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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자명종의 소리를 들어라 (눅 08: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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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매우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명종입니다. 단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는 매 우 불쾌하고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그 소리와 함께 새 날이 시작되고,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할 때에 얼마나 복된 소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40일동안 [호렙산 기도회]에 참 석했던 경험이라고 많은 교인들이 간증하고 있습니다. 새벽 4시에 일 어나 제일 먼저 주의 전으로 나와 기도를 드리고 성령의 놀라운 역사 를 경험하고 기도에 응답받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자 명종 소리를 들으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사람이 이야기는 공관보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기사입니다. 집을떠나 무덤 사이를 오가며 자학을 하는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시고 그의 정신을 온전케 하셔서 집 으로 돌려보내는 이 기사를 읽으면 저는 오늘 현대인에게 주시는 좋은 교훈으로 생각하고 본문에 의지해서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를 만나 주셨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질병이 있는데, 그것은 정신병 입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쌓이는 정신적인 불안으로 마약 중독과 방 탕함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곤 합니다.

 포르이트의 학설에 의하면 사람은 나면서부터 정신병에 걸릴 가능성 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런 이상없이 건강하게 지내다가 도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폭발적인 말과 행동이 나타나게 될 때에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행했을까' 하며 본연의 자신이 아닌 어떤 또 하나의 세력이 나를 지배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성 경은 이러한 생활을 가리켜 '귀신 들린 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는 수치도 모르고 벌거벗은 채 집에서 뛰어나와 무덤 사이를 오고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처럼 꿈도 희망도 없이, 삶의 의 미나 목적도 없이 생명 없는 컴컴한 무덤 사이를 혼자서 고독하게 뛰 어나디며 실패와 자학과 열등 의식과 소외감과 절망에 빠져 서서히 죽 어가고 있는 귀신 들린 자처럼,삶의 의욕과 목적을 상실한 채 수많은 악령에 붙잡힌 사람들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나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기를 원하지만 욕망과 분노와 나쁜 습관과 이기심과 탐 심이 나를 지배하면서 자기 몸을 자학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모습 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 범죄입니다. 그들은 서슴없 이 폭행과 강도를 일삼고 살인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가 난한 집안의 자녀들이 아니라 중산층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부끄러 움도 모르고 삶의 질서도 없이 악령에 지배당해 사는 그들에게 예수님 의 영적 자명종 소리를 듣게 해야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처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때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평화를 주시기 전에 말씀 이 날카로운 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 심으로 치유하는 대신에 깊은 곳에서부터 충격을 주셔서 우리를 깨우 쳐 주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이은 영적 자명종 소리를 듣기를 거부하면서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공통적인 현대인의 반응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마치 따가운 밤송이를 까서 먹 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때로는 밤송이를 밟는 것처럼 아픕니다. 밤송이 속에는 또 굳 은 껍질이 나오는데 이것도 벗겨야 합니다. 또 그 속에는 솜털이 있습 니다. 그것까지 다 벗기로 난 다음에야 맛있는 밤을 먹을 수 있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악령에 붙잡혀 있는 우리들에게 영적 자명종 의 소리가 들려올 때에 우리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시고 거라사로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된다고 하는교 훈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름대로 살지 못한 채 자기 정체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귀신 들린 자는 자기 이름을 대지 못하고 '군대'라고 대답 했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레기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내가 나 를 지배하지 못하고 6천이나 되는 악령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는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의 정체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채 수 천 갈래로 갈라진 분열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 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는 것은 또 하 나의 영적 자명종의 깨우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혈액과 세포와 모든 조직과 기관을 실험물로 써 달라고 의과대학에 자기 육신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는 다시 해부학 교 실로 가서 자기가 죽거든 자기 몸을 해부학 표본으로 써달라고 또 자 기를 팔았습니다. 얼마 후, 그는 이중 매매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 다. 그런데 재판정에 선 그는 이 재판정에서 선 사람은 내가 아닙니 다. 나는 이미 다 팔아버렸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다른 엉뚱한 것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 한 귀신 들린자는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나는 내가 아닙니다. 사탄에 붙잡혀 있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성경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 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얍복 강 여울에서 천사와 더불어 씨름하 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 니다. 야곱이라고 대답하자 천사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땅만 내려다보고 이기주의 로 살아왔던 야곱의 이제는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얍 복 강을 건넘으로써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입니다.

