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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눅 07: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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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우리들은 천국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죽어서 장차 올라갈 곳이 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 라(마태복음3:2)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 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복음11:12)고 말씀하 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천국 은 구만리 장천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운데 있으며 우리가 시시각각으로 체험하고 사는 곳이 천국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 니다.

 1. 천국은 몸으로 체험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가복음 4장에 기록된 씨뿌리는 비유에서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 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 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 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 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 지매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마가복 음4: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천국의 비유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우리의 마음이 길거리 밖과 같 이 무관심한 마음이 되지 아니하고 또 우리의 마음이 춰성심이 부족해서 조 금 있다가 핍박이 다가오면 포기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며 세상의 탐욕이 꽉 차 들지 아니하고 마음이 순수하고 옥토가 되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 면 천국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천국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천국의 속성은 자라남에 있습니다. 믿음,소망,사랑이 자라나고 의와 평강 과 희락이 자라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이 자라나는 속 성을 가진 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심어져야 합니다.

 천국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여 성령님의 능력으로 신비롭게 자라납니다.

성경 마가복음 4장 26절로 29절은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땅 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 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천국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말씀이 심어지면 스스로 자랍니다.

한 주일이 지나면 자라고 한달이 지나면 자라고 그 신앙생활이 자랍니다.

천국의 역사는 그러면 자라고 그 신앙생활이 자랍니다. 천국의 역사는 그러 므로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자라서 우리 가운데 성장과 결실을 가져옵니다.

 천국은 작은 겨자씨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겨자씨를 뿌려놓은 것과 같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 이지만 자란 후에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가지에 깃들기도 합니 다.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훗날 진실한 신자가 되겠는가 그 신앙이 무엇이 되 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작은 신앙이 점점 자라서 큰 나무같이 되고 심지어는 새들이와서 둥지를 치고 살 수 있게 됩니다. 천국은 자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죽는 것이 없습니다. 천국은 성령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천 국의 메세지를 받아들이면 천국의 역사는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항상 무성하 게 자라고 결실하는 역사를 낳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운동력인 것입니 다.

 이러므로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받 아들일 때 이 천국이 우리 보기엔 보잘것없는 같이 보이지만 천국은 우리의 삶 속에 끊임없이 자라나는 역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도 자라고, 마음도 자라고, 생활도 자라고 온유와 평강과 희락이 자라며 믿음 소망 사랑이 자라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열매가 열립니다.

 그리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 같이 자라는 것입니다. 만 액 자라나지 아니하면 중대한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못자라는 것은 길거리에 뿌린 씨같이 무관심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충성심 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신앙을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탐욕이 꽉 들어차서 하늘 나라를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천국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천국은 놀라운 능력으로 무성하게 자라고 열매맺게 되 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천국은 잃었다 얻는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에 대해 비유로 어느 사람이 양이 일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아르 찾도록 찾아 다 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나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누 가복음 15:4-6)

또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 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누가복음 15:8-9)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또한 탕자의 비유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가 아버지 재산 중 자신의 분깃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그 재산을 허비하 고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그 탕자는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를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했습니다.

 성경은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깨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 우리가 먹 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누가복음15:22-24)고 아버지의 사랑표현을 기록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 혼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찾을때 이것이 바로 천국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기도하고 성령을 모시고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천국의 역사입니다.

환란과 고통을 당하고 낭패와 실망당하고 헐벗고 굶주리다 하나님의 은총 으로 복을 받고 환경이 변하며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교제를 되찾는 것 이것 이 바로 천국의 역사요,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천국은 잃어버리는 것을 찾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을 다 찾을 때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찾는 것을 기뻐하셔서 잃어버 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이러므로 천국의 역사는 잃었다가 얻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천국의 역사는 회개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3;2)하시고는 곧장 치유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마음에 상처받은 자 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님께서는 치료와 건강, 생명과 부활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 려는 것이라(요한복음10:10)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성령의 역사로 우리의 육신과 생활에 침투해 들어오면 병 과 고통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이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질병 에서 치유되고 참기쁨과 자유를 얻고 고통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천국에 이 르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의 역사를 증명하신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었을때 나사렛 예수가 과연 메시야이 고 천국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인지 알고 싶어서 자신의 제자들을 보냈습 니다.

 예수님은 마침 그때 많은 귀신을 쫓아나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그리고 문 둥이를 깨끗이 하셨으며 죄인과 세리,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 요한의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에게 가서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든 자가 낫고 문둥이가 깨끗함을 입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전하라

이것이 천국의 표현이고 그것이 메시야의 증거이기 때문에 요한이 그 말을 들으며 이분이 틀림없는 메시야구나 이와 같이 이해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국은 이땅에 나타나서 우리가 체험되고, 우리 가운데 나타나서 성도로서 병고침과 귀신 쫓아내심과 문둥이가 깨끗이 됨과 죽은자가 살아남과 고통에 서 해방되고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이 전해지는 이런 것입니다. 다시 말 해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역사가 나타나고 현실로 체험되는 것이 천국이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 천국이 체험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이 우리 가운데 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 다.

