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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마음의 집 주인 (마 12: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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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과 같이 은혜 받기를 원하는 말씀의 제목은 '내집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는 세 가지가 꼭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의식주입니다. 사람은 입어야 하고, 먹어야 하며, 거처할 집이 있어야 합니다.

집이란, 가족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보금자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짖으면 크게 짓고 아름답고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짖습니다. 그러나 집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집을 크게 짖고 아름답게 짖은집이라 할지라도 그 집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집의 가치가 달라지는 법입니다.

임금이 살면 그 집은 궁궐이고, 죄인을 잡아 둔 집은 형무소 흑은 감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술을 팔면 술집이고 무당이 살면 무당집, 성도가 살면 장로님 댁, 집사님 댁, 권사님 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의미에서도 인간의 마음 속에는 두 종류의 집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귀신이 거하는 처소인 귀신의 집이 있고 성령이 거하는 전인 신령한 집이 있습니다.

성경은 증거 하기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면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 하나님의 집이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귀신이 거하면 귀신의 처소 귀신의 집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을 보면 귀신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성령께서 집 안으로 들어오시자 귀신이 그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막상 쫓겨난 귀신을 이리저리 돌아 다녀 보았지만 자기가 거할 쉴 만한 처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할 수 없이 전에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
찌된 영문인지 자기 보다 능력이 많으신 성령은 떠나갔고, 집은 귀신의 취향에 맞도록 새롭게 수리되었고 집안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너무나 좋아서 이제는 두 번 다시 쫓겨나지 않으려고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들을 일곱이나 데리고 들어 왔습니다.
그 바람에 집 주인은 전보다 더 형편이 비참해 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
도 여러분 ! 귀신은 인간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신은 인격을 소유하고 있으며 기적 같은 것을 일으켜 사람들을 속이면서 섬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신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귀신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감히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귀신들은 그들의 두목인 사탄의 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사탄은 자기 졸개들
인 귀신들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고. 도덕적 불결로 이끌어 더러운 생각을 하게 하고 더러운 말과 행동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짓도록 시험하며 진리를 믿지 못하게 유혹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위협하고 괴롭혀서 자신을 섬기게 합니다.

