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된 회개 (렘 04:1-4)

첨부 1


1. 시작하는 말

믿는 우리는 우리 안에 내주하신 성령님의 역사를 좇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도인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라고 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만 구원하고, 모든 이방인들은 다 멸망시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유대교로 개종하고 할례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사자인 예레미야 선지자는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선포했습니다.

2.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함

회개를 촉구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는 이스라엘의 자만심과 자존심을 여지없이 뭉개 버렸습니다. 더욱이, 회개를 촉구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언은 이스라엘의 어느 계층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비롯한 정치계가 하나님을 떠나 썩었으니 회개하라는 것도 아니고, 교권자들을 비롯한 종교계가 하나님을 망각하고 부패했으니 회개하라는 것도 아니고, 법조계나 교육계나 경제계 또는 군대 등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타락했으니 회개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외치는 것은 거국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니 거국적으로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국적인 부패와 타락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2:1 이하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특히, 8절에 보면,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라고 하였고;또 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처럼, 생수를 담아 보려고 땀 흘려 웅덩이를 파지만, 결과적으로 물 한 모금도 담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라 갈증만 더할 뿐입니다. 어느 누구들처럼 살아 보려고 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다 동원하여 애를 쓰지만, 오히려 무덤을 더욱 깊게 파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한 현상은 어느 누구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났거나 망각한 모든 인생들에게 발생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에, 명예와 권세와 부 등 대단한 영광을 누리던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을 때에 부당하게 모은 엄청난 재물 때문에 세계적인 망신살이 뻗쳤지만, 그 엄청난 재물과 한동안 누렸던 세상적 영광은 그 주인을 구하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참된 회개
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역시 살 길은 온갖 부패와 타락으로 멸망을 당해야 마땅한 인생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당신의 사자들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일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회개, 즉 하나님께 돌아오는 데에는 소극적인 요소와 적극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 곧 밉살스런 행위를 버리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즉, 이전의 우상들과 말씀을 거역하는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울부짖으며 회개하여 하나님의 도움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향해 갈 때에 툭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모세를 원망하면서 애굽에서 살던 시절을 들먹거리곤 했습니다. 일단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종종 저는 우리 교회가 좀더 확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섬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이사야 26:3에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이란 손해가 나더라도, 목숨의 위기를 초래케 된다 할지라도, 거짓과 가식이 없이 진실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무슨 일에나 공평해야 하고, 힘들더라도 항상 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전 생애가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한 것과 같아야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삶에 응답하여 사는 생활 때문에 조롱이나 핍박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 불신자들이 우리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께 복을 빌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불신자들의 부당한 조롱과 비난 그리고 핍박 때문에 모독감을 느끼지 말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모독감을 느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실과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이러한 덕들을 행해야만 우리가 살고, 불신자들이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26:12 이하에 다음과 같은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바람에 이삭이 블레셋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에 배가 아파진 블레셋 사람들이 몰려와서 우물을 막고 흙으로 매우기도 하고, 뺏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쫓아 버리기도 하는 등 박해를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이삭은 그들처럼 거짓과 불공평과 불의로 그들을 대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삭의 가정이 쫓겨는 갔지만, 가는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므로, 실제로 손해 보는 것이 없었다는 겁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이 이 기이한 일의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추장 아비멜렉이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을 데리고 이삭을 찾아와서 이삭에게 한 말이 뭔지 압니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창 26:28). 게다가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자기들을 해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여러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주님 안에서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 얻도록 뜨겁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유다에게 회개를 촉구함

예레미야는, 이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남왕국 유다에 대해서도 거국적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레미야는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우상 숭배와 온갖 죄악으로 단단하게 굳어진 마음 밭을 갈고,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가시덤불 속에 말씀의 씨를 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라도 단단한 땅이나 잡초나 독초 속에 뿌려지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뿌리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비방하기 좋아하는 마음속에 말씀이 떨어지니까, 이제는 그 말씀에 걸어서 비방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예레미야는 할례를 행하되 살 가죽이 아니라, 마음 가죽을 베고 하나님께 속하라고 외쳤습니다. 참된 회개란 전 생애의 중심인 마음이 하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4. 맺음말

구원받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 엉거주춤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죄와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 속에 살다 보니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세속에 물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끌 수 없는 심판의 불길이 임하지 않도록 모든 세상적인 것을 다 끊어버리고, 주님 안에서 진실과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심으로써 사람들로 하나님을 믿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