 죽음이 오지 않음을 한탄하였다.(3:20-24) 우리들이 모든 것이 잘 풀릴 때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 그리고 모든 고통이 강렬할 때 우리는 죽고만 싶고 이미 가진 줄 아는 믿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다.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거나 그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의심한 부분이 없다. 경건한 사람들이 죽기를 바란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모세/ 자기 백성의 끈질긴 반역으로 자기 생명을 취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엘리야/ 이세벨의 공격에 도망하면서 이제 생명을 취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요나/ 동산에 올라 니느웨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불발되자 죽기를 구하였다. 예언이 성취되지 않음으로 인한 자괴심이라고나 할까

인생을 다 이해한 자가 누구인가
비록 고난이 파도처럼 엄습해 온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거기 계시며 가까이 계심을 믿자. 욥 23:10에서 욥은 자기의 신앙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

'93년도는 실패, 좌절의 연속이었어도 '94년도는 회복의 축복이 충만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고난을 당하는 중에도 다니엘의 세 친구들과 함께 풀무 속에 계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고난의 용광로 속에도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복이란 평안한 때 나타내는 신앙이 아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불변할 때 나타난다.
욥은 잃어 버린 소유와 건강과 자녀들을 넉넉하게 회복하였다. 이것이 그의 참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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