요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귀신이 어디 있냐고 하면서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며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흔히들 귀신에 대한 상상을 소복을 하고 머리는 길고 얼굴은 창백하며 입가에 피가 흐르고 괴상한 음성과 울음과 웃음을 내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전도사가 수요일 저녁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교회
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차가 늦게까지 오지 않아 산세가 험한 길을 혼자서 걸어가야 했는데 그 산은 짐승들과 귀신이 나타난다는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전도사는 `내가 이래봬도 하나님의 종인데...'
하며 산을 넘고 공동묘지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는 몸이 점점 으시시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뒤에서 확 잡아 당겼습니다. 전도사는 너무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니 자기 옷이 나뭇가지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가 무서워하는가 나는 전도사인데...' 전도사는 아직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 두려움이 변하여 찬송이 나왔으며, 교회에 달려가 보니 교인들은 찬송을 부르며 전도사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 전도사 역시도 귀신에 대한 상상을 으시시하게 생긴 죽은 사람의 넋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한 맺힌 사람과 악한 사람이 죽은 영혼과 넋이 아닙니다. 성경
은 증거 하기를 욥7:9-10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한 번 죽어서 음부인 무덤에 내려간 사람은 그 영혼이 두 번 다시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부자는 죽어서 뜨거운 지옥인 음부로 들어갔고, 하나님을 믿는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부자가 천국에서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한 방울의 물을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이 간절한 청원에도 불구하고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라고 부자의 간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한 방울의 물조차도 거절당한 부자는 이번에 또 간청하기를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즉 네 형제들이 사는 세상에는 주의 종들이 있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고 예수를 믿으면 너처럼 지옥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있는 부자는 말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자기 형제들에게 지옥
과 천당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 저들이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말하기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면서 부자의 두 번째 청원까지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 비유에 말씀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고 지옥으로 내려간 부자의 영혼이 다시는 그 지옥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지옥에서 나올 수 있다고 한다면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시켜서 세상에 있는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부자의 영혼은 자신이 지옥으로부터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증거 하여 자기처럼 지옥에 오지 않도록 아브라함에게 간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죽어서 무덤으로 내려간 자의 영혼은 두 번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없으므로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이나 아니면 넋이 아닙니다. 귀신은 하나님을 거역한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단, 마귀, 귀신이 나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령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시험하고 미혹하여 인간의 영혼을 사냥하여 지옥으로 인도하는 영물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공중 권세를 잡은 자들이며 또한 사람보다 지혜가 있고 힘이 있
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들은 귀신에게 앞날의 길흉을 묻는 사람들이 있고, 이사가는 날이나 결혼 날짜를 묻기도 하고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일, 또는 어느 대학을 가야 하는지를 묻는 일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 중에는 간흑 컴퓨터 앞에서 과학이니 통계니 하면서 재미 삼아 사주, 토정비결, 풍수설 오늘의 운세를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마땅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고 살전 5:22에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귀신의 일을 장난 삼아 재미로 하지 말고 멀리하는 것이 성도의 거룩한 생활인 것입니다. 물론 귀신들도 기적 같은 마술을 행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들이 물로 피를 만들기도 하고(출7:20-22), 하늘에서 불을 내리기도 합니다(계13:13).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으면 마귀에 다시 침범을 받아 더 큰 후환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깨어 기도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주인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지 않을 때 결국 예수님과 상관없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귀신은 어떻게 역사하며 우리는 어떻게 대적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마음의 집을 비워서는 안됩니다. 마음의 빈집이란 내가 내 마
음의 집에 주인으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집이란 모든 이들에게 요람이요 쉼을 얻는 휴식의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행복을 찾기 원합니다. 집은 크거나 작거나 주인이 있어야 집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믿음의 집이든 큰 믿음의 집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집은 주인 없는 빈집 같아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공허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이러한 빈집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
아무리 내가 강해도 내가 내 마음의 집에 주인은 될 수 없고, 인간이 아무리 강해도 더러운 귀신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귀신이 이런 집으로 들어오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은 귀신을 자신의 마음의 집에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가 내가 내 마음의 집에 주인이 되고자 할 때 구원의 열정도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도, 헌신의 열정도 시들어 가고 맙니다. .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의 집에 주인은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귀신
은 자기보다 능력이 많은 성령께서 그 집안으로 들어오시자 귀신은 그 사람들에게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은 자기가 살던 집에서 나와 물이 없는 곳으로 두루 다니다가 쉴 곳이 없으므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살던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을 쫓아낸 성령은 계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보다 집은 새롭게 수리되었고, 집안은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습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이 거할 수 있도록 귀신을 위해 마음의 집안이 잘 꾸며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방에는 미움과 시기의 그릇들이 가득히 있고 방은 불신으로 도배를 하였으며, 허영과사치의 장롱을 새롭게 마련했고, 또한 정욕과 쾌락의 침대를 드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너무 좋아서 이 좋은 집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들을 일곱이나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근심되게 하면 성령은 내 마음의 집에서 주인으로 계시지 못하고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성령을 절대로 근심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을 근되게 하는 것이란, 성도가 주일 성수 하지 못하는 것, 기도 생활하지 못하는 것,성경 공부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귀신이 다시 왔을 때 그 집안에 기도와 찬송의 소리가 없고, 그리고 성
경 공부와 전도가 없이 조용하다면 귀신은 매우 좋아할 것입니다. 더욱이 성령까지 계시지 아니하므로 귀신은 기꺼이 다시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집을 나갔던 귀신은 다시는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자기 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들을 데리고 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전보다 더 어려운 지경에 이 사람을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타락하게 되면 오히려 처음보다 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증거 하기를 귀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의 집을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엡4:27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가정이나 교회나 단체나 사회는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회는 불법이 자행되고 불의를 행하며, 자식은 부모에게 제자는 스승
에게 성도는 예수님께 불순종하며, 거짓말을 하고 시기하며 분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집에 내가 주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 귀신이 우리 마음의 집에 주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귀신을 그냥 귀신이라고 말하지 않고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왜 귀신을 더럽다고 했을까요 목욕을 하지 않고 더러운 오물들이 귀신에게 묻어 있기 때문에 귀신을 더럽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귀신이 더러운 것은 인간에게 더러운 마음을 주기 때문에 더러운 귀신이라고 말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귀신이 인간의 마음의 집에서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
인간의 성품은 귀신을 닮기 때문에 인간도 귀신처럼 더러워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비록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악한 생각과 그리고 악한 행동과 악한 말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하는 것도 악하고 행동하는 것도 악하며 말하는 것조차도 남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는 악한 말만 하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판 가롯 유다를 보세요. 마귀가 그 마음의 집에서
주인으로 있을 때 그는 예수님을 원수들에게 팔려는 더러운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은 증거 하기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릇 유다는 마귀가 시키는 대로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습니다.

