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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추어진 하나님의 나라 (욜 03:13, 막 04: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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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선생께서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칼빈 선생님은 이 말씀을 「신앙의 눈」이 어떤 눈인가를 말씀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신앙의 눈은, 우리 눈 앞에 가까이 있는 것, 당장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지금 우리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는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하였습니다.그리고 이같은 신앙의 눈를 가지고 있을때,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당하는 여러가지 비극적인 일, 곤고한 일, 박해와 여러가지 비극적인 일, 곤고한 일, 박해와 여러가지 시련들을 견딜 수 있게 된다는 거입니다.(롬8:18참조,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바울 선생님의 말씀과 칼빈선생님의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눈앞에 당장 보이는 가시적인 것에는 가치를 두고, 그 반대로 당장 우리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부가시적인 것에는 가치를 두지 않고 무시해 버리는 결국 「신앙의 눈」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고 적은 것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많고 큰것에는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두고 살아 갑니다. 그것은 작고 적은 것은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고 크고 많은 것은 세상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인데....우리의 눈은 크고 많은 것에 눈이 가리워져 있는 것같습니다. 작은 것에 대한 예찬을 하는-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작은 소리로 하는 말이 듣기에 가장 편하다. 작은 나비는 가장 빨리 날아가고 꽃잎위에 가장 오래 머문다. 작은 호수가 가장 조용하다. 작은 가슴이 가장 충만하게 채워져 있다. 작은책이 가장 많이 읽히며,작은 노래가 가장 큰 사랑을 받는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진귀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할 때, 그것을 작게 만든다. 작은 진주, 작은 이슬방울이 아름답다 낮은 작은 광선으로 이루어지며 아름다운 밤은 작은 별들로 빛난다. 이토록 작은 것이 아름답고 진귀한 것인데도, 우리들은 큰 것, 많은 것에 가치를 두고 거기에 눈길을 돌리고, 쉽게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기에 혈안히 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세미하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것, 하늘의 신비스러운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참신앙인이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본문(막4:26-29)은 땅속에 뿌려진 씨앗-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씨앗이 자라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로 비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감추어진 하나님의 나라」로 정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숨겨진 하나님의 나라, 믿음의 눈이 없이는 보이지 않는 나라, 그러므로 신앙의 눈을 달고서 비로소 볼 수 있는 나라, 여러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재목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렇게 자주 설교되지 않는 비유 말씀입니다. 이 비유 말씀과 같은 부류에 속해 있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막4:1-9,10-12,13-20), 겨자씨의 비유(막 4:30-32)는 자주 설교를 하지만, 오늘 우리들의 본문은 설교자들이 설교본문으로 잘택하지 않습니다. 아마 설교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사실은 이 본문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하여 실현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기독교 진리의 본질을 담고 있는 본문인데도 설교자들로부터 냉대를 당한 말씀입니다. 이토록 이 본문이 설교자들로부터 잘 언급되지 않고 냉대를 받는 이유가 있다면 또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이 본문을 취급하기가 사실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이 까다로운 본문을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는지, 찾아봅시다. 다소 긴장을 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 말씀을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이 자고 낮에 깨고 하는 동안에 그 씨앗이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땅은 열매를 저절로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의 알찬 낱알을 냅니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댑니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라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비유에서 찾아본 것은 우선 등장인물입니다.
(1)씨를 뿌리는 사람농부라 하겠습니다. 씨를 뿌리는 농부는 씨를 뿌린 후에는 밤에 자고 낮에 깨는 일을, 곡식이 익을때까지 즉 추수할 때까지 계속하고 기다리다가 추수하기 위해 곡식에 낫을 대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농부는 그 씨앗의 신비르러운 성장을 알지 못합니다.
(2)그다음 등장인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씨앗이 싹을 내고 싹이 자라게 하고 그 다음에 이삭을 내고, 그 이삭이 충실하게 익게하는자가 누군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당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한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활동을 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씨앗이 땅속에서 움이 트고 잎이나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익게 된다는 사실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등장인물은 씨를 뿌리고 나중에 추수하는 역할을 하는 농부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씨앗의 모든 성장과 성숙과정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이 비유에서 핵심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일입니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본문에는 우리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숨어계시면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역을 맡고 계십니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싹이나고, 그 싹이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가 충실하게 익게 하는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농부는 씨앗의 성장과 성숙하는 과정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 씨앗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새로운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룩하겠다는「유토피아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유토피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인본주의와 공로추구와 업적주의를 배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라는 확장을 위해서 인간은 아무것도 힘이 없단 말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인간이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번째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람들이(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농부의 할 일이 바로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그 농부가 첫열매로 할 일이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바로 우리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씨를 맺게하는 일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말씀의 씨앗을 이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뿌리는 일입니다. 씨가 싹이나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성숙해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씨를 뿌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다음에 본문에 보면, 농부가 밤에 자고 낮에 깨는 동안에 그 시에서 싹이 나고 자란다(23절)라는 말이있습니다.이 말씀을 잘못알면 농부가 잠만자고 아무일도 하지 않는 빈둥거리고 있는 게으름뱅이로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슴은 이 농부가 씨를 뿌린다음 추수때가 될 때까지 자고 깨고하는 일상적인 일과를 꾸준히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밭에서 걸음을 주고, 물을 주고, 김매는 일을 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그같은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추수 때까지 열심히 준비하면서 기다린 농부인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주었으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같은 바울의 말씀이 오늘 비유 말씀을 잘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일꾼인 우리들은 씨를 뿌리는 일과 물주는 일을 추수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추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언젠가는 이땅에 실현이 됩니다. 완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이미 오래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이 신비롭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언제 추수 때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를 기다리면서 그 종말을 기다리면서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면서 종말론적으로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그 나라를 희망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보이는 것을 바로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는 삶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날 세상의 것을 바라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것, 그날의 것을 사모하면서 사는 삶이,바로 종말론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는 기대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에만 매달려 그것을 추구하며 획득하려고 싸우면서 살아갑니다. 이들은 눈앞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퇴폐향락에 도취되어 살아갑니다. 이리하여 이들은 물량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눈이 어두어 하나님도 못보고, 이웃도 보지 못하고 자기자신도 보지 못하고, 결국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문, 모든 매스컴은 떠들석하게 하는 입시부정, 서울 압구정동의 오랜지족의 행태, 경제부정, 과소비, 사치향락 모두가 「감추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 없이도 살겠다는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죄악들입니다.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큰 것과, 눈에 보이는 대단한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이 시대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살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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