 원치 않는 자아가 지배하고 있는 자신을 가리켜서 사도 바울은 말하 기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는 갈등 속에서 번민한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과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말했지만, 그들 자 신까지도 죽을 때까지 흑인 노예를 데리고 살았던 갈등을 가지고 있었 습니다.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는 인도주의자이며 박애주의자였 지만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물 한 그릇을 떠주지 못하고 친절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지 못했던 갈등 속에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 간의 모습입니다.

 어느 대학 교수가 저에게 제가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제 생활과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저는 위선자입니다.라고 고백한 적 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 속에서 나는 내가 아닙니다. 원치 않는 자아가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를 도우소서. 당신의 능력으로 내 마음의 악령을 몰아내 주시고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옵소 서하며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받기 원하는 고백 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일 예배드리고 훌륭한 성가대의 찬양을 들으면서 내 마음 속에 만족함과 감격을 안고 돌아갈지 모르지만 때로는 근본적인 새로 운 변화를 가져와야 할 중생의 체험을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자는 그리스도의 자명종 소리를 들었습니 다. 우리는 거라서 지방의 귀신 들린 자와 같이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를 도우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위탁할 때에 주님께서 우 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악령의 세계를 몰아내시고 온전하고 건실한 인간이 되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는 온전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 거라사 지방에 있는 2천마리 나 되는 돼지떼를 몰살시켰습니다. 이 말은 한 영혼이 온전해지고 구 원빠다기 위해서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만 된다는 교훈입니다. 한 생명을 온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거룩한 뜻을 우리가 여 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당신이 죽어 야만 했을 정도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 수님이십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귀신 들린 자를 살리기 위해서 2천 마리의 돼지떼가 몰상당하는 것을 보고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두려워 서 예수님께 떠나라고까지 했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은 온전함을 입은 후 세가지 증상이 나 타났습니다.

 첫째, 그는 옷을 입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벌거벗은 수치도 모르고 도 덕적,윤리적인 가치도 모른 채 혼자서 무덤 사이를 뛰어나니던 그가 다시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새옷을 입었스니다. 이제는 자기 마음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윤리가 있고 수치를 아는 자기로 돌아 왔다는 말입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치게 될 때에 예 언자를 통해서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부끄러움을 모른 백성아라고 꾸짖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입니다. 옷을 바로 입어야 되겠습니다. 바른 도덕과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새옷을 갈아입을 때에 온전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둘째, 그는 정신이 온전해지고 바른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귀신 들린 자는 제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웃을 볼 수 있게 되 었습니다. 그럴 때에 내 존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네가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이지러졌습니다.사물을 바로 볼 줄 모릅니다. 원 망투성이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온전해질 때 참다운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를 괼보게 마옵소서하며 예수님을 까 절했던 그가 이제는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악령의 세력들을 다 물리치 고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님만이 나 를 구원하실 분입니다.라고 스스로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주님 앞에 굴복시키는 예배하는 자세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배할 줄 모르는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줄 모르고 구세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도 무덤 사이를 왕 래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끓읍시다. 예수님은 나 의 주인이시고 나는 그분의 종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시며 나는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또한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해지고 난 후 주님을 따라 나서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너에게 위대한 일 을 행하신 것을 그들에게 간증하고 네 가정과 동네를 치유하라고 말 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이 상처투성이는 아닙니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때로는 자기 자신은 아직 악령에 붙잡혀 있는 채 사회를 치유하 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악령을 몰아 내기 전 에는 결코 내 가정도, 사회도 치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 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마귀를 물리치신 후 무릎을 꿇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많은 악령에 붙잡힌 우리들에게 오셔서 영적인 자명종 을 울리실 때에 그 소리를 귀담아 들어 주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며 치 유받은 건실한 인격으로 사회를 치유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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