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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요롭게 사는 비결 (눅 0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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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학자들은 본문을 가리켜 사랑의 극치,인생의 황금률,사랑의 절정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본문은 마태복음 5:38-48의 기사와 같은 내용이기도 합니다.한 마디로 말해서 풍요롭게 사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본문 속에서 그 비결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원수를 사랑하라,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수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본문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원수란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며,나에게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이며,나의 인격을 무차별 짓밟고 모욕하는 사람을 의미하며,내 뺨을 치고 학대하는 사람이며,내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감정대로라면 나에 대한 악담을 퍼뜨리고 내 인격을 모욕하고 핍박을 일삼고 나를 학대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그러나 주님은 35절에서 “원수를 선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특히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는 방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라”는 것이 주님의 원수 사랑하는 법입니다.이건 마치 원수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하기 어려운 실천 항목들입니다.그러면 어떻게 그 실천이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만 가능합니다.내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존재였으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용서와 사죄의 체험이 있으면 나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현재 지니고 있는 나 자신의 감정을 정돈한다는 뜻도 있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한다는 뜻도 있습니다.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했을 때 오는 몇 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둘째는 기도의 통로가 열리게 됩니다.
세째는 깨어졌던 인간 관게가 회복됩니다.
네째는 내가 속한 집단 혹은 공동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다섯째는 상이 큽니다.본문 35절에서 말하는 “너희 상이 클 것이라”는 말씀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45을 보면“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체적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고 용서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12:19-21을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원수를 갚기 위해 원수네 집에 밤중을 틈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기고 작정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날 밤부터 매일밤 그 원수가 자기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 악몽을 꾸게 되었습니다.어느 날 그가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불지르겠다는 계획을 포기했을 때 그날 밤 자기집 울타리에 봉선화와 채송화가 만발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꿈 때문에 자신의 게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보복은 보복은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남깁니다.그러나 사랑은 사랑을 낳고 사랑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2.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생활을 하라.그리하면 너도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37절 이하를 보면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내가 비판받고 정죄받는 비결입니다.현대인의 삶이나 정신 속에 비판 정신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반대를 위한 반대는 자신의 삶을 삭막하게 만들고 친구를 잃어버리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은 7:1에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이유는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우리가 벽을 향해 공을 세게 던지면 반동되는 공의 힘 역시 강하게 됩니다.남을 비판하고 남을 헤아리는 것을 주업인 양 여기고 그 일을 일삼다 보면 결국은 자신이 그 올무에 걸리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느 교인집에 갔더니 각양 각색의 화초들을 실내에서 키우고 있었습니다.그런데 모든 화초들이 다른 집 것에 비해 싱싱하고 건강해 보였습니다.그 비결을 물었더니 매일 아침 모든 화초들을 손으로 매만지고 닦아 준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풀 한 포기 한 포기를 인정해 주고 가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나무를 심기만 하면 죽이지 않고 잘 자라게 하는 어느 스페인의 정원사에게 “당신은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기에 나무가 죽지 않고 다 잘 자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자신은 나무를 심을 때마다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즉 그는 나무에게 “나무야 잘 자라야 한다.나는 너를 사랑한단다.너는 좋은 나무니까 잘 자랄거야”라고 얘기를 하며 심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6:41-42을 보면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고 했습니다.내가 형제를 인정하고 그를 축복하면 그도 나를 인정하고 축복할 것입니다.내가 형제를 멸시하고 저주하면 그도 나를 미워하고 비판하고 저주할 것입니다.

3.주라 그리하면 후히 주리하고 하셨습니다.
본문 38절을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했습니다.이 교훈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주라”는 명령 속에는 다음의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너도 받았으니 주라는 것입니다.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우리는 값없이 거저 받았습니다.그러므로 주라는 것입니다.둘째는 주어야 잘 산다는 뜻이 있습니다.남의 것을 빌어 쓰고 얻어다 쓰는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그러나 남에게 줄 것이 있고 주면서 사는 생활은 잘 사는 생활입니다.우리에겐 각각 줄 것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돈으로 나누어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어떤 사람은 따뜻한 정이나 말한 마디를 나누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어떤 사람은 뜨거운 기도와 복음을 나누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성경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못 살아도 주면서 살다보면 잘 살게 될 것이고,잘 살아도 주는 것을 싫어하면 그 생활이 점점 줄어들 것이고 잘 살면서 많이 나눠 주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깊은 바다가 사해라고 합니다.지중해보다 더 깊은 바다이기 때문에 물이 흘러 들어가면 빠져 나갈 곳이 없습니다.사해는 바닷물이 짜기 때문에 사해가 아닙니다.짜기로 말하면 지중해 바닷물도 마찬가지로 짭니다.그러나 사해가 죽음의 바다인 것은 물의 순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즉 입구만 있지 출구가 없기 때문입니다.똑같이 짠물로 된 바다이지만 지중해에는 고기떼가 뛰놀고 사해에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소금물처럼 짜게 돈을 모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 쓰고 안 먹고 돈을 모았습니다.그러나 한 사람은 뜻있고 가치있는 일들을 위해 그 돈을 쓸 줄 알았으므로 그 사람의 생애는 싱싱하고 멋이 있었습니다.그러나 한 사람은 안 먹고 안 쓰고 돈을 모아서 안 쓰고 안 먹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그 생애는 죽음의 바다처럼 적막하고 가치도 의미도 없었습니다.본문에 나타난 주는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는 말씀의 뜻은 나는 이웃이나 형제에게 주었지만 주님께서는 친히 나에게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원수도 주님이 갚아 주시고 상급도 주님이 주시고 축복도 주님이 주신다는 것은 진리이며 우리의 신앙입니다.
둘째,후히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후하게”라는 말의 뜻은 갑절 이상,넘치게라는 뜻입니다.본문은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신다고 했습니다.이것은 타작 마당에서 곡식을 말로 되어 자루에 담는 것을 묘사한 말입니다.꾹꾹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곡식을 담는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풍성한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축복받는 것은 행함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법칙은 자연 법칙과도 같습니다.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이 자연의 파종 법칙입니다.축복도 많이 뿌리면 많이 받고 적게 뿌리면 적게 받고 뿌리지 않으면 받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그러니까 풍성한 축복을 원하면 주기를 힘쓰고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세째는 안겨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내가 축복을 찾아 동서남북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직접 축복을 가지고 오셔서 내 팔에 한아름 풍요롭게 안겨 주시겠다는 뜻입니다.행복이나 축복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그러므로 그것을 받도록 사는 것이 중요하고 받은 후에 그것을 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행복이란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부세의 시 가운데 “저 산 넘어”라는 시가 있습니다.“저 산 넘어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남들 함께 얼려 찾아 갔다가 눈물만 글썽하여 되돌아 왔네”라는 귀절이 있습니다.행복이나 축복은 축복과 풍요와 행복의 근원이신 주님께서 내품에 안겨 주시는 것입니다.
누르고 흔들고 넘치도록 안겨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그 말씀을 순종합시다.그리고 주기를 힘씁시다.아낀다고 잘 사는 것도,준다고 못사는 것도 아닙니다.아낄때 아끼고 꼭 써야 할 곳에 쓰는 것이 잘 사는 비결입니다.저는 교우 여러분이 요한3서 2절의 축복처럼 영적으로도 풍요를 누리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와지고 모든 일이 주 안에서 형통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풍요로우신 주님을 모시고 풍요롭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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