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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눅 0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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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치켜 세우고 높이는 것을 자화자찬이라고 합니다.남이 나를 높여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은 바람직한 미덕이 됩니다만,자신이 자기를 과시하고 높이는 행위는 결코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순리와 정당한 방법으로 통장의 액수가 불어나고 재산이 증식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만,무리 수를 쓰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거나 돈을 모으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서울대학 김영무 교수의 칼럼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지난해 겨울 마당이 하도 황량하기에 참새라도 불러 모아 동무 삼을 심산으로 새모이를 한 봉지 사서 네모난 접시에 가득 담아 마당 한가운데 놓고 참새들이 모여 들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얼마후 참새들이 날아왔습니다.그러나 새들은 곧장 모이 있는 곳으로 날아들지 않았습니다.
접시 주변에 흩어진 낱알들만 주어 먹을 뿐 수북히 쌓인 접시쪽으로는 접근하지 않다가 열흘 쯤 지난 뒤에야 접시 있는데로 모여들어 모이를 쪼아 먹었습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었구나.이거 웬 떡이냐 하며 허겁지겁 서둘줄 알았는데 그런 녀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그리고 먹이가 귀한 겨울날 하루 종일 접시 속에 죽치고 앉아 배가 터지게 모이를 먹는 놈은 하나도 없었고 아무때나 시도 때도 없이 날아 오는 새도 없었습니다.한 무리로 떼를 지어 아침 나절에 날아와 모이를 쪼아 먹고는 미련없이 훌훌 지붕 위나 대추나무가지 위로 날아가 버렸습니다.그리고 시장기가 들면 먹이를 주워 먹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1992년 4월 L.A.폭동이 일어났을 때 흑인 백인 가릴 것없이 남의 가게에 쳐들어가 라디오,사진기,화장비누,화장지,라면 등 닥치는 대로 쓸어 안고 나오던 텔레비젼 화면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 어른들은 울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호랑이 나온다」,「순사가 잡아간다」고 겁을 주곤 했습니다.그러나 지금 우리네 사회 정황은「사람이 겁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게걸스럽게 먹이를 탐하는 사람을 돼지에 비겼습니다만 돼지보다 더 탐욕스런 존재는 바로 사람입니다.무서운 것도,탐욕스러운 것도,음흉한 것도,간악한 것도 이젠 모조리 사람 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부를 누리고 행복을 쌓는 길이 두 가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노력과 힘에 의해 이루는 길이고,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길입니다.
자기 노력과 힘으로 부를 쌓고 행복을 누리려면 내가 내 주머니를 채워야 하고 내 자루를 채워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것도 빼앗아야 하고 남의 손에 있는 것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얻는 것은 그 수명이 길지 못합니다.다시 말하면 언젠가는 내 손에서 빠져나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축복의 최고 경지를 찾게 됩니다.그것은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는 말씀입니다.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인정이 넘쳤던 옛날의 시골 장터가 연상되었습니다.
저울로 무게를 달아서 사고 팔기 이전에는 되나 말로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저울보다 되나 말은 융통성이 있습니다.거기다가 누르고 흔들게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인심좋은 장터라면 꾹꾹 누르기도 하고 흔들어서 줍니다.
어떤 사람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줍니까
본문이 대답해 줍니다.

1.대인관계가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36-37절을 보면 “자비하라,비판치 말라,정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남을 비판하고 남의 잘못을 정죄하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이 지니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습관성입니다.
셋째 자신에겐 비판받을 일이 더 많습니다.
넷째 정신적으로 욕구불만이 있거나 정서가 불안한 사람이라는 것 등입니다.그런가하면 남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지니는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그 사람 자신이 칭찬받을 일이 많습니다.
둘째 늘 남을 칭찬합니다.
셋째 인간관계가 부드럽습니다.
넷째 인격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남들이 그를 좋아합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고인의 사진을 세워 놓습니다.저는 가끔씩 내 자신도 언젠가는 저 틀 속에 끼워 놓을 때가 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그리고 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곤합니다.
그가 평소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살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것입니다.
남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
분위기를 기분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
남을 돕고 사랑해 주는 사람,
남의 장점을 칭찬해 주며 살던 사람,그 사람은 살거나 죽거나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그 이름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입니다.
어느날 유명한 율법선생이었던 힐렐(Hillel)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그는 힐렐에게「당신이 유명한 율법선생이라면 내가 한쪽 발을 들고 서 있는 동안에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율법을 다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이것은 모욕이며 오만한 접근이었습니다.