처음에 가릇 유다가 예수님에게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었을 때에는 귀신이 그에
게 얼씬거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에게 돈궤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바람에 그는 결국 귀신을 마음의 집에 주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이 그의 마음에 주인 되자 가릇 유다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겠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26:15절에 보면 그가 예수님을 파는 일에 있어서 은 삼십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흥정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릇 유다가 단 한 순간의 충동이나 한 순간의 잘못된 오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귀신이 그의 마음의 집에 주인으로 군림하므로 예수님을 배도 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가릇 유다의 종말은 어떻습니까 가릇 유다는 돈 귀신에게 지배를 받아 돈을 사랑하게 되었고, 돈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돈 귀신은 유다로 하여금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고 나무에 목을 매여 자
살하도록 하여 그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라고 해서 가릇 유다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가릇 유다는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마음의 집에 귀신을 주인으로 삼는 사람의 형편은 어떻게 될까요
보편적으로 귀신은 질병으로 고통을 줍니다. 물론 질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질병을 성경적으로 분류하면 인간의 연약함과 실수와 죄값으로 오는 질병과,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징계의 채찍으로 임하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질병은 마귀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그 예로 누가복음 4장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앓을 때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열병은 인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비인격체를 꾸짖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을 때 그 열병을 꾸짖으셨고 꾸짖은 결과 열병은 떠나갔습니다. 여기서 열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인격을 소유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열병은 마귀의 역사였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아 책망하셨고 그로써 마귀는 떠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같은 예를 우리는 마가복음 9장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어릴 때부터 벙어
리 되고 귀먹은 아이를 고친 일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자 예수님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정상아로 회복되었습니다. 그 병도 역시 악한 영 때문에 일어난 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질병에 대한 이해를 달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나면 약국으로 병원으로 갑니다. 물론 약국에도 병원도 가 봐야 하지만 그것만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한번쯤은 질병의 원인에 대해 신앙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병도 무조건 생리적인 것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병이 귀신의 역사라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발행한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이
며 따라서 약이나 의술로서는 고쳐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었을 때 병의 원인을 생각해 보아야 하며 만약 마귀의 역사로 판단되면 예수 이름으로 꾸짖어야 합니다. 더러운 병마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라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때 귀신은 더 붙어 있지 못하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병을 하나님이 고치고 돈은 의사가 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남 울산에 이용현이라는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꿈은 아들이 고명한 선비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바라며 공부를 시켰는데, 어느 날 아들이 귀신에 들려 미쳐 버렸습니다. 그 광증이 갈수록 심해지자 부모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용하다는 점쟁이며 의원을 찾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한 교인이 예수를 믿으라고 권면하였는데, 그는 양반이 죽으면 죽었지 어찌 예수를 믿겠느냐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귀신들린 아들의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자 할 수 없이 부모가 아들을 결박하여 교회로 데려갔습니다. 그 아이를 눕혀 놓고 온 교인이 합심하여 기도를 하자 무쇠 같은 힘으로 몸부림치던 아이의 발작이 그쳤습니다. 그리고 온 교인이 며칠을 합심으로 기도하는 중에 아이의 정신이 돌아왔고 그 양반 집안은 모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04년 평양의 한 작은 마을에 무당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귀
신의 길잡이 노릇을 해 오던 무당은 우연히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 곳에서 열리는 사경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무당은 마음이 변하여 열심으로 복음을 배우며 하나님의 종으로 탈바꿈하려는데 귀신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성경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무당은 자리에 눕자마자 얼굴의 근육이 수축되고 손은 마비되어 얽혀 들었으며 눈은 초점을 잃은 채로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신이 왜 가만히 있느냐 뛰쳐나가 굿을 하여라 라고 충동할 때면 몸부림치며 벌겋게 달아오른 쇠로 자신의 몸을 지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교인들은 그녀를 위해 찬송과 기도로 귀신과 싸웠습니다. 그녀 역시 귀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고통스럽게 마룻바닥을 뒹굴며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를 떠나라, 내게서 떠나라라고 연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얼마 후 귀신은 그녀에게서 통곡을 하며 떠나갔고 그녀는 귀신과의 싸움 끝에
한줄기 빛이 그녀에게로 내려와 지친 그녀의 마음에 주님의 음성이 다가옴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녀는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내가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분은 나에게 거룩한 영인 성령을 주시고 나를 이끌어 주심을 알았습니다. 비록 내가 그 분을 눈으로 보거나 만나지 못했을 지라도 주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청교도들의 격언에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는 막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그릇된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그릇된 생각이 둥우리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는것입니다. 성경은 증거 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나는 귀신과 대적하면 패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신 성령 하
나님께서 내 마음의 주인으로 계시고 내게 능력을 주면 귀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귀신은 환경을 통해서 역사 합니다.
귀신은 인간의 마음과 육체, 양심 뿐 아니라 환경을 통해서도 역사 합니다. 마
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다라 지방을 가시기 전 게네사렛호수를 지나가실 때 호수에서 큰 놀이 일었습니다. 그때 심상치 않게 여긴 제자들은 두려움에 빠져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구원하소서우리가 주게 되었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있는 귀신들이 오지 못하도록 폭풍으로 방
해하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람과 파도는 곧 잔잔해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까 바람과 바다는 인격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면에는 귀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괴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흑시 나의 잘못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인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이름으로 환경을 괴롭게 하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라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때 괴로움을 주던 환경과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도록 시간을 빼는 귀신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택한 자라도 찬송과 기도와 말씀
을 배우지 않고 경건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들어가 질병을 주고 망하게 하고 그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해 역사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집에 성령이 주인으로 계시고 내가 그분을 믿고 의지하면 귀신이 내 마음과 육체와 질병과 양심과 환경을 통해서 역사 해도 우리는 능히 대적할 수 있고 예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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