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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끈기 있는 믿음 (눅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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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는 자에게는 패배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패배하게 될까요 기도하지 않고 낙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어떤 때에 패배하게 되겠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낙망하는 그 순간에 패배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엎드려서 기도하고 낙심하지만 않으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절대로 패배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편과 어떤 처지에 처한다고 해도 낙망치 않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사람은 반드시 해결하고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고 다만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재판관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는 정반대가 되는 악독한 사람입니다.
①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란 양심도 없고 내세도 심판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못할 짓이 없는 두려운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끔찍한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②사람을 무시한다고 했습니다.
아주 교만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판사나 검사 쯤 되면 얼마나 대접을 받습니까 옛날에는 더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재판관은 너무나 교만해서 사람들을 멸시 천대하는 오만불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웬만한 사람들은 이런 사람에게는 아예 찾아가서 부탁을 하지 않습니다. 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 한 과부가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한번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자주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불의한 재판관은 얼마동안은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아니했지만 이 과부가 포기하지 아니하고 자꾸만 가서 번거롭게 하니 그것이 괴로워서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이 과부의 끈기 앞에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과 하나님을 비교해 봅시다.
사실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은 악독한 사람입니다. 인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며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도 찾아가서 끈질기게 졸라대니 굴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며 우리 인간을 위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것을 예비해 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까지 말씀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줄테니까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부르짓는 택하신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 하시겠습니까 어찌 그 원한을 오래 참으시겠느냐, 속히 풀어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마가복음11:24에 보면 [하나님 앞에 믿고 구한것은 아예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까지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간구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믿음과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두번 기도해 보고 안되면 포기해 버립니다. 끈기있게 간구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1:6에 보면[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반드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구약성경이다 그렇지만 특히 4복음을 읽어보면 문둥이든 소경이든 어떤 병자든지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냥 돌아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죄인이든 뭐든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 예수님께 찾아왔다가 응답 못 받고 돌아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찾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하지를 않습니다. 더군다나 엘리사시대에도 문둥이가 그렇게 많았지만 고침 받은 문둥이는 나아만 밖에는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엘리사 앞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있는 엘리사 앞에 나와서 기도해 달라고, 고침 받게 해 달라고만 하면 고칠 수 있었는데 그럴 만한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해서 응답 받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십시요. 주님이 거부한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었는지 찾아보십시요. 한사람도 없습니다. 반드시 응답 받았고 반드시 축복 받았습니다.
야곱과 같은 경우는 응답만 받은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까지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기도의 승리자에게 주시는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다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다가 낙심치 않고 생명 걸고 기도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이름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승리한 자]라는 아주 존귀한 이름입니다. 물러서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끈기있게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서 기어코 응답 받은 자에게 주시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야곱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면 반드시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매달린 야곱을 하나님은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도 야곱과 같이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축복을 예비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8:22-25에 보면 예수님이 소경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우러러 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이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님도 한번 안수해서 완전히 고치지 못하신 적이 있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안수하심으로 완전히 치유하신 것입니다. 왜 이런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이것을 보면 우리가 한번 기도해서 안되었다고 해서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한번 해서 안되면 두번하고 두번해서 안되면 세번하고 세번 기도해서 안되면 네번, 다섯벗, 될 때까지 끈기있게 간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번 안수해서 안되니까 두번 안수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기도해서 안됐다고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곱과 같이 생명을 걸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처럼 끝까지 낙망치 않고 간구한다면 반드시 응답받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끈기있게 간구하는 자에게는 결국 간구한 것만 응답받게 되지 않습니다. 끈기있게 기도하는 동안에 생각지도 못했던 은혜를 받게 되고 경건한 성도가 되고 존경 받는 성도가 되고 간증거리가 많아지고 또한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이미 큰 축복을 받아 누리는 영광스러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에는 제가 여러분에게 끈기있는 믿음을 가지시라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믿고 구하되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물러서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끈기있는 믿음, 포기하지 않는 믿음, 낙망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반드시 응답 받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구하는 것 이상의 큰 응답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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