 4.천국은 소외된 사람과 친구가 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 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도(누가복음15:2)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누가복음 7:34)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예수님이 온 세상 사람이 다 손가락질하고 더럽게 여기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 다.

 세리와 죄인들은 서로 의롭다고 자청하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자존심을 상실한 사람들이며 자기를 존경하지 아니 하고 사람들도 그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이 이런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하시고 그들을 용서하 시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들에게 자존심을 심어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므로 사회적으로 병든 그들의 심령을 치료해 주고 하늘나라 소망 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깊은 만남을 통하여 그들은 변화를 받았 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천국의 역사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외 된 삶, 버림받은 사람들의 곁에 와서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 존심을 세워주시고 예수님과 함께 있으므로 나도 존경받는 사람, 사회적으 로 힘껏 잘해주고 소망을 갖게 되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변화되어 오는 것입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요. 세리장인 그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겠다고 뽕나무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고 있 는데 예수님께서 너희 집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시자 모든 사람들은 놀랐 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와 같이 들어가니 삭개오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같이 천민 죄인의 집에 오는 것을 보고 너무 감격해서 잃어버린 자존심이 다시 생겨나고 인간의 존엄성이 살아나서 상한 심령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마당에서 엎드려서 주님께 절하며 감사했습니 다. 그리고는 자신의 재산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호상한 물건 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천국의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버림받은 사람들과 같이 해줌으로 그들에 게 사회적인 치료를 가져오는 역사가 바로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에 있는 천국의 역사가 나타나면 이렇게 버림받고 처절 한 사람도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존심을 회복하고, 새사람으로서 일 어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5. 천국은 가난한 사람 속에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돈이 없는 물질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교유도 많이 받 지 못한 사회의 하층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고, 희 망을 잃고 있습니다. 언제나 잘 사는 사람들과 스스로 비교해 보고, 삶의 비참함을 느끼며 마음속의 삶과 인생에 관해서 분노와 미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들어가서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 대한 위대한 희망을 심어주었고, 비록 이 세상에서는 가난하나 하늘나라에 서는 가난하지 않으며 비록 이 땅에서는 가난해서 천민의 생활을 해도 하늘 나라에서는 존귀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증 거로서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의 확신을 줌으로 말미암아 육신은 가난하나 영적으로는 부 자인 것입니다.

 옛날에 저의 믿음이 겨자씨만할 때였습니다.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인데 그때는 피난시절이라 물이 부족해서 물장수들이 물을 팔았습니다.

 제가 있던 병원에서는 단골 물장수가 있었습니다. 그 물장수의 모습은 초 라하고 깡 말랐습니다. 생활이 부유하지 못하고 추운 겨울에도 누더기 옷을 입었는데 얼굴은 얼마나 환하게 보이는지 새삼 놀라곤 했습니다. 열등의식 과 좌절감이란 조금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리어카를 끌면서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이렇게 찬송가를 부르곤 했습니다. 병원 앞에서 물을 사겠다는 저에게 오늘 참 좋은 날입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예수 믿으십시오라고 말하고 는 물을 퍼 올리면서 예수님의 생수도 이와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떠나가곤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아무 조건도 없습니다. 그 사람 의 생각 때문에 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나는 병원에서 가운입고 앉아서 ' 나는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지내는데 마음이 우울한데 왜 이럴까' 상 당한 마음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자에게 오셔서 그 가난한 위치에서 그를 높여서 하늘나라 가 부자로 만들어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복음4: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역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과 환경에서 끊임없이 천국을 체험하며 살게되는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극히 적은 겨자씨 같은 천국이 우리 속에 막 자라기 시작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입 니다. 천국은 영혼을 찾아주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찾아주고, 건강을 찾아 주고, 이것을 찾을 때마다 하나님이 기쁘하고 즐거워 하십니다.

 천국은 또한 치료에 있습니다.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서 마음이 고침을 받 고 육체가 고침을 받고 생활이 고침을 받을때 그래서 구름낀 모든 것이 사 라지고, 과영한 태양이 떠오르고, 맑고, 밝고, 환한 삶을 살게 될 대 천국 의 역사가 그 속에 임하여서 이미 시작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죄짓고, 소외되고, 버림받고, 발길로 채이고 멸시와 천 시와 무시받는 그 사람 속에 예수님이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다 멀리 하지만 그런 사람 속에 예수님이 들어가서 그들 과 함께 먹고, 마시고 지내면서 그들에게 자존심과 삶의 용기를 회복시켜 주시고,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게 변화시켜주시는 것이 바로 천국의 역사 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임하셔서 좌절되고 낙심하는 가난한 사람속에 하늘 나라로 부요케 하시고, 천국에 대한 꿈과 환상을 심어주시고, 용기를 가지 고 살 수 있는 희망과 용기와 도전력을 주시는 그런 역사가 바로 천국입니 다.

 바로 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2천년 전 갈보리십자가에 올라가셔 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잔에 천국의 역사가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이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이 천국의 위대한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피와 살 속에 가난은 물러가고 좌절은 물러가고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 다. 이 속에 영원한 천국의 언약이 넘쳐납니다. 천국은 이론이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천국은 신학이 아닙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 속에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매일매일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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