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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혼인잔치 (마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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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이 하신 혼인잔치 비유로서 천국의 비유라고 합니다. 눅14:16-24에 나와있는 비유와 유사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두개의 비유는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강조점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어느 임금이 혼인잔치를 열고 종들을 보내어 사람을 청하니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다시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청하니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상업차가고, 어떤 자들은 그 종들을 능욕하고 죽였다. 화가 난 임금이 그들을 진멸하고 사거리 길에가서 만나는 사람을 다 데려오니 혼인잔치자리가 차고 넘쳤다. 임금이 그 잔치자리에 와 보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어 그를 내어쫓았다. 그리고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는 말로 비유를 마치고 있다.
반면 누가복음의 비유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시간이 되어서 사람을 청하니 사람들이 거절하기를 하나는 밭을 샀기 때문에, 하나는 소를 사서 시험하기 때문에, 또 하나는 결혼하여서 갈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주인은 종들에게 길에 나가서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한다. 종들이 가서 그들을 끌어다 채웠지만 자리가 남자 주인은 산과 들에 나아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한다. 주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전에 청하였던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하여서 비유를 맺는다.

이 비유의 배경을 살펴보면 몇가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① 비유의 장소 성전에서(마21:23) 바리새인 두령의 집(14:1)
② 비유의 대상 대제사장,백성의 장로(21:45) 식사중에 함께 먹는 사람들(14:15)
③ 비유의 시기 예루살렘 입성 후 예루살렘 여행 중
④ 구원의 대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문제 가난한자,소경,..

우리는 특별히 마태복음에 나오는 비유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1C에 팔레스타인의 잔치를 베푸는 관습을 알아야 한다. 유대의 결혼 축제는 대개 7일이상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보통 유대인들은 1일 2식을 하는데 늦은 10시에 조반과 저녁식사를 하였다. 임금이 준비한 오찬은 아마 이 성대한 결혼 축제를 시작하는 첫날의 늦은 아침 식사로 아주 정성껏, 풍성하게 준비하였을 것이다.
또 관습에 의하면 손님 초청은 두번하게 되어 있다. 잔치가 있기 전에 미리 주인은 종들을 보내어 앞으로 갖게될 잔치를 알려주며, 두번째 초청은 실제로 잔치가 벌어질 때에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라고 다시 청하는 것이다. 임금은 바로 그 관습에 따라 사람들을 정중하게 청하였음에 불구하고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두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1. 부분적의미
그 당시 유대인들을 향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비유라는 것이다.
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시간이 되었을 때 참석하기를 거절한 손님들은 바로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오래전에 선민으로 초청받은 자들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그를 영접하여 따르도록 초청하였을 때 저들은 오만하게도 그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초청하심은 사거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거리 길은 성읍경계에서 지방으로 통하는 길들이 시작되는 곳에 형성된 넓은 광장을 말합니다. 사거리 길로 갔다는 것은 죄인들과 이방인에게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의 자리에 초청받은 자들이 되었고, 초청받았던 유대인들은 거절하므로 말미암아 그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예비되었다.

7절에 보니 그 심판의 극심함이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를 진멸하고 그동네를 불사른다’고 하였다. 마태가 이 복음서를 쓸 당시는 AD 80-90년경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이 복음서의 편집사이에는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이 있었습니다. AD70년에 예루살렘은 불태워졌습니다. 그 성은 돌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마태복음 저자는 예루살렘 멸망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한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들에 심판이 따를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보편적 의미

① 하나님의 초대는 혼인잔치와 같이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초대임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행복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초청한 그 자리는 즐거운 곳이요, 기쁨이 넘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리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초청한 자리는 어디일까요
교회입니다. 예배의 시간 시간.
우리의 가정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하나님게 예배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여서
속회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하나님의 초청의 자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 귀한 자리에 참여하여 하늘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② 이 기쁘고 즐거운 그리스도의 초청에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밭으로 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사업에 너무 분주해서 즐거운 잔치의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농장에 가서 열심히 일하기 위하여, 사업을 잘 경영하여 성공하기 위하여서 그리스도의 초청을 거절한 것입니다. 사실 그들의 삶은 성실하다고, 능률적이라고, 성공했다고 평가를 받을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지나가는 세상 일에 너무 분주해서 영원한 것을 잃어버렸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서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망각하였으며, 너무나 강하게 들려오는 이 세상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느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초청의 부르심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흔히 차선의 것이 최선의 것을 가로막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차선 그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최고의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비극이며, 믿는 성도들의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그 귀한 초청을 거절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수많은 잔치를 베풀어 놓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 때 세상일을 핑계하며 거절하지 마시고 날마다 그 복된 자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그런 이유가 핑계가 올때가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생활이 너무 분주해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먹는 즐거움을 잃는 성도 되지 마시고 주님의 초청에 언제나 아멘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③ 이 비유의 말씀은 우리가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면 무서운 형벌이 있습을 말합니다.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벌을 받습니다. 먼저 초청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잔치의 기쁨을 누릴수가 없는 것이 형벌의 시작이라면, 형벌의 마지막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에 떨어지는 영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④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은혜의 초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거리에서 부름받은 사람들은 임금에게 초대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넓으신 아량과 포용력이 그들을 잔치에 부른 것이다. 이것은 “은혜의 부르심”이며 “은혜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하나님의 잔치자리에 부르신 것은 우리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부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잔치 자리에 참여하기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여전히 더럽고 추악한 죄로 가득차 있으며 부족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 잔치 자리에, 구원의 자리에, 기쁨의 자리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 전에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임을 기억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⑤ 부름받은 자가 해야할 일은 예복을 입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참여한 사람을 관한 이야기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당시에 랍비들 사이에는 “왕과 예복”에 대한 설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야기를 통하여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 왕이 손님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날자와 시간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손님들에게 몸을 정결하게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서 언제든지 초대에 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때 슬기로운 자들은 즉시 차비를 하고 옷을 입고 궁정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잔치에 필요한 준비가 더딜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예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고 차비를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일터에서 남은 일들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왕의 초청이 온 것입니다. 이것은 두번째 초청입니다. 곧 오라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모두 참석하여 왕의 향연을 받고 함께 먹고 마시면서 즐거움을 나눴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너무 급박한 초청에 예복을 입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은 문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굶주린 채로 슬퍼하면서 밖에서 잔치의 즐거움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설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의무를 말하였으며, 예복을 통해 우리가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할 준비를 말합니다.

주님의 은혜의 부름을 받은 성도, 초대에 임한 성도 여러분
예복은 은혜에 부르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인 것입니다. 예복은 은혜에 부름에 합당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예복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예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말합니다.(순결의 옷) 은혜에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온몸과 마음을 씻어 그 자리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복은 주신 은혜와 사랑에 합당한 생활입니다.(의의 옷)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은혜에 합당한 삶이 예복입니다. 은혜라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동시에 엄격한 삶의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의 초대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 순결과 의의 옷을 입고
주님의 잔치 자리에서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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