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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 (요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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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3]

기독교와 교회에는 여러가지 표식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랑, 십자가,...
기독교의 첫번째 표식은 기쁨이다.
스위스의 법학자인 힐티는 `행복론'에서 “마음의 넘치는 기쁨은 언제나 신앙의 참 증명이다.”고 하였다.

참으로 불행한 일은 많은 성도들이 기쁨을 잊고 산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와 같은 기쁨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 기쁨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거나 성숙하지 않는다.

기쁨이 넘쳐야 할 이유

교회생활에서 기쁨이 넘쳐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3]
항상 기뻐하라-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
신약-기뻐하라 72회
기쁨카라 60회

기쁨이 없는 교회와 교인의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죽은 삶.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위성과 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현실적인 거리와 간격을 인정해야 진실로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울해하며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슬퍼하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웃음의 효과에 대해 연구
그 연구 결과는 웃으면 긴장이 풀리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온몸의 기관이 마치 기름질 한것처럼 잘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소일소(一笑一小) 일로일로 (一怒一老)라고 하였다. 한번 웃으면 하나만큼 젊어지고, 한번 노하면 하나만큼 늙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웃음에 인색
부모님이 돌아가셨느냐. 아니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났느냐 외국인이 질문
그러면서 하는 말이 웃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Smile, God loves you.)

어느 주일 저녁 때 리빙스톤은 런던 선교 음악회에 참석했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 그 교회 목사님이 소년 리빙스톤에게 와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얘야 너 선교사가 되지 않겠니 (My boy, Would you like to be a missionary)
뒷날 리빙스톤이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을 때 그는 자기가 선교사가 된 것은 바로 목사님의 미소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웃음의 기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비기독교인들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교회 안팎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딘가 침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쁨의 종류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크게 3가지 종류의 기쁨이 있다.1) 육체적 물질의 기쁨이다.
기독교인도 육체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 물질적 기쁨을 외면할 수는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오는 기쁨, 새 옷이나 예쁜 옷을 사서 입을 때 오는 기쁨, 좋은 주택을 사서 안락하게 살 때 오는 기쁨.
그러나 이것은 오래 가지 않고 잠정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육체적, 물질적 기쁨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있을 수도 없다.
또 완전한 기쁨이 아니고 때묻은 기쁨이라는 데 결함이 있다.
예) 어리석은 부자-물질의 풍요로 인하여 만족하고 기뻐하였는데 그것을 누리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2) 정신적 문화적 기쁨
세상에서 문화를 창조해가는 이 정신적 문화적 기쁨은 육체적 물질적 기쁨과 비교할 수 없이 오래간다. 작곡, 무대에서의 성악과 연주 연극, 소설, 미술, 조각 등에서 우리는 기쁨을 누린다. 그래서 인생은 짦고, 예술은 길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문화적 정신적 기쁨도 오래가지 않는다.
3) 영적인 기쁨이다.
이 기쁨의 특징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다는 특징. 바울이 옥중에서 쓴 빌립보서에 18번이나 기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다. 그러면 영적인 기쁨은 어떤 것인가
첫째,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쁨
어렸을 때는 몰라도 커서는 부모가 있다고 실제적으로 유익되거나 즐거운 것이
없다. 그러나 부모가 살아계신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고 기쁘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고아가 가지는 슬픔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둘째, 영원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큰 기쁨.
세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될 때에 오는 참 기쁨.
네째,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오는 기쁨이다. 순교하면서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기쁨 때문이다.
다섯째,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큰 기쁨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성도가 항상 기뻐하려면 영적인 기쁨을 소유해야 가능하다.

교회와 성도가 기쁨을 얻는 비결1)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참된 기쁨의 비결은 진리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19장 8절에서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깨닫는데서 기쁨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로 이세상에서 기쁨을 구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없는 것이다.
2) &를 마음 속에 모실 때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무신론자는 볼테어를 들 수 있다. 그는 나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며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 쾌락의 대표자로서 시인 바이런 벌레와 아픔과 슬픔만이 나의 전부라고 고백하였다. 돈 많기로 유명한 미국의 제이 쿨드는 임종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 권력과 명성을 다 누렸던 비콘 스필드 경은 청년은 실수요, 장년은 투쟁이요, 노년은 후회 뿐이다. 고백하였다.
이처럼 불신에도 기쁨이 없고, 쾌락에도 기쁨이 없고, 돈에도 기쁨이 없고, 권력과 명성에도 기쁨이 없다면 도대체 어디에 기쁨이 있는 것인가
바로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구주 &를 내 마음에 모실 때 기쁨이 내 속에 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이 말씀은 우리가 주안에서만 참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성경에는 가장 짧은 구절이 두개있다.
하나는 &이 눈물을 흘리시더라(요11:35) Jesus wept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rejoice evermore
그러나 한글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원문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는 두 단어이고,
&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세 단어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구절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께서 우셨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다. &이 우심은 우리가 이땅에서 당하게 될 모든 슬픔을 대신한 대속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십자가로 연결되는 눈물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기뻐하길 원한다면 주님의 우심에 동참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주 안에서만 기뻐할 수 있다.
3) 성령충만해야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다.
이는 성령충만해야 참된 영적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면 우리의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항상 입에서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충만한 법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충만해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충만한 기쁨은 아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바로 이 떼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위대한 설교가인 조지 뮬러는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쁨이 충만할 때까지 설교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위대한 음악가인 하이든은 나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기쁨으로 가슴이 뛰게 됩니다. 그때에는 내 펜에서 악보가 뛰어오릅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교회와 성도가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분명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해답은 골 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
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로새서 3:1-골로새서 3:2]

태양은 비오는 날에도 구름 저 너머에서 빛나고 있듯이, 이 세상에서는 맑은 날도 있고 비오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다. 그렇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위에서 항상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저 위를 바라보아야 한다. 참 기쁨은 언제나 안개와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냥 보면 안보인다. 영의 눈을 가져야 보이는 그런 기쁨이다. 바로 이시간 부터 우리 모두는 이런 기쁨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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