그에게 힐렐은 「자기에게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였던 필로(Philo)는 “자기 자신이 당하기 싫어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은 어느날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저는 죽기전에 30분짜리 녹음테이프에 제 육성으로 녹음을 해 두겠습니다.그리고 제가 죽은 다음 장례식날 그 테잎을 여러분에게 들려주도록 유언하겠습니다.대충 그 테잎의 녹음은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김 장로,참 고맙소 평소 내 목회를 잘 도와준데 대해 정말로 감사를 드리오.헌데 설교시간에 하품 좀 안하기 바라오.박장로,그러지 마시오 당신은 왜 허구헌날 나를 괴롭혔소.부디 마음 돌리기 바라오…’등 평소 말로 하고팠던 내용을 녹음했다가 들려주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고소와 실소와 폭소가 터졌다고 합니다.
남을 비판하면 내가 비판을 받고 남을 정죄하면 내가 정죄를 받게 됩니다.그리고 사람이 내 곁을 떠나게 됩니다.
최근 미국 의학협회에서 발행하는「저널」지에 실린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음주습관은 유전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부모가 술을 많이 마시면서 자식을 낳게 되면 그 자식들도 유전적 요인의 영향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좋은 습관은 자식들에게 좋은 영향을 물려 줍니다만 나쁜 버릇이나 습관은 그대로 자식들에게 전이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부모의 교회생활이나 신앙생활이 철저하고 긍정적이면 자식들도 그것을 닮고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교회 섬기는 태도나 예수 믿는 자세가 까다롭고 부정적이면 자식들도 그 본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회사나 교회에서 후한 대접을 받습니까 후덕하고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처럼 총칼을 휘두르며 500만명이나 1천만명을 살상하고 개선한 장군이었다면 누가 왜 2천년동안 그 이름을 높이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겠습니까
부드러운 남자,부드러운 여자가 됩시다.주님의 품성을 닮읍시다.그래야 누르고 흔들고 넘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딱딱한 가죽부대에 많은 것을 담지 못합니다.그러나 부드러운 부대 속에는 꾹꾹 누르고 흔들어 많은 것을 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2.용서하는 사람입니다.
37절 끝을 보면,“용서하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용서하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내가 그를 용서하면 그가 용서를 받는 것인데,왜 내가 용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용서의 신비이며 진리입니다.
내가 너를 용서하면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용서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첫째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처지,그 입장,그 형편,그 정황을 이해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둘째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감정,원한 분노,이런 것들을 잊어 버리는 것이 용서입니다.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한 용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그리고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용서를 방해합니다.
셋째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사랑하는 몸짓을 취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넷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축복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될 때 용서는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용서하면 어떻게 됩니까
먼저 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내 영혼이 평정을 되찾게 됩니다.증오심,적개심,원한같은 감정의 풍랑을 가라앉히고 내 영혼이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그 뿐입니까.내가 남을 용서해야 내가 저지른 잘못도 용서받게 됩니다.그리고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3.주는 사람입니다.
38절을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했습니다.
우린 흔히 주는 것은 줄어드는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안 주는 것이 부자되고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조의 질서나 성경의 명령 그리고 신체의 구조는 받을 것은 받고 내보낼 것은 내보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음식물 섭취는 칼로리나 영양공급에 절대 필요합니다.그러나 배설 작용이나 과정이 없다면 그건 큰 일입니다.
장마비가 와도 배수구로 빠져나가지 않으면 서울시가 물에 뜨고 말 것입니다.
사람에겐 적당량의 철분이 필요합니다.그러나 혈중에 철분이 지나치게 많으면 심장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1992년 9월 핀란드의 연구팀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931명의 중년 남성을 5년 동안 관찰한 결과 혈장 속에 철분 수치가 높게 나타난 사람들이 낮은 사람들보다 심장발작을 일으킬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쉽게 말하면 철분이 지나치게 많으면 심장발작의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라」는 주님의 명령은 축복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습니다.주님께 열심으로 드립시다.그것이 최상의 투자이며 풍요의 비결입니다.
보람된 일을 위해 줍시다.어차피 인생의 종장은 관 한개에 맨손으로 끝나게 됩니다.
대전 지방 어느 공원묘지는 60만원이면 부부합장이 가능한 묘지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 들어갈 맨숀은 60만원이면 됩니다.
주라!
그리하면 후히 누르고 흔들고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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