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른다 (슥 09:9-12, 눅 19:28-40)

첨부 1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이는 곧 약 500년전 스가랴선지자가 이미 예언했던 것으로 결국 예수는 약속을 따 라 이 땅에 오신 참 메시야 되심을 한번 더 확인시켜 주셨다. 그리고 예수가 나귀를 타신것은 곧 당신이 겸손하고 평화의 실체가 되신 분임 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이 사건은 예수의 공생애의 마지막이자 절정 이었고 고난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 가 마침내 왕위등극을 위해 오시는 승리의 입성이었다. 그러나 예수 자신에게는 자신의 겸손과 평화, 죽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인류구속사 역을 위해 죽으신 수난의 입성이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것은 어떤 성명을 발표한 것도 아니지만 곧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평화의 상징 인 것이다. 새것이 도래했다는 것의 상징이다. 어린나귀를 타고 아무 무장도 하지않고 삼엄한 예루살렘을 돌입한다는 것은 칼에 대해서 칼 을 쓰면 결국 칼로 망한다는 의미도 있고 지금까지의 기존질서와는 다 른 새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평화와 기쁨의 상징이다.

 예수의 이 상징적인 행위는 세계를 위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 어 있다. 민중은 이 상징의 의미를 파악하고 환호를 하며 예수를 맞는 다. 그 당시에 초라한 모습의 예수의 입성은 깊은 역사의 통찰을 갖게 한다.

진리를 정면으로 보고 듣기를 싫어하는 지배층, 그들은 그것을 가장 싫어했다. 새로운 것이 들어옴으로써 그들의 기존의 위치가 무너질까 위험하기 때문에 그들은 진리의 소리를 비판의 소리로 들었다. 그러므 로 저들은 그런 증거의 입을 틀어 막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의 사회의 지배층인 바리새파인들이 예수에게 항의를 한다. 선생 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이 짧은 말속에는 진리는 반드시 밝혀지고야 만다는 만고불 변의 진리를 내포한 엄숙한 선언이었다. 폭력으로 뇌물로 저들의 입을 봉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지 를 것이다.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다. 돌들은 역사일 수도 있고 폭력일 수도 있다. 증언은 입으로 한다. 그러나 들어야 할 사람들이 귀를 꼭 닫고 있다. 그러면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 귀가 안되면 눈에 그것도 안 되면 감각기관에 호소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의 은폐는 소용이 없다.

예수의 입성자체는 결코 공격이나 항의가 아니라 그저 진리를 증거하 는 행위이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역사에 있는 것이다. 이 자리는 지배자나 피지배자에게 있어 똑같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전하는 것 이다. 이것을 항거하고 귀를 막고, 입을 틀어 막는 일은 스스로 자멸 하는 길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것은 목격자 는 증인이 될 것을 강력히 나타내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고 너희들 은 증인이 되라는 중요하고도 엄숙한 그런 의미이다. 분명히 그리스도 교회는 정치나 사회사업이 목적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만 오신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역사의 존재로 구원하려 오셨다. 우리는 그의 뜻을 받들어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는 진리를 증거하러 왔다. 역사의 배후에는 할 말을 못하고 표현할 것을 못하고 끝끝내 목 격자이면서도 그것을 들어내지 못하고 죽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 가 지금 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약해서 할 말 못하고 행정권에 대한 주 장도 억눌려있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그리스도인 들은 그들의 말 못 하는 입이 되어 주어야 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 말못하는 저 사실을 누가 대신 입이 되어 증거할까 만일 그리스도 인들이 말 못하면 돌들이라도 소리지를 것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 하고 가슴에 품고 있으면 독이된다. 하지 못하는 말들이 한데 뭉쳐서 마침내 유혈의 폭동이 일어난 것이 역사의 과정인 것이다. 이것을 미 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먼저 증인이 되고 들어낼 것을 들어내고 남의 입이 되 주는 것이 이웃을 위한 구체적인 행위이다.

 비정통성인 군부정부가 32년동안이나 지배해왔던 지난날들을 회고해 보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를 지른 함성은 무엇이었나를 실감케 한다.

순수한 학생들, 민주인사, 재야, 양심수, 목사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하면서 군사정권과 언론, 사회일각에 깨우침을 줄때 정부는 체류탄을 쏘아 대고 학생들이 그 체류탄에 맞서 화염병과 돌들을 들어 맞대항했 던 과거지사가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른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임을 우리역사의 현장에서 실감하게 된다.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이후 개혁의 새바람이 불고 있다. 공직자들의 재산공개후 권력을 통해 불법과 편법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고 부정직 한 거짓말로 재산을 은닉한 공직자들의 비리가 속속들어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총체적 부패공화국으로 개탄을 금치 못한다. 어느 곳에서나 부패와 비리가 판을 치고 상식을 벗어난 행위만이 정상적인 듯한 착각의 시대에 살아왔다. 정의가 사라지고 도덕불감증과 폭력에 익숙해진 사회가 되어 왔다. 이제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새시대를 여 는 개혁의 시대에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지 않도록 잘못된 과거의 관행 을 과감하게 고치고 진리가 지배하는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이여! 입이 있으면 할 말을 해라 초라한 나귀를 타고 입 성하는 그이가 바로 새로운 궁국적인 인류의 희망임을 증거해라 새로 운시대의 여명이 그와 더불어 동터온다. 진리를 말하라 안하면 결국 저 돌들이 소리 지른다.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을 죽였다. 이사실은 가인과 아벨만이 안다.

그러나 이것을 증언할 아벨은 죽었다. 아벨의 입도 귀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하실때 가인은 난 내 동생을 지키 는 사람이 아니오!하며 당당히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아우의 피 소리가 땅에서 내게 호소한다고 말씀하셨다. 돌들이 외치 는 것들을 증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모든 의로운 사람의 피가 말한마디 못하고 땅에 쏟아졌다. 대지가 호소를 하면 사람은 그 것을 듣지 못해도 이것을 역사에 증거하는 이는 하나님이다. 진리는 반드시 드러나고야 만다는 진리 자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오늘 주일 에 생각할 점이다.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는 예수의 행위는 권위주의적인 측면에서 보 면 하나의 웃음거리지만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이다. 상 징이란 서로 알고 있지만 언론이 봉쇄되고 통제 되었을때 이미 알고 있는 그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내용은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대한 비밀을 지키면서 서로 상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상징을 쓰게 된다. 독재국가에서는 상징주의가 발달한다.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을때 역시 기독교인들은 상징을 사용했다. 신약성서의 묵시록이 대표적인 예이다. 예수의 입성 은 겸손과 평화의 상징이며 새것이 도래했다는 것의 상징이다.

 너희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면 서 잠잠하고 있나 역사의 증인으로서 우리의 할 일을 다했나 하는 반 성이 있어야겠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